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윤 영대한항공 항공보건의료센터 센터장
항공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갑작스레 발생하는 기내 응급환자와 이에 대처하는 의료진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기내는 지상의 병원과 비교해 인력, 시설, 장비가 부족한 특수하고 제한된 환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 존중과 환자를 위하겠다는 선서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기내 닥터콜에 주저하게 되는 '진짜 이유'는 응급처치의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와 사후 법적 분쟁 가능성 여부이다. 2017년 대한가정의학학회 및 한국항공우주의학회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기내 응급상황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비중은 61.6% 수준에 그쳤다.
선의의 의료 행위를 보호하는 국내외 법적 근거
의료진의 선의의 응급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내외 법적 보호 규정은 명확히 마련되어 있다. 국내법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선한 사마리아인 법)에 따르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법 조항의 존재 이유는 선의의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이다.
국제적으로도 기내 의료진의 응급처치에 대한 법적 보호는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법(Aviation Medical Assistance Act, SEC 5)에 따르면 “기내 의료 응급 상황 시 지원을 제공하거나 제공하려고 시도한 개인의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해 제기된 모든 소송에서 중과실의 위법 행위가 없는 한 손해배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미국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발적으로 기내 의료 응급상황에 도움을 제공한 의사에게 책임을 면제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국내에서 이와 같은 기내 응급처치와 관련된 의료진에 대한 소송 사례는 현재까지 없다. 만약 발생하더라도, 항공사에서 법적 책임을 보장하고 대처하는 절차가 잘 갖춰져 있다.
중대한 과실(Gross Negligence) 판단 기준과 항공사의 보호 장치
기내 응급처치에 주저하는 의사들의 가장 큰 우려는 '중대한 과실'이 제한된 기내 환경에서 어떻게 해석될지이다. 항공안전법 및 국제 가이드라인에 따른 최소한의 응급처치 환경과 항공사의 적극적인 지원 시스템은 이 '중과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제도적 보호 장치이다.
대한항공은 기내 위성전화를 통해 24시간 지상 의료진으로부터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체계인 '항공응급콜' 시스템을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한 지상 전문 의료진의 실시간 자문은 기내 의료 전문가의 합리적인 재량권(Reasonable professional discretion)을 뒷받침하며, 의료 행위의 객관성을 확보하여 중과실에 대한 법적 방어력을 극대화한다.
[그래프 1] 대한항공 기내 응급콜 운영 현황 (환자승객 증가와 항공응급콜 증가 동향)
이러한 응급콜 건수의 증가 추이는 지상 의료진의 조언이 기내 응급상황 대처의 중요한 '안전망'이자 의료진의 '중과실 방지 장치'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은 선의로 응급처치를 제공한 의료진의 책임을 면제하고, 항공사 역시 법적 책임을 보장함으로써 의료진이 안심하고 도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기내 응급상황은 흔하지는 않지만, 언제든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제한된 기내 환경과 전문 의료인의 부재라는 특수성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내에 탑승한 의사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주저하지 않는 의료진들의 용기와 대처가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기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