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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02 February 2019

의학회에 바란다

김 동 섭 조선일보 보건복지전문기자

작년 4월 ‘이대 목동 병원 의료진 구속 사태’에 대해 대한의학회가 성명서를 발표했다. 대한의학회가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성명서라고 했다. 대한의학회는 한국의 의료를 대표하는 지성들의 모임인데 국가적인 의료 현안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지난 50년간 몇차례 없었다는 것을 알고 놀랍기도 하고 의아했다. 지금까지 대한의학회는 의료 현안에 대해 의사협회가 성명서를 발표하면, 지지하는 ‘공동 성명’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으로 보인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정치나 사회 문제에 끼여들지 않으려는 의학회의 관행이 이어진 탓으로도 생각된다.

일본의학회인 ‘일본 의학회 연합(日本醫學會聯合)’을 보면 사정이 다르다. 매년 2~4차례 국가적 의료 현안에 대해 독자적인 성명서를 발표한다. 작년 9월에도 ‘의대 입시에서 기회 균등과 의학계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 추진’이라는 성명서를 후생노동성 기자실에서 발표했다. 도쿄의과대학이 의대 입시에서 여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성 의사들이 임신·출산·육아를 경험하면서도 의사 역할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보육 등의 육아지원과 교체 가능한 근무 체제로 바꾸고 단시간 근무제 등 의료 환경을 유연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학회 소속 여성 의사 비율이 23%인데 학회의 이사 등 임원 비율은 고작 8%에 그칠 정도로 여성 의사들에게 활약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앞으로 각 회원 학회에서 여성의사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반성의 내용도 포함됐다. 또 작년 3월에는 후생노동성이 추진하는 건강증진법 개정안에 대해 일침을 놓는 긴급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제 규범에 맞춰 간접흡연의 규제 강화를 요구하면서, 150㎡이하의 음식점에서 흡연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후생 노동성 정책을 따끔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일본의학회연합은 대외적인 성명서를 발표하면 ‘지성의 권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지지를 얻고 효과도 발휘한다.

정부와 각종 이해관계에 얽혀 복잡한 판단을 해야 하는 의사협회와 달리 지성을 대변하는 의료계 대표로서 국민들에게 의료의 갈길을 제시해주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의학회의 소명인 셈이다. 일본의학회는 이 때문에 정관에서 “의학 관련 과학과 기술의 연구촉진을 도모하고, 의학 연구자의 윤리행동 규범을 준수하고 지킴으로써 국가의 의학발전과 의료수준 향상에 기여한다”고 목적을 명시했다. 대한의학회도 정관에 비슷한 내용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의학연구의 기반 조성과 회원의 학술활동을 지원하고, 의학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 및 정책개발을 통해 의학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표명했다.

그러나 일본의학회연합에 비해 활동 범위를 회원의 학술활동이나 전문성 강화로 축소되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의학 발전과 의료 수준 향상을 위한 대사회적 발언권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대목이라고 여겨진다.
더욱이 일본의학회연합은 의학과 의료가 개개인과 집단의 건강을 보호하고 인류 복지에 기여하기위해 존재한다는 철학에 기반을 두고 ‘의학 연구자의 윤리행동 규범 준수’라는 목적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대한의학회에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의학발전과 의료수준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의학 연구자의 윤리 규범도 강화해야 한다는 새로운 철학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모든 의료 행위가 심평원의 잣대에 따라 움직이는 속칭 ‘심평 의학’체제에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심평의학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 없이 현재의 재정 상태에 맞춰 오늘의 의료 현실을 재단할 뿐이다. 대한의학회는 의학 발전에 따라 앞으로 우리 의료 기술과 의학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 지에 대한 미래의 그림을 그리고, 건강보험 정책과 심평원의 심사기능이 어떻게 추진되고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의료 미래의 선도자 역할이 바로 대한 의학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4차 산업시대에 걸맞는 의료 기술 발전을 도모해 국가의 새로운 성장산업의 동력이 되는 길도 열어주어야 한다. 의료 기술 발전은 지금처럼 의사들이 동네 의원에서 일하고 대학병원 의사조차 병원의 수익만 창출하려는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0.1%수재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의과 대학의 현실은 한국의 발전을 선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의대생과 의과대학들에게 이런 각성의 분위기를 깨우쳐주고, 의과대학이 의료 현장을 밑바탕으로 한 연구 중심 체제로 전환하도록 주력해야 한다.

윤리규범도 의료연구의 윤리 규범만 아니라 각종 의료 행위와 대학 병원내 성 차별이나 직종 차별 등 새로운 윤리 규범을 마련해 지킬 수 있도록 자정(自淨)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윤리 규범을 저버리는 것은 비록 개개인일지라도 그것이 의료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대한 의학회는 의료계를 대표해 국민들에게 의료계 이미지를 홍보하는 역할도 맡아야 한다. 의료 기술 개발과 의료 보급을 위해 노력한 의사 영웅들을 발굴하는 것이 첫번째 과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의사는 종두법을 개량한 지석영선생이나 청십자 운동을 전개한 장기려 박사 등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의료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거나 국민 의료 수준 향상에 기여한 의사 발굴은 단순히 책 한권에 소개하는 것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새로 신축할 의사협회 건물이나 의학회 건물에는 동상이나 부조형식의 반신상으로 의사 영웅들을 전시하고 학생·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의학박물관체제도 갖춰야 한다. 이를 통해 후학들은 사표(師表)로 모실 의사들에 대한 존경이 우러 나올 수 있고, 국민들에게 의료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키울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길이 의학회의 권위를 높이고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대한의학회(http://www.kams.or.kr)
(06762) 서울특별시 서초구 바우뫼로 7길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