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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79 February 2026

오피니언

◎ 고립된 기내에서의 의료: 영상의학과 교수의 기내 닥터 콜 경험과 제언

구 현 정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하와이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항공편에서 이륙 후 약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기내 방송을 통해 ‘닥터 콜’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전반적인 내과 의학 지식을 다시 숙지하고 있었고, 심폐소생술(CPR) 또한 최근 복습한 상태였으며, 평소 초음파 관련 시술을 일부 시행하고 있어 혹시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응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과 계열의 다른 전문의가 이미 계셔서 그 지시에 따라 보조하는 역할이기를 기대했고, 마음 한편으로는 “힘들 것 같으니 CPR 상황만 아니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의료인은 나였다. 이후 합류한 분은 한국어 소통이 어려운 미국인 가정의학과 의사였다. 환자는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 사이 복도 바닥에 누워 계신, 매우 마른 체구의 고령 여성으로, 말기 암 환자였다.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하였고, 최근 4~5일간 고형 음식 섭취가 불가능해 주스나 우유만 섭취해 왔고, 탑승 전 지역 병원에서 수액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손등에는 반복된 정맥 주사로 인한 다수의 멍이 있었고, 약간의 저혈압 상태로 말초 정맥 확보가 쉽지 않아 보였다. 승무원들은 공간 정리, 물품 전달 등 현장에서 가능한 지원을 제공했고, 사용 가능한 의료장비 및 기내 의약품 목록을 가져다주었다.

맥박은 촉지되었고, 반응성 심계항진이 있어 수액 공급을 통해 비행 중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정맥로 확보였다. 기내에 사용 가능한 바늘은 22게이지로 보이는 것 네 개뿐이었다. 두 명의 의사가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연이어 실패했고, 나는 마지막 남은 바늘 하나를 이용해 간신히 손등에 정맥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라인을 연결하고 생리식염수를 천천히 주입하기 시작했다. 혈당은 약 70 mg/dL 수준으로 측정되어 예방적으로 포도당 투여를 하여도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으나, 저농도 포도당 용액은 없고 고농도 제제만 있어 매우 느린 속도로 일부를 추가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액을 걸 고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항공기 문 손잡이 부근에 테이프로 수액 백을 여러 겹 감아 고정했다. 중간에 수액 백이 갑자기 환자에게 떨어지는 상황도 발생했는데, 환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행히 바늘은 빠지지 않았고 다시 고정할 수 있었다. 이때 ‘접이식 고정 고리 하나만 있어도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 모니터링 장비 역시 상시 부착형이 아니라, 눌러야 작동하는 형태라 지속적인 관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동행한 미국인 의사가 개인적으로 소지하고 있던 손가락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사용할 수 있어, 비행 내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환자는 피로한 상태로 바닥에 누운 채 잠을 청했고, 나는 도착할 때까지 곁을 지켰다.

이 경험을 통해 두 가지 고민이 남았다.

첫째, 중증 또는 말기 환자가 항공기에 탑승할 경우, 발생 가능한 의료 상황에 대해 항공사와 의료 시스템이 어느 정도까지 사전에 공유 받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이는 명백히 민감한 개인 정보이자 보호되어야 할 영역이지만, 동시에 환자 본인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다수의 해외 항공사들은 중증 질환자나 산소 공급, 최근 입원 병력이 있는 승객의 경우, 주치의 소견이 포함된 의료 정보 양식(MEDIF, Medical Information Form) 제출을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탑승 가능 여부나 추가 지원 필요성을 판단한다. 이러한 제도는 차별이 아니라, 기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고 환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내 현실에서 이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둘째, 의사가 기내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전 인식의 필요성이다. 나는 닥터 콜이 처음이라 기내 의료 장비 및 의약품 목록을 읽고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만약 더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신속한 판단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도움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다면, 항공기 내에서 사용 가능한 의료 장비와 의약품의 범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동시에 의사 역시 승객이며, 기내 의료를 수행해야 할 법적·윤리적 의무를 강제 받는 존재는 아니다. 참여 여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며, 이에 대한 존중 또한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맥 확보용 바늘과 같은 기본 물품은 조금 더 여유 있게 비치되어 있다면 현장의 긴장감과 의료진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바늘 하나를 손에 쥐고 있을 때, 제한된 환경에서 혼자 의료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기내 상황은 꽤나 압박이 있었다. 그래도 제한된 기내 환경 속에서도 승무원들의 협조는 의료적 판단과 처치를 가능하게 한 중요한 기반이었으며, 이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기내 응급상황은 드물지만, 일단 발생하면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경험은 개인 의사의 헌신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과 준비, 그리고 연결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다음번 닥터 콜이 울릴 때, 그 자리에 선 의료인이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이 계속해서 보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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