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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24 February 2021

1분 소확행

- 영화 속 의학이야기(5) : 칠드런 액트(The Children Act, 2018)

장 경 식 조선의대 내과학, 조선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우리나라에서도 수혈 거부에 관한 법적 문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 영화 칠드런 액트에서도 종교적인 소신으로 수혈을 받지 않겠다는 백혈병 환자에게 목숨이 걸린 수혈 여부를 결정하는 판결과 그 판결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남겨보면, 영국에서 존경받는 판사인 주인공 피오나가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남편과의 갈등이 깊어지고 결혼 생활이 무너질 위기를 맞은 가운데 종교적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한 백혈병 환자 애덤의 생사가 달린 재판을 맡는다. 수혈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신속한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고 의사들과 환자의 변호사 간 논쟁 중에, 환자의 본심을 확인하고 싶어 병원을 찾는 파격적인 행보를 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예기치 않는 파장을 일으키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영화의 제목이자 핵심이기도 한 ‘칠드런 액트’는 1989년 제정된 영국의 유명한 ‘아동법(The Children Act)’에서 따온 것으로, 법정이 미성년자와 관련한 사건을 판결할 때 최우선적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재판 당시 애덤의 나이는 만 17세 9개월, 법적으로 성인이 되기에는 3개월이 부족한 미성년자였기에 아동법에 의해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
수혈은 현대 의료에서는 다량 출혈 등 응급상황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혈 치료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지만 다소의 합병증 위험이 있다. 또한 모든 의료행위가 그렇지만 득이 있으면 실이 있기 때문에 득실을 따져서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C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을 공로로 수여되었는데, C형 간염은 대부분 수혈로 감염이 된다. C형 간염, 에이즈 같은 감염병 외에도 기증자의 DNA뿐만 아니라 백혈구 문제, 면역성 질환 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큐 Primum Non Nocere(2012)에서는 수혈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가능하면 수혈을 받지 말기를 권유하고 있다. 무수혈 수술을 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가수혈(Autotransfusion)이나 에리스포포이에틴 같은 조혈촉진인자 사용 등을 하라는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피오나 판사는 몸통과 다리는 하나지만 머리가 둘인 샴쌍둥이의 수술에 판결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샴쌍둥이가 붙어 있으면 둘 다 죽게 되지만, 분리 수술을 한다면 한 명은 죽지만 나머지 아이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요점은 둘 다 죽이느니 하나라도 살리자는 것인데, 어차피 죽는다는 이유로 한 아이의 동맥을 끊는다면 그 죽음이 정당할지도 의문이다. 부모는 신이 부여한 생명이니 인간이 그걸 판단할 수 없고 신만이 거두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오나 판사는 ‘법정은 도덕이 아니라 법을 다루는 곳’이라는 소신이 흔들리지 않고 분리수술 하라고 판결한다. 책의 저자 매큐언은 인터뷰에서 종교적 혹은 도덕적 분쟁 및 가정 문제 관련 판결에서 ‘판사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에 대한 수혈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판사는 ‘부모는 순교자가 될 수 있을지언정 아이에게 순교를 강요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방문한다. 판결을 내리기 전에, 병원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이 소년을 직접 만나기로 한 것이다. 성인의 경우는 ‘자율성 존중의 원칙’에 의하여 본인이 결정할 수 있지만, 18세 이하의 아동은 ‘선행의 원칙’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의료윤리의 원칙이다. 성인이 되기 몇 달 남지 않은 애덤은 종교적 소신을 주장하면서, 본인을 살리고 싶어 하는 판사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음악(아이가 친 잘못된 기타(Guitar) 코드를 판사가 지적)으로 서로 소통하게 되며, 아이는 수혈을 받고 살아난다.

재판정에서 수혈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사들의 과학적 사실과 부모의 종교적 신념의 차이를 논쟁적으로 보여준다(수혈금지의 성경 근거, 언제부터 이런 교리가 시작되었는지 등). 역사적으로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오 시대부터, 다윈의 진화론을 거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뿐만 아니라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시대로 발전하면서 과학과 종교는 서로 충돌하고 있다.

미국 테네시주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친 젊은 고등학교 과학 선생 존 토머스 스콥스가 진화론을 금지한 테네시주의 법률을 위반하였다 하여 이른바 ‘스콥스 재판(원숭이 재판)’으로 불리는 재판이 열렸다. 스콥스 선생은 결국 백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이 과정은 침묵의 소리 (Inherit The Wind, 1960)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에 관한 법적인 판단과 사회적 이슈를 위한 이 재판에서 법을 어긴 과학 선생이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법정 논쟁 과정이 전국으로 중계되면서 진화론을 옹호하는 세력은 대중적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이 과정은 ‘신들을 위한 여름 (종교의 신과 과학의 신이 펼친 20세기 최대의 법정 대결, 2014)’이라는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플로리다 주립대 철학교수 마이클 루스(다윈주의자)는 ‘과학과 종교 화해를 위하여’라는 칼럼에서 “과학은 인간에게 물리적 세계의 존재와 작용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 종교는 그 세계와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즉답이 가능한 질문을 하고 있지만, 종교는 궁극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어느 한 영역에서 얻어야 할 해답을 다른 영역에서 구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갈등은 생기지 않는다. 과학과 종교, 그리고 진화론과 기독교가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각자의 위치를 이해하고 그 경계 안에 머문다면 서로 갈등을 일으킬 일은 없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덧붙여 199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한 윌리엄 필립스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는 종교에서 하는 질문입니다. 과학은 보통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주가 어떻게 지금과 같이 존재하게 되었고 어떻게 움직이는가와 같은 질문은 종교에서 해야 할 질문이 아닙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오직 과학만이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종교적 믿음을 가진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종교 도덕 윤리 의미에 관한 질문뿐 아니라 과학적 질문에 대해서도 말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둘 모두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의사는 정당한 권위를 가져야 하며, 모든 것을 법의 판단에 의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권위의 기초인 의사의 성실한 자세는 인간의 생명과 신체를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존엄한 것으로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의 다양한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거나 따라다니며 변화시킬 필요는 없지만, 의료체계 내에 들어오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생명과 신체의 유지 회복이라는 기본 가치에 입각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종교가 모두 맹신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의 정도를 의사들의 눈높이로 평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 이런 문제들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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