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에 근본적인 지각변동이 발생하였다. 지난 70년 동안 도저히 흔들릴 것 같지 않아 보였던 남북한의 분단과 극단적 대립 구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우리에게 희망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너무도 많은 변수와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이제 남북관계는 적어도 2018년 4월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남한과 북한은 그 속도와 규모에서의 변수는 있다 할지라도 사회 전 영역에서의 교류와 협력이 시작되고 점차 더 많이 진행되어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 영역 중 가장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보건의료 분야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새로운 한반도 상황 속에서 보건의료계는 어떻게 대응을 하여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한반도 전체로 확장되는 보건의료 의식과 시각이 필요하다.

그 동안 남한의 보건의료인은 오직 남한 지역과 남한의 5,500만 인구에게만 관심을 가지면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새로운 남북한 관계 시대에서는 그런 관심 영역이 북한을 포함하는 한반도 전체로 커져야 한다. 이것은 남한의 의료인들이 북한 지역에 들어가 진료활동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 활동은 남한에서 한다 할지라도, 모든 보건의료적 생각과 판단, 행동을 하는데 있어 한반도 전체를 단위로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북한 지역의 다재내성 결핵균, 말라리아, 기생충 등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도 되었다. 그러나 남북한 인적교류가 활발해 지는 시점이 오면, 북한 지역의 보건의료 이슈는 곧 남한의 보건의료 이슈가 된다. 남한에서 문제가 되었던 메르스 발생이 과거에는 남한 지역 안에서 만의 문제였지만, 앞으로 남북한 인적 교류가 증가하면, 그것은 바로 북한 지역의 메르스 발생 문제가 된다는 의식과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남북한이 ‘한반도 건강공동체’로 묶이게 되기에, 그에 맞는 의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둘째, 인도적 지원 수준을 넘어서는 남북 보건의료 개발협력 개념을 가져야 한다.

과거 북한에 경제난이 극심하였던 고난의 행군 시기와 그 직후 기간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의료계에서도 남북한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교류란 대부분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지역에 들어가 특정 병원, 특정 지역에 약품, 의료기자재 등을 주는 것이었다. 외부와 폐쇄되어 있는 상태에서 모든 물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던 당시, 북한은 그런 인도적 지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상황은 그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국제사회에 정상국가로 나서서 외국과의 교류가 가능해지게 되면, 소위 ‘인도적 지원’은 더 이상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른바 ‘개발협력’을 하길 원할 것이다. 함께 공동으로 활동하여 북한의 보건의료 수준을 높이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을 북한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적 준비가 필요하다.

셋째, 각 전문영역 별로 향후 한반도 건강공동체 구성과 발전을 위한 구체적 활동을 시작하여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북한과의 보건의료분야 공동 개발협력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전 준비들이 필요하다. 먼저, 한반도 건강공동체와 북한 지역 보건의료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각 전문영역 학회들의 정기 학술대회 시, 통일, 북한 보건의료와 연관된 심포지엄들을 구성하고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회나 의료기관 내에 남북보건의료 협력 관련 조직이나 기구를 구성하여 가동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조직이나 기관들은 통일보건의료학회 등, 이 영역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활동하고 있는 기관과 연계하여 빠르게 정보들을 구하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담당해 나갈 차세대 보건의료인들을 교육하고 양성하여야 한다.

향후 30년간 한반도 상황에서 통일과 북한 지역은 보건의료계에서 가장 큰 화두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담당해 나갈 차세대 전문가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지금부터 이들을 교육하고 양성해 나가는 일들이 필요하다. 의과대학, 치과대학, 간호대학 등과 보건대학원 등 각 대학원들에서는 정규 교육 과정에 통일 또는 북한과 관련된 내용들을 필수 강의 내용에 넣고, 필요하다면 더 자세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선택과목들을 개설하여야 할 것이다. 적은 시간의 교육이라도, 학생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교육을 시행할 때 필요한 교육 내용의 개발과 공유, 교재들의 개발이 필요하다. 통일보건의료학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책을 발간하여 올해 2학기부터는 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다섯째, 보건의료 전문가, 정부, 민간기구, 국제기구 등이 함께 참여하여 활동하는 컨트롤 타워 기구의 발족이 필요하다.

보건의료와 관련된 사항들은 전문가들이 매우 중요하지만, 전문가들만으로는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매우 큰 재정이 소요되며, 보건의료 관련 결정들은 전체 국민들의 심리와 집단 여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여러 가지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 그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경우들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 간의 대화와 공동 의견의 도출, 정부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또한 많은 자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열정적인 민간 기구들의 참여도 중요하고, 많은 경우에는 국제기구들과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 따라서 향후 통일, 북한, 한반도 관련 보건의료 사안을 포괄적이고도 정확하게 다룰 수 있는 기구의 설치와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

보건의료는 한반도에서 살아가게 될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보건의료계의 사람들이 얼마나 균형 있고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가에, 향후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궁극적인 통일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참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이 땅의 보건의료인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