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 인 덕대한의학회 기초의학이사
위기의 기초의학, 무엇이 본질적 위기인가?
이미 오래전부터 기초의학의 위기를 말하여 왔으나 궁극적으로는 기초의학자 육성을 위한 시스템 부족과 기초의학 인력 생태계 구축 실패에 따른 구조적 위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기초의학에 대한 인식과 정의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크게 확대되었으나, 현실적으로 교육과 연구라는 두 가지 주요 축에 대해서는 균형 있게 다루어지지 못했던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구조적 위기에 놓인 기초의학 인력 생태계
우리나라 기초의학 분야는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로 인해 심각한 인력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의과대학에서 기초의학 전공을 선택하는 인력은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인력 부족을 넘어 연구 연속성 붕괴와 학문 세대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기초의학은 단기 성과 중심의 평가가 어려운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연구비·인사·평가 제도는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젊은 연구자들은 불안정한 고용과 과도한 경쟁 속에서 장기적 비전을 설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기초의학자 양성의 현실: 유입 감소와 경력 단절
현재 의과대학 내 기초의학 전공을 선택하는 전공의·대학원생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임상 전문의에 비해 소득·안정성·사회적 보상이 낮고, 연구비 수주 및 교수 임용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박사후연구원(Postdoc) 이후의 경력 경로가 불투명해 ‘중간 단계에서 이탈’하는 인력이 많다는 점이 핵심 문제로 지적된다. 임상의학 중심의 의료 환경, 연구자 경력 불안정, 낮은 처우와 사회적 인식 부족이 맞물리며, 기초의학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적 대응이 시급히 요구된다.
기존 정책의 한계와 현장의 목소리
정부와 대학은 의과학자(MD-PhD) 트랙, 기초의학 전공자 장학사업 등을 통해 대응해 왔으나, 단편적 지원에 그쳤다는 평가가 많다. 행정 중심의 평가 체계,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비 구조는 기초연구의 특성과 맞지 않는다. 기초의학자 양성을 단순한 인력 배출이 아닌 전주기적 경력 설계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과대학 단계에서는 조기 연구 노출과 안정적 진입 경로를 마련하고, 박사·박사후과정에서는 충분한 연구 몰입 시간을 보장하고, 이후에는 테뉴어 트랙 확대, 기초와 임상을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 전략적 양성의 방향
코로나19 이후 의사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구가 급격히 높아졌다. 최근 정부는 전주기 융합형의사과학사 사업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였고, 학계에서는 의사과학자협회를 발족하는 등 고무적인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기초의학은 단기간 성과를 내기 어려우나, 신약·의료기술·정밀의료의 토대가 되는 분야다. 감염병, 고령화, 신기술 융합 등 미래 보건의료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기초의학자의 안정적 양성은 필수적이다. 지금의 선택이 향후 10~20년 우리나라 의생명과학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점은 무엇보다 확실하다.
시급한 국가 기초의학연구원 설립
현재 한국한의학연구원에 이어 국립 치의학연구원이 설립되어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대한민국 의학연구원은 세워져 있지 않다. 모름지기 국가적 차원의 의학연구원이 만들어져 미래 비전과 목표를 만들고 전략과 실행, 예산과 평가 등이 종합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은 우리나라 의학 발전의 큰 틀에서 보면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의학회 기초의학특별위원회에서는 2024년부터 국가 기초의학연구원 설립을 제안해 왔다. 기초의학의 발전이 임상의학과 연계되어 성과로 나타나며, 우리나라 의학의 미래를 위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핵심 정책 제안
첫째, 의과대학 단계에서의 조기 연구 진입 강화가 필요하다. 기초의학 연구 참여를 학부·의전원 교육과정에 제도적으로 연계하고, 연구 참여 학생에게는 학점·장학·경력 인정을 명확히 보장해야 한다.
둘째, 박사 및 박사후연구원 단계의 안정적 연구 지원이 요구된다. 일정 기간 고용과 연구비를 동시에 보장하는 ‘기초의학 전용 펠로우십’ 도입을 통해 연구 몰입도를 높이고, 단기 성과 중심 평가를 완화해야 한다.
셋째, 기초의학자 전용 테뉴어 트랙 및 정규직 확대가 시급하다. 대학의 기초의학 교원 확보를 국가가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일정 비율의 정원 유지를 정책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또한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에도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
넷째, 임상–기초 간 유연한 이동성 보장이 필요하다. 임상 경험을 갖춘 기초의학자, 또는 연구 역량을 갖춘 임상의사가 경력 단절 없이 역할을 전환할 수 있도록 수련·연구 인정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 기초의학연구원 설립이 절실하다. 기초의학의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기초의학자 양성이 우선이다. 국가 기초의학연구원은 이를 위한 시스템 도입과 지속 가능한 생태계 마련의 교두보가 될 것임을 우리 모두 되돌아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