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창 환 울산의대 응급의학
우리가 있는 공간에 일산화탄소가 누출된다면, 우리는 일산화탄소의 누출을 인지할 수 있을까? 일산화탄소는 탄소가 포함되어 있는 화석연료가 불완전 연소될 때 발생하는 가스로 무색, 무취, 무미 및 비자극성이기 때문에 일산화탄소가 누출되더라도 우리는 일산화탄소의 누출을 인지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일산화탄소가 누출될 경우 흔히 일산화탄소에 중독이 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일산화탄소는 ‘침묵의 살인자(the Silent Killer)’로 불리우며, 일산화탄소 중독은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사망률과 이환율을 보이는 흔한 중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이전까지는 연탄보일러 사용으로 인한 비의도적 일산화탄소 중독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연탄보일러 사용은 감소하고 있으나 비의도적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는 증가하고 있으며, 중독의 원인은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뉴스 검색을 통해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발생한 화재와 무관한 비의도적 일산화탄소 중독사고 153건을 분석한 결과, 중독사고의 원인으로 부적절한 숯불의 사용이 가장 많았으며, 가스보일러, 온돌 난방, 연탄보일러, 가스순간온수기, 연탄난로 등이었다. 부적절한 숯불 사용으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은 난방을 위해 밀폐된 방 안에 숯불을 피우는 경우, 캠핑을 하면서 난방용품 대용으로 텐트 안에 숯불을 피우는 경우, 밀폐된 공간에서 숯불로 고기를 구워 먹는 경우 등에서 발생하였다. 결과적으로 밀폐된 공간 내에서 탄소를 함유한 물질을 태울 경우 일산화탄소 발생으로 인한 중독사고가 흔하게 발생할 수 있다. 체내로 흡입된 일산화탄소는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carboxyhemoglobin)을 생성하고, 산소헤모글로빈 해리곡선(oxyhemoglobin dissociation curve)를 좌측으로 편위 시킴으로써 조직의 저산소증을 유발한다. 일산화탄소의 헤모글로빈에 대한 친화력은 산소에 비해 250-270배 높아 흡입되는 일산화탄소의 양이 매우 적은 경우에도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이 생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일산화탄소는 세포질 헴(cytosolic heme) 농도를 증가시켜 산화 스트레스(oxidative stress)를 유발하고, 혈소판의 헴 단백질 및 시트크롬 c 산화효소(cytochrome c oxidase)와 결합하여 세포 호흡을 방해하며, 반응성 산소 종(reactive oxygen species)을 생성하여 신경괴사(neuronal necrosis)와 세포자멸사(apoptosis)를 초래한다. 손상된 세포호흡은 저산소증-유도성 인자 1α(hypoxia-inducible factor 1α)를 포함하여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하여 유전자 조절을 통해 일산화탄소의 노출양에 따라 신경 및 심장 보호 또는 손상을 유발한다. 또한 일산화탄소는 저산소증 경로와 무관한 여러 경로를 통해 염증을 일으켜 신경 및 심장 손상을 유발한다. 경미한 일산화탄소 노출의 경우 두통, 근육통, 어지럼 또는 신경정신병적 증상이 발현하고, 심한 일산화탄소 노출의 경우 착란, 의식소실, 발작, 심근손상 등이 발현하며,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지연성 신경정신병적 후유증(delayed neuropsychiatric sequelae)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된 이후 수일에서 240일 사이에 기억력장애, 인지장애, 성격변화, 운동장애, 배뇨장애 등의 다양한 신경정신병적 증상들이 발현하는 것을 말하며, 일산화탄소 중독 이후 0.2-40.0% 정도에서 이러한 후유증이 발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들은 응급실 방문 당시 또는 치료 후 퇴원 당시에 신경학적 결손을 보이지 않더라도 지연성 신경정신병적 후유증의 발현 가능성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임상의들은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가 퇴원하는 시점에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이러한 후유증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 경증의 지연성 신경정신병적 후유증의 경우 시간에 지남에 따라 회복되지만, 중증의 경우에는 회복되지 않고, 무운동함구증(akinetic mutism) 상태로 진행될 수 있다, 현재까지 이러한 후유증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가 없는 실정이다. 일산화탄소 중독의 진단은 일산화탄소에 노출된 병력과 더불어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 농도 검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 농도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없더라도 환자의 증상과 노출 병력을 고려하여 일산화탄소 중독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산화탄소 중독에서 가장 중요한 치료는 산소를 투여하는 것이다. 임상적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이 의심되면,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 농도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이전에 비재호흡식 안면마스크(nonrebreather facial mask)를 통해 100% 산소를 공급하여야 한다. 중증의 일산화탄소 중독의 경우 고압산소치료(hyperbaric oxygen therapy)를 시행해 볼 수 있다. 일산화탄소 중독의 최종 치료목표는 지연성 신경정신병적 후유증의 발현을 예방하고, 이러한 후유증의 중증도를 줄이는데 있다. 고압산소치료가 지연성 신경정신병적 후유증을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이론적으로는 고압산소치료가 지연성 신경정신병적 후유증의 예방과 중증도 감소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이상적으로는 일산화탄소 노출 이후 6시간 이내에 고압산소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최대한의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고압산소치료를 위한 챔버를 보유하고 있는 병원 수가 제한적이고, 챔버를 보유한 병원이라도 의식변화, 혈역학적 불안정성이 있는 환자, 기관삽관이 되어 있는 환자 등 중증의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들을 위한 다인용 챔버를 보유하고 있는 병원은 극소수이므로,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가 시기 적절하게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 일산화탄소 중독이 치명적임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