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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17 June 2020

기획특집 - 펜데믹 시대의 올바른 국가 방역체계 수립을 위한 제언

엄 치 용코넬대학교 의생명공학과 연구원

최초의 팬데믹은 기원전 5세기에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기에 아테네 시민의 25%를 죽음으로 몰았던 전염병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쁜공기’가 전염병의 원인(Miasma theory)으로 지목되었다. 역사학자 투퀴디데스(Thucydides)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에서 이 전염병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아테네 시민 중 빈민층이 밀집된 주거환경과 열악한 위생상태가 전염병 전파속도를 높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는 또 감염의 우려로 시민들이 환자를 돌보지 않아 혼란은 더욱 커졌으며, 이로 인해 아테네를 지탱해왔던 도덕과 법이 땅에 떨어졌고 마침내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기술하였다. 이후 인류는 콜레라, 천연두, 그리고 인플루엔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팬데믹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그리고 현재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SARS-CoV-2) 확진자가 세계적으로 663만여 명에 이르고, 39만여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하였음에도(2020년 6월 6일 기준) 언제 이 상황이 종료될지 아무도 답을 하지 못한다.

질병의 도전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그러기에 국가의 방역체계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제우스의 방패인 아이기스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국가의 방역체계 개편을 놓고 시끌시끌하다. 방역 주체인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정부조직법 입법안에는 대다수 국민이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다만 정부가 감염병 대응 강화를 위해 질병관리본부 산하의 감염병 연구센터를 확대해 국립바이러스감염병연구소를 설립하고 이를 국립보건연구원과 함께 보건복지부 산하로 이관한다고 밝힌 것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이 사건은 감염병 전문의의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고 하루 만에 이관 재검토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새롭게 승격되는 질병관리청은 모든 종류의 건강위협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 진단하며 질병 예방 전략을 수립하고 국민 건강을 지키는 질병 관리의 국가 콘트롤 임무를 수행하는 국가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질병 관련 데이터의 수집 및 분석, 모델링을 통한 확산 예측 및 방지, 그리고 질병 관련 연구와 교육 등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새로 개편 확대하는 국립바이러스감염병연구소를 질병관리청으로부터 분리한다고 했으니, 연구 기능을 뺀 ‘무늬만 청’이라는 반발을 가져왔다.

문제는 또 있다. 정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국립바이러스감염병연구소가 백신이나 치료제 연구가 목표라면, 이 연구소는 바이러스 분야 기초·원천연구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인사 적체 해소를 염두에 둔 정부 부처의 나눠먹기식 이기주의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기초연구 없는 백신과 치료제 연구는 어차피 가능하지도 않다. 하나의 연구소가 기초와 응용 연구를 어우르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지난 4월 미국 국립보건원 소속 국립알러지·감염병연구소(NIAID)가 코로나19와 관련해 발표한 연구전략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원 1순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특성분석 및 감염에 대한 면역반응 등 기초연구였고, 2순위는 검사 및 진단 장비 개발, 3순위는 치료 약물의 성능 테스트, 그리고 마지막 4순위는 안정적이고 유효한 백신 개발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기초와 응용은 손을 맞잡고 함께 가는 동반자와 같은 것이다.

한 가지 더 부연하자면 이왕 정부조직 개편이 나온 마당에 중복된 사업단도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재)방역연계범부처감염병연구개발사업단의 경우 2022년까지 4백억의 예산으로 보건복지부 등 7개 부처 공동으로 2018년 4월에 설립되었다. 이 사업단의 국가방역체계 고도화를 위한 기술개발이라는 사업목표는 신설할 질병관리청이 포괄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화학연구원의 신종바이러스 융합연구단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내의 감염병연구센터 등 질병 관련 연구단이나 센터 역시 진지하게 통폐합을 고려할 만한 대상이다.

팬데믹은 또 온다. 국가의 방역체계를 굳건히 하는 데 있어서 나쁜 공기 중의 하나는 정부 부처 이기주의다. 어떤 기관을 어떤 부처가 갖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국민의 건강과 복지만을 생각하면 된다. 아테네 민주주의를 사라지게 했던 인류 최초의 팬더믹 상황과는 정반대로 코로나19 사태에 질병관리본부와 우리 의료진이 보여준 모범적 K-방역은 이제 국제 표준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의료현장의 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에게 절로 고개 숙이는 이유는 이분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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