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종 률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교실
2020년인 올해는 우리나라 인구구조에서 가장 큰 집단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 이상 노인인구로 진입하는 원년이다. 이 세대의 인구수는 현재의 전체 노인인구수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많고, 앞으로 약 10년간 해마다 70만에서 90여만 명이노인이 된다. 그에 따라 2025년이면 노인인구수가 전체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게다가 소위 2차 베이비부머 집단(1968~1974년생)도 곧이어 노인인구가 되니, 향후 20년 동안의 고령화추세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될 전망이다[표 참조].1)
< 2000-2060 인구추이 >
자료: 통계청,「장래인구특별추계: 2017~2067」
주: 1) 구성비 = (고령인구(65세 이상) ÷ 총 인구) × 100
2) 노년부양비 = 고령인구(65세 이상) ÷ 생산연령인구(15∼64세) × 100
3) 노령화지수 = 고령인구(65세 이상) ÷ 유소년인구(0∼14세) × 100
그리고 ‘지금까지 어느 나라에서도 도달한 적이 없고, 21세기 이내에는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던 평균수명 90세의 벽이 2030년이면 깨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 최초의 국가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라고 외국의 유명 논문2)에서 명시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수명 증가 속도 역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고령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동시에 수명이 함께 늘어난다는 것은 75세 이후의 후기고령자가 더 빠르게 늘어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향후10년 이내에 세계 최고의 장수국가가 된다는 사실은 환영하고 반가워할 일이지만, 후기고령자의 수가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노년기 삶의 실상은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전체 노인들의 40%는 스스로 건강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고 객관적으로도 만성질병이 없는 건강노인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며, 절반이 넘는 51%의 노인들은 세 가지 이상 복합질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OECD 국가들 중 노인 빈곤율은 여전히 가장 높다. 4명중 1명은 독립적인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이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녀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살고 있거나(24%) 노인부부 끼리만 살고 있다(49%).3) 노년기 삶의 질이 건강과 소득, 사회활동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통계수치들은 우리나라의 노년기 삶이 고통스럽고 고달프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고령인구는 급증하지만 노년기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 이런 초고령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지향해야 할 정책방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헬시 에이징(healthy aging; 건강노화) 전략을 마련하고 적용하는 일이 바로 지금 염두에 두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때마침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올해 8월, 향후 10년간을 건강노화 10년(Decade of Healthy Ageing)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노년기 삶의 질 향상을 핵심과제로 천명하였다.4) 여기서 말하는 건강노화란, ‘질병극복이라는 관점을 넘어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기능을 극대화하여 나이가 들더라도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노년기 행복감을 높이는 국가와 사회와 개인의 모든 협동노력과 과정을 말한다.
그렇다면 헬시 에이징을 위해 당장 실천해야 할 노인의료의 핵심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의료인의 측면에서도 노인을 보는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노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이거나 복지의 수혜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늙는다는 것(노화)이 질병이 아니다. 다만 노화에 의한 질병 취약성 때문에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질병이 누적되기 마련이라서 마치 ‘질병덩어리’처럼 보이고 그만큼 허약해지기 때문에 기능이 약해지므로 무조건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같은 연령의 노인이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질병과 기능 상태는 천차만별이다. 적절한 제도적 뒷받침으로 건강관리가 잘 이루어진다면 아무리 나이 들어도 활기차고 생산적인 노년기 삶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오히려 그런 고령사회에서 온갖 삶의 지혜가 꽃피워질 수 있다.
따라서 노인의 건강수준에 따라 보건의료제공의 내용이 달라져야 하며, 이것이 노인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별 맞춤형 의료서비스 접근방법이다. 즉, 연령과는 무관하게 건강노인, 복합질병 노인, 허약노인을 구분하여 건강노인은 더욱 건강하게, 복합질병노인은 통합진료를 제공하여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게, 허약노인은 재활운동과 영양관리로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관점만 가지고 있으면 한 명의 노인을 질병에 따라 갈기갈기 찢어서 관리하게 되어 의료비용만 높아지고 복용하는 약만 잔뜩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 부작용으로 노인은 더 기력을 잃고 드러눕게 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국가수준에서 제공되는 노년기 건강검진을 새롭게 만들어 적용하기를 강력히 권고한다.
노년기에 흔한 주요 질병을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신체적, 정신적 기능의 쇠퇴여부를 더 중요하게 고려하고 정기적으로 평가해 주어야 한다. 즉, 일상생활 기능에 장애를 줄만한 항목들인 우울증, 기억력 저하, 요실금, 영양불량, 골다공증, 시력이나 청력, 근력과 낙상위험 등을 확인하는 검진항목이 최소한 70대부터는 적용되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야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건강노인인지 허약노인인지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집에서 가까운 일차의료에서부터 노인주치의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
복합질병을 가진 노인들에게 생활환경을 충분히 고려한 적절한 통합진료와 약물관리, 정서적 상담을 제공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왕진이나 방문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주치의는 다양한 질병과 기능저하를 가지는 노인들에게 가장 필수적이고 효율적인 의료제공 방안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 입원치료를 받는 노인을 위하여 종합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에는 노인병전문센터가 준비되어야 한다.
노년기 입원은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힘든 수술을 이겨낼 힘도 약하고, 치료를 받고나서도 기력이 회복되기 어렵다. 치료는 잘 되었으나 가정으로 복귀하기 어려워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퇴원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노인병전문센터는 협진과 통합진료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치료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신속하게 대응하여 해소해주고, 치료 후에 발생하는 허약증상을 적합한 재활치료를 통하여 회복시킴으로써 가정으로의 복귀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노인의학에 정통한 전문의료인이 동시에 양성되어야 한다.
넷째,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기능장애가 발생한 노인들의 가정생활을 유지시킬 수 있는 재택 장기요양체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누구도 생애말기를 가족과 주변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수행해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더라도 국가나 사회로부터 방문형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내가 살던 집에서 계속 삶을 유지할 수 있고, 재택 호스피스 서비스를 통하여 삶을 마무리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익숙한 환경에서 생을 마칠 수 있다면 삶의 질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개인의 측면에서는 노인들 스스로 건강관리와 노년기 삶의 의미를 높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받아들일 것과 맞서 싸워야 할 것을 분명하게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연령증가에 따라 자연적으로 생기는 노화현상에 대항하여 싸우려들면 늘 힘들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은 어차피 늙게 마련이고 노력하더라도 노화현상 자체를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를 허약하게 만드는 노쇠에는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싸우고 최소화하여야 하며 충분히 그에 따른 효과도 있다. 기능저하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인 노쇠현상이나 노년기 우울증과 인지기능 저하는 본인 스스로의 능력으로 상당부분 이겨내고 예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정한 수면과 충분한 식사, 일상적인 운동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사회활동)를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느긋한 행동으로 대응하고, 해결되지 못할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몇 년 후에 닥칠 초고령사회에서 무기력한 노인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밝고 활기찬 노년기를 살아가는 건강한 모습들이 넘쳐나는 헬시 에이징의 모범사례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본 칼럼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공식블로그 보건의료 이슈(2020.11.26)에 게재된 내용을 집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