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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35 February 2022

Issue??있슈!!

◎ 대한민국 공공의대, 리플리증후군에 빠진건가

우 봉 식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소장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 여당의 유력 후보가 ‘묵은 일을 처리하는 전문가’를 자처하며 전북 남원지역에 공공의전원 설립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하면서 공공의대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공공의대 설립 추진 논의는 지난 2018년 10월 정부가 2022년 3월 남원지역 국립공공의대 개교, 공중보건장학의제도 재도입 등을 골자로 한 ‘공공보건의료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21대 국회에서 앞다퉈 공공의대 설립에 관한 법안을 발의하면서 지난 2020년 의사들의 대규모 집단파업 사태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공공의대 학생 선발 시 시·도지사나 시민단체 등에서 추천권을 가지도록 하겠다고 하여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의사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코로나19 이후 논의하기로 의·정간 합의를 하고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사안이 유력 후보의 선거공약으로 언급되면서 논쟁의 불씨가 다시 불붙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의대 설립 명분으로 ‘지역의 필수·응급 의료를 책임질 공공의료 인력을 확보하여 사명감과 전문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근무할 공공보건의료 핵심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할 필수·응급 의료의 지표로는 ‘의료적 지식과 기술을 고려할 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통해 피할 수 있는 원인에 의한 인구 십만 명 당 사망자 수’를 뜻하는 ‘치료가능사망률(AM, Amenable Mortality Rate)’을 들고 있다.
OECD 건강통계(OECD Health Statistics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치료가능사망률(AM)은 2014년 50.0명(OECD 평균 77.2명)으로 OECD 38개국 중 5위에서 2019년에는 42.0명(OECD 평균 74.4명)으로 크게 개선되어 2019년 통계가 보고된 OECD 32개국 중 스위스(39.0명)에 이어 2위로 나타났다.
2019년 기준 시도별 AM 자료에 따르면 전국 평균 41.83명에 서울이 36.36명으로 가장 낮고 충북이 가장 높은 46.95명으로 나타난다. 충북지역만 놓고 보아도 2019년 기준 AM이 보고된 OECD 32개국 중 호주(46.0명)에 이어 5위 수준에 해당되어 우리나라는 광역시도 가운데 AM이 가장 높은 충북조차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낮은 수준이란 뜻이다. 그런데 정부는 전국에서 AM이 가장 낮은 지역은 충북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공공의대는 충북이 아닌 전북 남원에 설립하겠다고 말한다.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해괴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인구 천 명당 임상의사 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오스트리아(5.3명)는 2019년 기준 AM이 55.0명으로 AM이 보고된 OECD 32개국 12위에 불과하다. 이는 의사가 많다고 의료의 질이 더 높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OECD 자료(OECD Health at a glance 2019)에 따르면 좁은 국토면적에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도시와 농촌지역의 인구 천 명당 의사 수 분포가 도시 지역 2.5명, 농촌 지역 1.9명으로 그 차이가 0.6명에 불과하여 OECD 평균 1.5명 비해 크게 낮다. OECD 국가 중 일본(0.1명)에 이어 도시와 농촌의 의사 수 분포 차이가 두 번째로 작은 국가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시아권 다른 나라의 공공의대 사례를 살펴보면 대만에서도 1975년 정부 주도로 우리나라의 공공의료대학 설립 취지와 유사하게 취약지역과 제대 군인을 위한 ‘원호 의료’ 등을 목적으로 모든 학생을 국가 장학생(公費)으로 선발하는 ‘국립양명의대’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추후 양명의대 졸업생 취업현황을 분석한 결과 공비(公費) 수혜 학생 중 ‘취약지’에 잔류한 졸업생은 3.8% 불과하고 졸업생 대부분이 개원가로 진입하여 본래의 설립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도 장학금을 주고 지역에 남을 의사를 육성하는 '의대 지역정원 제도'나 의료취약지에 종사하는 의사를 양성하는 ‘자치의대’ 제도를 가지고 있으나 이 역시 학생들이 졸업 후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인해 도시 지역 근무를 선호하면서 갈수록 지원자가 줄어서 입학 정원 결손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굳이 인구와 인프라 등 모든 점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대도시와 농촌 지역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가면서까지 공공의대를 추진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정부나 국회 어디서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

우리나라는 과거 경제개발 시대 정부의 여력이 닿지 않을 때 민간의 적극 투자로 전세계에서 의료접근성이 가장 좋은 나라, 도시와 시골의 의사 분포 수가 일본 다음으로 차이가 적은 나라, OECD 국가에서 가장 뛰어난 보건의료 지표를 달성한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성과에 대해 국가는 당연히 평가하고 격려와 칭찬을 해도 부족할 터인데 이제 와서 명확한 정의조차 없는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며 공공의료기관 중심으로 보건의료를 재편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아름답지도 정의롭지도 못해 보인다.
만일 공공의대를 추진하려는 목적이 정치인의 지역구 민원 해결이나 자기 영달을 위함이라면 이는 개탄스런 일이며 공공의대와 공공의료만이 우리나라 보건의료 현안에 대한 해법이라는 확증편향이 만든 오류와 허구를 진실인 양 믿고 주장하는 《리플리증후군》에 빠졌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부디 논리적인 고찰과 이성적 판단으로 현명한 결정을 하길 바라며 아직까지는 더 많은 세부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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