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승 연인천광역시의료원장,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필자가 근무하는 인천의료원에서 코로나19 환자 재택치료가 본격화한지 한 달여, 시작 당시의 혼란은 많이 정돈 되었지만 급증하는 환자로 힘든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전파력이 델타의 두 배가 넘는다는 오미크론 바이러스 감염환자가 인천에서 처음으로 발생하였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출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감염 사례와 추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이 제한된 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우리나라는 의심환자를 찾아내고(Test), 추적하고(Trace), 격리 치료하는(Treat) 3T 전략으로 환자 확산을 최소화해 방역의 세계적인 성공사례로 알려져 왔지만, 장기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작용과 지역감염 확산에 전략의 수정이 요구되었다.
높은 백신접종률을 배경으로 단계적 일상회복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조치가 완화되었지만 우려한 것 이상으로 환자가 급증하고 있고, 예상을 뛰어넘은 돌파감염율과 취약환자군의 집단감염 확산으로 코로나 전담병원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인구수에 비례하여 훨씬 많은 환자가 발생한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하루 5천 명 정도의 확진환자 발생이 그다지 많은 수는 아닐진대 벌써 의료체계 붕괴를 걱정하며 위드코로나 전략을 포기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불안에 떨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사회재난에 해당하는 감염병은 국가의 존립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상시 대응과 공적 역할이 가장 강조되는 분야다. 우리는 OECD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급성기치료병상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민간 의료기관에 의존해야 하고 폭증하는 중증환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공공병상은 매우 적다.
일부 민간병원의 적극적 참여가 큰 도움은 되었지만 경영실적과 전담 의료인력 투입을 고려해야 하는 현실에서 대안으로 정부가 내놓은 중환자 병상확충에 따른 손실보상 및 수가가산제도도 모든 병상에 적용되는 기준이 아니다보니 선 듯 병상을 제공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각 지역의 공공병원들이 팬데믹 초기부터 감염병전담병원 역할을 하며 80%의 환자를 격리 치료하였지만 이는 전체병원의 1%에 불과하였다.
세계 주요국에 비해 확진자 발생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병상부족으로 집에서 대기하거나 치료할 병원을 찾다 위중한 상태에 빠진 환자가 속속 나타났다. 감염병 대응의 성패는 사망환자를 줄이는 신속하고 수준 높은 중환자 치료에 달려있다. 하지만 지역 공공병원의 작은 규모와 부족한 시설, 그리고 인력은 아무리 애를 써도 중증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중증환자 치료에 큰 도움이 되는 상급종합병원은 병상확보 문제와 병원 내 감염 우려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유행이 휩쓸고 가라앉기 벌써 네 번째지만 그 때마다 병상부족과 의료인력 부족이라는 아우성과 탈진한 의료진의 눈물은 똑같이 반복되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팬데믹과 더불어 코로나19와 함께 한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가고 있다. 감염병 대응의 선봉에 서 있어야할 공공병원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양적 공급과 질적 수준이 감염병 대응에 중심역할을 할 만큼 발전했을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그나마 사명감으로 환자를 돌보던 의사⋅간호사가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겨우 유지해 오던 지역공공병원이 어렵게 쌓아왔던 그 동안의 성과마저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오미크론이라는 변종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성탄절 선물이 될지 새로운 위협이 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낮은 치명률로 우세종의 위치를 점하면 팬데믹의 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에 귀가 솔깃해진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의 종식은 어렵고 독감처럼 대유행이 반복될 것을 예측한다.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 개발과 더불어 공공보건의료체계 재정비, 보완은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지킬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리고 감염병 상황에서 적시에 유연하게 확보할 수 있는 공공병상과 잘 훈련된 의료 인력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이 공공병상이고 의사⋅간호사 수가 우리보다 훨씬 많은 유럽의 나라들조차 기존 민간병원을 국가가 매입하고 공공부문 의사정원을 늘리는 데 전력하고 있으며, 한동안 줄여온 공공보건의료예산을 늘리는 정책을 앞 다투어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3조원이 넘는 손실보상비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병원의 질적 강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웠고 공공병상 확보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공공병원 신설⋅확충을 위한 예산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공공병원 의료 인력을 늘리기 위한 정책제안서들은 당국자의 책상 한 편에 쌓여만 있다.
현 정부 들어서만도 여러 차례 수립한 공공의료발전계획이 코로나19로 시행이 늦어졌다는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을 것이고 코로나 전쟁 2년 동안의 경험과 수많은 희생과 노력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의료기관 간 연계·협력, 시설투자, 수련·임상교육 환경 개선 등을 통해 지역거점 공공병원의 공익적 기능과 역량을 강화하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화 노력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준비 과정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이 아닌 단발적인 재정 투입의 효과만을 기대하면 곧 그 실효성을 잃게 될 뿐이다. 팬데믹의 출구도 약한 바이러스의 출현에 달린 것이 아니라 공공성 높은 보건의료체계 수립의 성패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