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에 훌륭하신 의학계 선각자 여섯 분이 헌액되었다. 이번 호에 그 중 이순형 명예교수님의 공적을 기리며, 여섯 분의 대현(大賢)의 발자취를 한 분 한 분씩 찾아 연재하고자 한다.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은 우리나라 의학발전의 기반이 되는 학회의 육성과 발전에 헌신하고 봉사한 분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8년 11월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
이 순 형서울의대 기생충학
학생 시절 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을 창설하셨던 故 서병설 교수의 기생충학 명강의에 매료되었던 이순형 교수는 고등학교와 대학 선배인 故 임한종 교수(고려의대 명예교수)의 권유와 지도로 1962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기생충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였다. 1960년대 초반은 전 국민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기생충 감염이 전국에 만연하던 시기여서 기생충 질환의 퇴치는 시대적 사명이었으나 전공자가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이순형 교수는 전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는 기생충 질환 퇴치가 우리나라 의사로서의 제일차적 의무라 생각하고 기생충학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기생충 질환을 중요한 국민보건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정부가 1966년 기생충질환 예방법을 제정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장내 기생충관리사업을 전개하였는데, 이순형 교수는 집단검진과 집단치료를 주요 방침으로 한 기생충관리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학문적 자문과 정책 제안, 자료 분석을 통하여 성공적인 국가 기생충관리사업을 주도하였다. 기생충관리사업에 주 역할을 담당하였던 한국기생충박멸협회는 이후 한국건강관리협회(건협)로 바뀌었고, 이순형 교수는 건협 부회장,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중기생충감염관리 시범사업(2000-2004), 북한 기생충관리사업 및 건강증진사업 등을 추진하여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수단 등을 비롯한 저개발국가, 그리고 북한 주민건강을 위해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기생충 관리경험을 전수하고 구충제를 지원하는 사업을 적극 추진하였다.
이순형 교수의 학회에 대한 기여는 1988년부터 1999년까지 11년간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 편집위원장을 맡아 Korean Journal of Parasitology의 SCIE급 국제학술지로 등재되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 핵심이다. 이 기간에 6개월 이상 지연되던 발간을 정시 발간하면서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생소하였던 전문가심사(Peer Review) 제도를 정착시켰다. 이러한 기반을 통하여 학술지가 국내 의학학술지 중에서 일찍 Medline과 SCIE에 등재되게 되었다. 이후 학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에 학술상에 상금을 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외에도 대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의학교육연수원장, 풍토병연구소(감염병연구소) 소장, 한국의과대학인정평가위원회 위원장,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 회장, 기초의학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사)인제학원 이사장, 대한민국한술원 회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순형 교수는 기생충 질환의 퇴치라는 현실적인 보건문제 해결과 함께 열악한 연구여건 속에서도 여러 인체 감염 연충 중에서 회충, 사상충, 간흡충, 장흡충 등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각종 기생충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였다. 특히 신종 인체기생충인 참굴큰입흡충(Gymonphalloides seoi)의 발견 및 학명 제정, 국내 미기록종의 발견, 외래 기생충의 수입보고, 보건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은 희귀 증례의 보고 등 임상과 연계된 기생충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병리학교실의 故 지제근 교수와의 협력을 통해 많은 증례를 보고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임상기생충학개요』(1996), 『한국 기생충감염의 연구 및 퇴치』(2017)가 있으며, 「Gymnophalloides seoi n.sp.(Digenea: Gymnophallidae), the first report of human infection by a gymnophallid」 등 350여 편의 논문을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