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재 영충남의대 내과학
빠르게 변화하는 의료환경, 흔들리는 전문직업성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비대면 소통의 일상화로 의료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진료 현장에서의 의사-환자 간 직접적 소통은 오히려 과거보다 어려워지고, 의료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문학회들은 “전공의와 회원을 대상으로 의료윤리 교육을 어떻게, 어떤 주제로 진행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의료윤리 교육 콘텐츠와 표준화된 교육자료의 필요성
대한의학회는 2024년 산하 전문학회를 대상으로 의료윤리 교육의 현황과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다수의 학회가 “표준화된 교육 콘텐츠와 사례집이 절실하다”라고 응답했다. 이에 대한의학회는 지난 3월, 윤리교육의 체계적 지원을 위해 ‘핵심 교육과정’과 ‘교육자료’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의과대학 의료윤리 교육자 및 임상윤리 전문가, 몇몇 수련학회의 윤리교육 이사들로 구성된 실행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세 가지 핵심 주제와 주제별 사례 개발
시중에 발행된 기존 의료윤리 서적과 사례집을 분석한 결과, 임상윤리가 다루는 주제의 폭이 방대하여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영역을 포괄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실행위원회는 2025년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하고 교육적 파급력이 큰 세 가지 주제를 다음과 같이 선정하였다.
① 의료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
② 임상윤리(의사-환자 관계, 의사-사회 관계)
③ 최신 의학과 AI 관련 윤리 문제
위원회는 각 주제별 팀을 구성하여 약 3개월간의 작업 끝에 열다섯 사례 이상의 실제적‧토론형 사례를 개발하였으며, 지난 9월 6일 대한의학회 산하 전문학회 윤리‧법제이사를 대상으로 <의료윤리교육 워크숍>을 개최하여 그 내용을 공유하였다.
‘사례집’이 아닌 ‘워크북’으로 — 토론 중심 교육을 지향
대한의학회는 이번 교육자료를 단순한 사례집 형태가 아닌 ‘워크북’으로 발간하기로 하였다. 이는 각 전문학회가 자체적으로 윤리교육을 진행할 때, 소규모 토론 중심의 참여형 교육 방식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유상호 교수(한양대학교 의료인문학교실)는 “사례 토론 중심의 교육은 경험(사례 접하기) → 인식(생각 나누기) → 확장(토론과 발표)의 과정을 통해 학습자의 윤리적 감수성과 사고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하였다.
의료윤리 교육은 ‘착한 사람 만들기’가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 향상을 위한 것
실행위원들과 워크숍 참가자들은 윤리교육을 계획할 때 어려움이 ‘학회에는 의료윤리 전공자가 없는데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하였다. 또 소속 학회 이사회 내에서 ‘심각한 윤리 문제를 안건으로 다루게 되는 경우 상위기관에서 법적 징계로 해결할 수 있다면 모를까 학회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해결책이 없다’고 한다. 문재영 실행위원(세종충남대학교병원 중환자의학 교수)은 ‘교육 없는 징계는 외부적 통제일 뿐, 자기성찰·예방·전문직 내부의 윤리의식 향상과 사회적 신뢰 회복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하고, 의료윤리 교육은 <착한 사람 만들기>가 아니라 임상과 연구 등 현장에서 윤리적 갈등을 인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므로 선진국처럼 일상적 교육‧토론‧피드백 구조를 통해 문화적 예방 효과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2월 발간 목표… 현장 중심 윤리교육의 표준 제시 기대
워크북 개발을 이끌고 있는 임춘학 대한의학회 정책이사(고려대학교 마취통증의학교실)는 “윤리 전공자를 단기간에 양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전문적 교육과정은 대한의학회 회원학회인 ‘한국의료윤리학회’가 개발한 단기 코스 과정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임상 현장과 전문학회의 특수성, 구체성을 반영한 교육은 외부 전문가와 학회 내부 전문가가 표준교재를 활용하여 협력하는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하고, “올해 12월까지 원고를 보완하여 겨울학기 중 발간할 예정”이라며, “워크북과 함께 강의용 교육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학술대회, 병원, 의과대학 등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의학회는 이번 사례집을 통해 전문학회별로 자생적인 윤리교육 문화를 형성하고, 미래 세대 의사들이 실제 진료 현장에서 마주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주체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