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 성 욱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감정(鑑定)은 법관의 판단능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가진 자로 하여금 법규나 경험칙 또는 이를 구체적 사실에 적용하여 얻은 사실판단을 법원에 보고하게 하는 증거조사이다. 재산에 대한 시가감정, 토지 등에 대한 측량감정, 공사의 하자감정, 문서의 진위감정을 비롯하여 감정의 대상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다.
그중 의료감정은 전문가인 의사를 통해 법관이 사실판단을 위한 전문지식을 얻는 것으로서 신체감정과 진료기록감정이 있다. 의료감정은 다른 여타의 감정보다 훨씬 고도의 전문지식이 동원되는 특성상 법원은 의료감정 결과에 사실상 기속될 수밖에 없다. 물론 법원이 의료감정의 결과를 다른 의료감정결과를 통해 배척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요건은 매우 엄격하다. 대법원은 “어떤 특정한 사항에 관하여 상반되는 여러 개의 감정 결과가 있는 경우, 각 감정결과의 감정 방법이 적법한지 여부를 심리 · 조사하지 않은 채 어느 하나의 감정 결과가 다른 감정 결과와 상이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감정 결과를 배척할 수는 없다(대법원 91다34561 판결 등). 그리고 동일한 감정사항에 대하여 2개 이상의 감정기관이 서로 모순되거나 불명료한 감정의견을 내놓고 있는 경우 법원이 그 감정 결과를 증거로 채용하여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증거자료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각 감정기관에 대하여 감정서의 보완을 명하거나 증인신문이나 사실조회 등의 방법을 통하여 정확한 감정의견을 밝히도록 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2007다64181 판결 등).”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법원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의료감정을 중복으로 허가하지 않는다. 즉 한번 나온 의료감정 결과에 대하여 감정인에 대한 사실조회를 통해 그러한 결과가 나온 근거를 소상히 밝히거나 다소 의미가 불분명한 부분을 명확히 하는 방법을 허용할 뿐 또 다른 의료감정을 통해 한번 나온 의료감정을 배척하는 방식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대체적인 실무의 경향이다.
신체감정은 각종 사고로 인한 상해의 부위와 정도, 향후 치료 소요일수, 노동능력상실 정도는 물론이고 정신상태까지도 대상으로 한다. 한편 진료기록감정은 의사가 작성한 진료기록을 토대로 현재 대상자의 상태 등을 파악하는 것과 아울러 진료기록 자체가 적절하게 작성되었는지 여부도 그 대상이 된다. 대법원은 ‘감정인 등 선정과 감정료 산정기준 등에 대한 예규’를 정하여 신체감정과 진료기록감정을 나누어 각 감정인 선정절차 등을 정하고 있다. 특히 진료기록감정인으로는 수련기간을 제외하고 국공립병원 및 대학부속병원에서 10년 이상 임상경험이 있는 전문의로서 해당 병원에서 퇴직한 지 10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사람 중에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감정인 명단에 등재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는 진료기록감정에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견지에서 그 자격요건을 신체감정인보다 더 강화하여 규정한 것이다. 감정료는 감정 문항 수에 따라 다른데 신체감정의 경우 건당 80만원에서 140만원(40개 초과 문항당 5만원 추가), 진료기록감정의 경우 120만원에서 180만원(40개 초과 문항당 5만원 추가)로 산정되는데 이는 2025. 1. 1.부터 100% 인상된 금액이다. 의료감정의 경우 의사들이 이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현실과 걸맞지 않는 소액의 감정료가 지급되는 데에 비해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에 직접 증인으로 출석하여 감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수도권의 한 법원에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진료기록감정인을 증인으로 채택하였다가 진료일정 등으로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자 고액의 과태료를 부과하자 해당 대학병원은 이에 항의하여 더 이상의 진료기록감정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다. 이러한 연유 등으로 전국적으로 절차가 지연되어 짧게는 몇 개월부터 길게는 수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감정결과를 받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대법원은 이러한 현실 등을 고려하여 의료감정에 대한 감정료를 대폭 상승한 것이다.
의료감정은 반드시 법원에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법원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사감정도 널리 이루어지고 있는데 감정의 정의를 어디까지로 규정하는지의 문제이기는 하겠으나 보험사고 판정과 관련하여서도 의료감정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특히 사망으로 인한 보험사고의 경우 사인을 판단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전문가에 대한 의견조회 역시 의료감정의 한 분야로 볼 수 있고, 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의료감정은 중재절차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의료감정이 법적으로 활용되는 영역은 의료사고를 다투는 전형적인 의료분쟁사건은 물론이고, 산업재해사건, 보험분쟁사건, 교통사고사건, 형사사건 등 매우 다양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의료감정은 전문적인 의사의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고 사실상 의료와 관련된 지식은 법관을 비롯한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감정 결과는 거의 그대로 채택되어 사건의 결론을 좌우하게 된다.
결국 의료감정은 사건의 결론을 좌우할 만한 매우 중요한 증거방법으로서 의료감정을 행하는 의사들은 감정과정에서 고도의 주의를 요한다. 금년부터 감정료를 어느 정도 현실화한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며 의료감정의 질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의료감정이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