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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02 February 2019

안전한 의료환경과 편견없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 후진적 정신건강 의료환경에서 정신건강 선진국으로의 변화 시작해야...

석 정 호 연세의대 정신건강의학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의료서비스를 받기위해오는 외국인이 늘고 있고 의료관광선진국으로 의료산업을 발전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서비스는 의료선진국 수준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2018년의 마지막 날 저녁 우리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며 한 해를 마무리해야 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께서 자신에게 치료받으러 온 적이 있던 환자와 면담을 하던 도중 환자가 준비해온 칼로 습격을 받아 사망하셨다는 소식이었다. 뒤이어 전해진 고인의 행적은 우리에게 더 큰 안타까움을 주었다. 사고 당일 위험을 느껴 피신을 하던 중 남은 직원들을 챙기려던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을 잃게되었고 살아오는 동안 환자들에게 보여준 태도와 치료받던 환자들의 조문애도 소식, 자신의 우울증을 세상에 알리고 우울증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책을 집필하신 일, 자살예방을 위한 ‘보고 듣고 말하기’ 개발보급을 위한 헌신적 노력 등은 고인의 삶이 정신과 의사로서 얼마나 귀감이 되는 모습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유가족이 고인의 유지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전한 말씀은 안전한 의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내용이었다. 동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모든 회원들은 고인과 유가족이 우리 사회에 전해준 따뜻한 마음과 사랑에 존경을 표했고 그 고귀한 뜻을 꼭 지키고 펼쳐나가야 한다는 책임과 사명감을 갖게 했다.

의사는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는 순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로 의사의 삶을 시작한다.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 존중하고 종교, 국적,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이 선서의 주요 내용이다. 전쟁터에서도 군의관과 의무병은 아군과 적군을 초월하여 부상자를 치료하기 때문에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붉은 십자가를 상징으로 아군과 적군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신성한 의업의 중요성을 잊고 의료현장을 폭력과 살인의 현장으로 변하게 만든 배경에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의료를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도구로써 저수가와 통제와 간섭 위주의 정책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의료현장은 비급여 중심으로 왜곡되어가고 국민건강에 필수적인 의료는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유지해야하는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게 만들었다. 언론에서는 의료인의 부정적인 부분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고 드라마에서는 의료환경과 의사를 가십거리로 활용하여 선망과 질투의 대상으로 표상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는 현장의 신성함을 존중해주고 있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결국 국민에게도 위험이 되고 건강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의료현장은 생명을 살리는 안전한 현장이어야 하지 생명을 죽이는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되어서는 안된다. 의료정책을 더 이상 표를 끌어오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현장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특히 정신건강 의료영역은 전체 의료 수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아직까지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신건강의 문제가 사회경제적 부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세계은행 보고서에서도 가장 높은 부담이 되는 문제로 언급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사회경제적 부담이 되는 것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임을 제시하고 있다. WHO의 2017년 mental health atlas 보고서에서는 하위권과 중위권 경제수준 국가들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공공지출수준이 매우 미약하여 정신병원에 대한 투자에만 80%이상이 치우지고 있어서 다른 정신건강서비스에 여력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수준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정신건강서비스 영역에 종사하는 인력 수준 차이는 가장 큰 격차가 72배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정신건강 후진국에 해당한다고 봐야하는 이유가 장기수용 위주의 저수가 입원 위주의 정신건강의료체계를 유지하고 있고 (예: 의료급여 입원정액제, 낮은 정신과 입원수가로 인한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의 폐쇄 등), 퇴원 이후의 치료가 지속되기 힘들 수 밖에 없는 분절된 정신건강의료체계 (입원과 외래는 건강보험예산, 지역사회 정신건강관리는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 예산을 통한 분절된 재정지원 등),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정신건강전문요원의 비정규직, 저임금 문제 해결 역시 요원한 일이다. 정신건강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 (예: 자살예방사업, 치매예방사업 및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비롯한 노인정신건강관리사업, 자해, 따돌림 등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 문제, 재난정신건강지원사업, 군 및 사법교정 영역에서의 정신건강지원사업 등) 늘어난 수요에 대한 사회적 지원 역시 공공보건의료서비스 차원에서 매우 부족한 수준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이마저도 통합되지 못하고 분절되어 진행되고 있다. 지역사회서비스와 의료기관을 연계시키는 통합적인 공공 정신건강서비스 정책을 정부와 전문가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마련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살다가 마음이 울적할 때나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사이에 갈등과 문제가 생겨서 마음이 답답할 때, 혼자가 된 것 같다고 느낄 때나 무서움이나 공포심이 생겼을 때, 살고싶지 않은 마음이 생길 때처럼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마음 편안하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와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정신건강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보편적인 기본권의 문제이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이 일반인뿐 아니라 정치권이나 입법기관과 같은 국가를 이끌어가는 사회층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신병원이 인권탄압과 공포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는 후진국의 수준의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신건강의 문제가 생겼다고 느낀 당사자도 편한 마음으로 일찍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오지 못하고 가족들도 망설이며 시기를 놓치게 된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정신건강의 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 수준에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로 지속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더욱 정신건강의 편견과 사회적 인식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는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정신건강은 신체건강과 똑같이 편견없이 치료받을 수 있어야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진정 행복하고 높은 삶의 질을 영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려면 내 주위의 사람들도 함께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신적 건강이 신체적인 건강과 동등한 수준으로 중요하게 생각되고 국가에 의해 보장될 수 있는 보건정책 수립 및 법과 제도의 정비가 지금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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