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 진 홍대한의학회 간행이사
이번에 ‘숨 가쁜 추적(Breathless)’을 번역하여 출간하게 되었다(군자출판사 간). 베스트셀러 ‘Spillover(‘인수 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와있음)’의 저자 데이비드 쾀멘이 쓴 이 책은 코로나19 기원을 둘러싼 과학적 추적 과정을 정밀하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팬데믹 동안 전 세계에서 제기된 각종 주장과 가설, 그리고 이에 대한 과학적 검증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간다.
코로나19 기원 논쟁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정치와 국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왔다. 한쪽에서는 “중국에서 조작됐다”, “우한 실험실에서 유출됐다”라는 주장이 대중의 분노와 직관을 자극했고, 다른 쪽에서는 “자연 기원”을 뒷받침하는 분자 진화 연구 결과가 쌓였다. 과학자의 임무는 어느 가설이든 공정하게 검증하는 일이다. 이 책은 그 원칙—과학적 엄밀성과 품위 있는 사고—를 끝까지 지켜간다.
팬데믹 시기, 현장 취재가 어려웠던 저자는 공개된 과학 문헌과 연구자 인터뷰, 데이터 분석에 기반해 서술을 구성했다. 인용할 때는 실제 발언을 그대로 남기는 원칙을 지켰다.
이 책의 첫 번째 가치는 “우리가 아직 무엇을 모르는가”를 명확히 보여주는 데 있다. 결론을 성급히 내리지 않고, 자연 기원설과 실험실 유출설 모두를 가능성 안에 두며, 배경과 선입견이 어떻게 판단을 왜곡하는지 환기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동일한 엄밀성으로 검토하자”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과학의 미덕은 단정이 아니라 가설 간 경쟁과 증거의 축적에 있다.
자연 기원 이론은 “유전체(genome)”와 “공간적 역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힘을 얻는다. 2022년 Science에 실린 초기 확진 사례의 공간 분포 분석은 화난(華南) 수산시장을 ‘팬데믹 초기의 발원지(epicenter)’로 제시했다. 계통도 분석에서는 서로 다른 두 계통(A형, B형)이 독립적으로 인간 집단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두 가지 관찰은 ‘단일 사건’보다 ‘반복된 종간 전파(spillover)’라는 설명에 더 부합한다.
분자 수준의 연구 결과도 자연 기원 이론을 뒷받침한다. 팬데믹 초기에 공개된 데이터에서 천산갑 코로나바이러스가 SARS-CoV-2의 수용체 결합 영역(RBD)과 매우 유사한 서열을 가진다는 관찰이 보고되었다(저자는 이 책에서 나약한 동물 천산갑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들여 기술하고 있는데, 과학 교양서이지만 웬만한 문학서 못지않은 애처로움으로 심금을 울린다). 이는 특정한 유전적 특징이 인위적 설계의 표지라기보다 야생 코로나바이러스 풀에서 이미 존재하던 조합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저자는 이런 편린들을 연결해, “자연 속 다양한 저장소—박쥐, 중간 숙주—를 떠도는 유전형의 조합과 선택”이라는, 바이러스 진화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차분히 보여준다.
역학적 분석은 ‘시장’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화난 시장은 신선 식품과 다양한 동물(야생 포함)이 뒤섞인 고위험 환경이었다. 이는 원인을 ‘증명’하지는 않지만, 초기 환자가 시장 인근에 집중되고, 현장 샘플에서 너구리 등의 DNA와 바이러스 절편이 함께 발견된 사실은 동물-사람 전파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 책은 실험실 유출설 역시 무시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2020년 이후 언론과 학계에서 제기된 쟁점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고, 강경 성명과 반론, WHO 보고서 내용을 사실에 기반해 균형 있게 다루어 편향된 자료 선택을 경계하도록 이끈다.
팬데믹 초반 정보 흐름은 과학적 경보망(ProMED)의 민감성, 현장 보고, 예비 서열 공개, 다학제 분석이 어떻게 결합되어 집단지성을 형성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는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느슨해 보이지만 사실은 촘촘한 네트워크가 위기 초기를 잡아냈음을 시사한다. 음모론은 단선적이고 의인화된 ‘악의 의지’를 유혹적으로 제시하지만, 과학은 중첩된 데이터와 상충 가능성을 조율하는 느리지만 정확한 과정인 것이다.
코로나19는 21세기의 마지막 팬데믹이 아닐 것이며(솔직히 마지막이기를 헛되이 바라고 있지만), 최악조차 아닐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잘못했는가’를 끝없이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파고에 대비해 감염병 감시 데이터 공유 체계와 실험실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방향을 제시한다.
작년에 이 책을 아마존 킨들로 처음 읽고, 저자의 과학적 태도와 정직한 서술에 깊이 감명받아 번역을 결심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과학적 증거와 합리적 사고의 힘을 전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이 책은 결코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니지만, 많은 의료인이 읽어 주시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는 한 권의 책을 완독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 닥칠 수많은 위기에 대비하는 사고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