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경 철영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호흡기·알레르기내과)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사업(이하 구조 전환 사업)’은 지역의료에 또 다른 부담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2월 말부터 시작된 의정 갈등으로 이미 상당수의 교수가 수도권 대형 병원이나 지역 종합병원으로 이직하여 일부 분야 진료기능은 이미 무너진 상태인데 구조 전환 사업은 교수의 이탈을 더 가속할 수 있어 지역의료의 위기는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교수들의 이탈은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 전임의 양성과정에도 영향을 미쳐 전문 의료 인력 양성에도 어려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대학병원은 공동화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가 예상되는 가장 큰 원인은 상급종합병원 ‘적합 질환군’이라는 새로운 분류 기준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적합 질환군’에 속하지 않는 진료 분야는 축소가 불가피하며, 따라서 병원은 이 분야에 대한 지원을 현재와 같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상급종합병원은 전체 환자 중 적합 질병군 비율을 70%까지 올려야 유지될 수 있는데,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중증이나 응급이 아닌 분야나 수익성 낮은 비적합 질환군 분야는 축소하여야 한다. 비적합 질환군 분야는 입원 없이 외래진료만 보는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교수 확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지금처럼 동일한 학문 분야에 다양한 전공 분야의 교수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면 호흡기 내과의 경우 ‘만성기도 질환 분야(천식, COPD, 기관지확장증), 호흡기 감염 분야(결핵, 폐렴)’ 전공 교수와 이비인후과의 경우 ‘두경부종양 전공자’ 이외는 실질적으로 비적합 질환군으로 분류되어 진료 자체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즉 지방대학병원은 진료의 공백 사태가 진행되고 있어 진료 능력 저하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양성도 어려워질 것이다. 중증질환의 비중이 낮은 분야의 진료 능력은 장기적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구조 전환 사업’의 여파: 지역은 감당할 능력이 부족하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문병원 위주로 병원이 구성되어 있다. 정형외과 전문병원, 척추 전문병원, 안과 전문병원, 일반 요양병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형태는 단순화되고 분절적 형태의 병원으로 구조 전환 사업의 결과로 대학병원에서 밀려난 환자들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척추 분야나 정형외과의 경우 다양한 만성질환이 있거나 단일 질병명으로 묶을 수 없는 복잡성을 띤 수술은 지금까지 거의 상급종합병원이 담당하고 있었지만 구조 전환 사업이 본격적으로 적용될 때 이들 환자는 상급종합병원이 담당할 수 없게 된다.
보건당국은 ‘포괄 2차 병원 지원사업’을 통하여 지역 2차 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안을 발표하였다. 특히 ‘포괄+거점형’의 경우 지역 내 다양한 중등도 질환을 포괄적으로 진료하고, 골든 타임이 중요한 응급 상황에 대응하는 거점병원을 육성한다는 것인데, 이는 현재 상급종합병원이 담당하는 환자 중 ‘적합 질환군’을 제외한 환자들을 담당할 수 있는 병원을 의미한다. 지역 내 이러한 의료기관은 절대 부족이다. 외형적 형태는 갖출 수 있겠지만 진료 능력을 갖추기는 어려워 보이는데, 능력 있는 의사를 확보할 수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병원의 젊은 교수들이 이직하여 이 자리를 메꿀 수밖에 없다. 대구는 5개 상급종합병원 환자들이 지역 내 병원으로 이동하여 치료받아야 한다면 지금 대구 지역의료로는 감당할 수 없다. 중등도 질환에 대한 진료 능력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지역 내 적절한 진료 능력을 갖춘 2차 병원이 부족하다면 상급종합병원이 2차 진료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지역에선 2차 병원이 3차 진료를 담당하는 때도 생길 수 있다. 지역의 의료 상황이 수도권과 차이가 큰데 일률적으로 2차 진료와 3차 진료를 기계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지역의 환자들이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지역 상급종합병원: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희귀, 응급질환의 진료만 담당한다면 인구가 증가하지 않고, 경제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지방의 상급종합병원은 재정적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학병원은 높은 진료 능력과 지역의 의학교육과 보건교육(간호대학, 보건 계열 대학)을 담당하고 있어 대학병원의 지속적 발전은 지역의료 발전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중증, 희귀, 응급질환 중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질환은 암이다. 대부분 희귀질환은 수익성이 없으며, 응급질환의 경우 인력과 장비, 공간이 많이 필요하여 유지 비용이 높다. 전문의 중심 병원, 환자 대비 간호사 비율의 증가 등으로 고정경비 지출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구가 감소하고 외부로부터 환자 유입이 없는 지방의 경우 암 환자는 노령인구 증가에 따른 증가만 있을 뿐이다. 지역의 상급종합병원의 수익 구조가 악화할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지방대학병원은 대부분 사립인데 상급종합병원 기준은 충족하더라도 재정적 적자가 지속되면 견딜 수 없다. 이 경우 상급종합병원을 계속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병상수급관리계획’: 획일적 규제는 지역의료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병상수급관리계획’을 발표하였다. 일명 ‘병상 총량제’로 불리는 정책이다. 지방 대부분 지역은 일반 병상 ‘공급 조정·제한’으로 실제 병원 신설이나 기존 병원의 병상 증설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지역의료 강화라는 절대적 과제를 고려한다면 어울리기 어려운 정책이다.
지역 완결 의료체계를 만들어 대부분 질병을 지역에서 치료하여야 하는데, 지방은 병상을 더 늘릴 수 없어 현 상태에서 지역의료는 움직이기 어렵게 되어 버린 것이다. 앞서 구조 전환 사업에 따라 지역의료 능력 향상이 시급함을 강조하였는데, 특히 ‘지역 포괄 2차 병원’을 양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재고되어야 할 정책이다. 지역의료에 이바지할 수 있는 2차 병원은 어느 정도 규모가 갖추어져야 하기에 병원 신설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지역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환자의 수도권 집중을 유도할 우려가 있다. 의료전달체계를 고려할 때 지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비수도권 포괄 2차 병원’ 정도의 규모는 허락되어야 할 것이다.
병상 규제를 하기 전 실제 기능을 하는 병상에 관한 확인이 필요하다. 기존 병의원은 병상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혀 기능하지 않는 병상은 실제 병상수에서 제외하여야 한다. 정형외과, 비뇨기과, 외과 등은 의원급이라도 적게는 여러 개로부터 많게는 수십 개의 병상을 보유한 예도 있다. 이들 때문에 신규 개원 자체를 못 할 수도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병상 ‘공급 조정·제한’ 정책은 지역의료를 기존 병원의 선의에만 맡기는 형국이 되어 경쟁을 통한 양질의 의료 제공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지역의료를 저해할 수 있다는 면에서 실행하기에 앞서 지방에도 반드시 필요한 정책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은 지역 병의원의 역할 강화, 의료전달체계 개선, 효율적 의료자원 활용으로 지역의 의료 수준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 오랫동안 의학교육과 중증 의료에 종사한 전문가들은 이 사업의 보이지 않는 면을 걱정하고 있다. 오늘 우리나라 지역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는 정책인지, 도입하는 각 정책은 서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