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은 우리나라 의학발전의 기반이 되는 학회의 육성과 발전에 헌신하고 봉사한 분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8년 11월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
2026년도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에 훌륭하신 의학계 선각자 네 분이 헌액되었다. 이번 호에는 최영길 명예교수님의 공적을 기리며, 네 분의 대현(大賢)의 발자취를 한 분 한 분씩 찾아 연재하고자 한다.

최 영 길
서울의대 내과학
최영길 교수는 국내 최초로 내분비학 연구실을 개설하고 호르몬 질환 진단의 기반을 확립한 의학자이다. 1959년 서울의대 졸업 후 당시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위해 방한한 에드먼드 플링크(Edmund B. Flink) 교수와의 만남을 계기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대학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시작하였다.
스테로이드 호르몬 연구의 메카인 신시내티 대학교로 옮겨 당대 최고의 석학인 에밀 워크(Emile Werk) 문하에서 5년간 수학하였다. 1964년 신시내티 대학교 내과 조교수로 임명된 최영길 교수는 당시 연봉 7만 달러라는 안정적인 지위와 명예를 얻었지만, 조국의 낙후된 의료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교수직을 버리고 귀국을 결심하였다. 1970년 귀국 당시, 분과 개념조차 희박하고 과학적인 진단 체계가 전무했던 한국 의료계의 현실에 충격을 받았으나, 사명감으로 가톨릭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하며 한국 내분비학의 개척자로 나섰다.
1977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후, 1980년 중앙검사실과는 완전히 독립된 국내 최초의 내분비연구실을 개설하였다. 이는 내분비 질환에 전문화된 연구소로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으며 한국 내분비내과의 이정표가 되었다. 최영길 교수는 방사면역측정법(RIA)을 도입하여 호르몬 질환을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1982년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인 로제 기유맹(Roger Guillemin) 교수는 최영길 교수의 연구소를 방문한 후 유럽의 연구소보다 우수하다고 극찬하였다. 또한 비정상적 섬모운동 및 불임이 특징인 'immotile cilia 증후군'의 국내 첫 환자를 보고하는 등 임상 의학자로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남겼으며, 평생 300편 이상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며 한국 의학의 과학화에 일생을 바쳤다.
최영길 교수는 대한민국 내분비학계와 당뇨병학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79년 서울대병원에서 현대의학의 변방이었던 한국에 ‘내분비’라는 이름을 걸고 공식적으로 열린 첫 학술집담회인 ‘제1차 내분비연구회’를 개최하였다. 이를 모태로 1982년 대한내분비학회 창립을 주도하였으며, 학회 내 간행 및 학술위원회를 설치하고 『내분비학 용어집』을 발간하는 등 학문의 체계화와 과학화를 이끌었다. 1984년 대한당뇨병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1987년까지 재임하며 학회의 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였다. ‘준회원제’를 전격 도입하여 기초 연구자와 다른 분야 전문가들을 학회로 포용함으로써 한국 당뇨병 연구의 돌파구를 마련하였다.
경희대학교 부속병원장, 경희의료원장 등을 역임하며 선진적인 의료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대한병원협회 부회장, 사립대학교 의료원장 협의회 회장 등을 거치며 국내 의료 행정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러한 평생의 헌신과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았으며, 현재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원로회원으로서 의학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평생을 의사, 학자, 경영인으로서 정도를 걸어온 최영길 교수의 삶은 대한민국 내분비학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주춧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