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나 래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기획이사
우리 사회는 COVID-19 이전의 사회와 이후의 사회로 나뉜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COVID-19 판데믹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상에 없었던 것들이 COVID-19의 유행과 함께 갑자기 생기기도 하고, 계속 있었지만 잘 숨기고 살던 것들이 COVID-19의 유행과 함께 갑자기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 중 혐오의 문제는 요즘 관심의 초점이 되는 문제 중 하나이다. 너무나 쉽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특징’이라며 우려하기도 한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COVID-19 유행 상황에서 혐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였다. 사람들은 처음 이 감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 마치 죄를 지은 사람들만 질병에 걸리는 듯, 혹은 무슨 잘못을 해야 걸릴 수 있는 그런 특별한 병인 듯 확진자의 동선을 파고들었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그 종교는 어떤 점이 ‘우리’와 다른지, 그들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해서 우리가 걸리지 않아도 되는 병을 우리 사회에 퍼트린 것인지 찾아내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놀러 나갔던 클럽은 ‘게이 클럽’이라는 것 하나로, 그렇게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지향이 다른 사람들은 왜 방역 지침을 지키지 않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한참을 토론했다. 방역을 위해 포기된 개인 정보는 여러 사람들의 간편한 이야기 거리로 소모되고 말았다. 거기다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부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혐오를 한다며, 혐오하는 사람들을 또 무시하고 혐오했다.
사실 우리는 그냥 겁이 났었던 것 같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병에 어떻게 옮게 되는 것인지 걸리게 되면 살 수는 있는 것인지 혹시 나도 모르게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옮긴 것은 아닌지 겁이 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내가 확진자가 되었을 때 또 다른 사람들이 내 동선을 캐고 내 실명을 찾고 내 주변 사람들이 나인 줄 알면서 내 욕을 하지 않을까도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무척 겁은 나지만 그 누구도 정답을 모르니 해결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감염병 전문가들에게조차 이 병은 처음이고, 하루하루 새로운 정보들이 나오고 있어서 의사인 우리들도 내 지식을 적절히 업데이트해 나가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사람이 뭔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혹은 앞으로의 일들이 너무 겁이 날 때 이 문제를 내 마음 속에서 가장 쉽게 정리하는 방법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이다. 이 방법은 성숙한 방법은 아니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다.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내가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남’의 문제라고 한다면 이 문제는 어차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그저 그 사람을 탓하고 욕하고 넘어 가면 되니 마음이 편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그 사람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이라면 더 쉽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나와 전혀 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그 사람들을 공격한다.
사람은 누구나 약해질 수 있고 두려울 수 있다. 너무 무섭고 두려운 나머지 남을 혐오하는 것으로 도망가 보려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문제가 우리가 쉽게 정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혐오가 이렇게까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여러 연구 결과들을 보면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상당히 센 존재이고 우리가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성질이 고약해서 혐오의 마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약해서 이런 마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문득 가지게 되는 것까지 우리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혐오의 마음, 두려움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과 있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드러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고 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대체로 통용되는 개념이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나도 남에게 상처받지 않으려고 나를 지켜야겠지만, 남을 배려하고 상대방이 나 때문에 기분 나쁘거나 상처받지 않는지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혐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게 되면 상대방은 당연히 크게 상처를 입게 된다. 특히나 어찌 보면 우리보다도 COVID-19가 더 두렵고 겁이 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상처를 더 주는 것은 너무 잔인한 행동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COVID-19과 잘 싸워왔다. 앞으로 장기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한 번 대열을 정비해야 할 때다. 이제는 더 이상 편을 가르거나 누군가를 혐오하는 표현을 하는 것은 안 했으면 한다. 우리가 COVID-19에 잘 싸워서 이기려면 모든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 병은 특별한 사람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이 COVID-19의 위험 안에 있고 모두 다 같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각자의 책임이 있다. 혐오의 마음이 들거들랑 ‘내가 이만큼 약한 존재이구나’ 생각을 하고, 누군가를 욕하기 보다는 집단의 안전함에 기대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