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에 훌륭하신 의학계 선각자 여섯 분이 헌액되었다. 이번호에 그 중 백상호 명예교수님의 공적을 기리며, 여섯 분의 대현(大賢)의 발자취를 한 분 한 분씩 찾아 연재하고자 한다.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은 우리나라 의학발전의 기반이 되는 학회의 육성과 발전에 헌신하고 봉사한 분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8년 11월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
백 상 호서울의대 해부학교실
<해부학 분야>
해부학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형태학 연구에서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던 “면역조직화학염색” 방법을 그 첫 개발지인 미국 미시간 대학 병리학교실에서 수학하고 국내에 이를 처음으로 도입하여 보급시켰다. 향후 이 연구방법은 형태학 연구자의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보편적인 수단으로 정착되었으며, 이 방법을 토대로 많은 국내 연구가 이루어졌다. 백상호 교수 자신 역시 이 방법을 활용하여 많은 연구업적을 이룬 바 있다.
해부학 분야에서 두 번째 공헌한 내용은 언어의 순화 작업이다. 이것은 해부학계 뿐만이 아니라 나중에는 전체 의학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의학용어 순화 작업의 시작이 되었다.
우선 해부학 분야에서 당시에 사용하던 한자 중심의 해부학용어를 한글을 중심으로 한 “한글해부학용어”로 바꾸었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 의학용어 전반에 걸쳐 한글화가 퍼져 나갔다.
백상호 교수는 1987년부터 향후 10년간 대한해부학회 용어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자 중심의 일본식 해부학용어를 과감하게 버리고 쉬운 한글해부학용어를 제정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초창기 3년 간 무려 160회의 회의라는 집중작업을 주관하면서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용어를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 해부학용어(셋째 판, 1989)로 제정 간행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후에도 지속적인 작업이 이어져 그 뒤로 지금은 해부학용어(여섯째 판: 전자판, 2014)까지 나왔다.
해부학용어의 한글용어 제정 캠페인은 의학 전반으로 퍼지며 자극을 주어 다른 분야 용어와 함께 해부학용어는 의학용어집에 수록되었으며 현재는 방송, 신문에서도 이 한글 용어가 활용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노력은 국가에서도 인정하여 1991년 10월 9일 한글날 기념식에서 한글해부학용어집 제작 발표를 한 공로로 학회 용어위원회가 세종문화상 대통령상과 훈장을 받은 바 있다.
<의학교육 분야>
의학교육자로서의 백상호 교수의 활동은 의학 전반에 걸쳐 전무후무한 것이다. 서울의대 부교수로 재직 중이던 1978년 3월에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학교 의학교육학 대학원과정에 들어가 향후 5년에 걸친 수련을 통하여 1983년 교육학석사 학위(MHPEd)를 취득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백상호 교수는 이때 배운 내용을 적용하여 우리나라 의학교육 체제 전반에 걸친 개혁을 주도하였다.
교과목 중심의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기관계통별로 수직형으로 연계시키는 커리큘럼으로 전환시키고, 평가 측면에서도 각 대학 의학교육과 의사국가시험제도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켜 한국의 의학교육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소속된 서울의대 소재 의학교육연수원을 중심으로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에게 의학교육의 여러 분야(커리큘럼, 교수법, 평가 등등)에서 선진 의학교육의 내용을 적극 보급 전파함으로써 다른 나라에 비해 낙후되어 있던 우리나라 의학교육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구체적인 예로는 “교과목 중심의 의학교육”에서 “통합교육 중심의 의학교육”으로, “강의중심 의학교육”에서 “증례토론 중심 의학교육”이라는 의학교육 전체의 개념과 틀을 바꾸는 성과를 그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한국의학교육학회장으로 재직하던 1989년 우리나라로서는 첫 번째인 ‘한국의학교육 (Korean Journal of Medical Education)’이라는 학술지를 발간 기여한 바 있다.
의학교육 개선은 해부학교육 분야에도 적용되어 기존의 “교과목중심 해부학 교육“이라는 개념에서 ”임상의학을 바탕으로 하는 해부학 교육”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전환하는 새 제도를 도입하였다. 동시에, 이와 관련한 책자를 발간하고 캠페인을 선도하는 등 새로운 개념을 전국에 확산 정착시켰다.
의사국가시험 측면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보사부장관 의료자문위원을 시작으로, 그 이후 계속 의사국가시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질적 수준이 많이 떨어져 있던 우리나라 의사국가고시 제도에 또한 많은 개혁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 후 의사시험원 연구개발실장, 서울대학교 교수 정년 뒤에는 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장을 거치면서 시험의 임무중심 기준, 목표를 설정하고 시험의 질을 높이기 위한 타당성, 신뢰성 중심의 평가 개념 바로 세우기 및 실제적인 최신 시험 문항 형태인 A형과 R형 문항개발 기법을 보급하여 의사시험 제도를 근본적으로 크게 개편하였다. 그리고 외형적으로는 필기시험에서 과목별 구분을 폐지시키고, 필기시험뿐 아니라 실기시험 제도도 새로 도입하는 등 우리나라 의사국가시험 수준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정리하자면, 백상호 교수는 형태학적 연구에 획기적인 방법론을 국내에 처음 들여와 보급한 해부학자이면서, 의학 전공자로서는 극히 드물게 해외유학을 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의학교육학자이기도 하다. 재임 기간 의학교육자로서의 활동과 헌신은 전공 분야인 해부학을 넘어서 우리나라 전체 의학교육에 그 영향이 지대하였으며, 나아가 의사국가고시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