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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E-NEWSLETTER No.93 APRIL 2018

ISSN 2287-9390 (Online)

대한의학회(Korean Academy of Medical Sciences). The enhancement of medical specialties through education, research and training

환자안전사건과 소통
(Open disclosure of patient safety incidents)

사과법 (apology law) 제정을 촉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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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호 기
인제의대 내과학 / 대한의학회 정책이사

(현장에서)
의사는 단 2가지로 분류된다. 소송당한 경험이 있는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이다. 의사의 일을 하면서 소소한 의료분쟁과 소송을 당해 보지 않은 의사는 드물다. 의사의 직업을 시작함에 있어 마음은 숭고하다. 숭고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의료분쟁과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의료분쟁과 의료소송은 늘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켜 일을 하는데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끼어들 리 없을 거라는 자만심 때문이기도 하고, 의료가 ‘갑’이였던 시대에 살았던 선배들의 무심한 경험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늘 이상과 다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의료행위가 늘어날수록 의료분쟁과 의료소송도 늘어 날 수밖에 없음을 무시하여 혹독한 대가를 치루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여전히 의료분쟁과 의료소송을 애써 외면하고, 내 문제만 아니라면 괜찮고, 내 문제가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꺼려하여 쉬쉬하며 대충 해결한다. 새로이 의사가 되려는 사람에게 아무런 교육도 준비도 없이 경험으로 배우게 하는 악습을 반복하고 있다.

(의료오류와 환자안전사건)
나는 의사가 되고 난 뒤 환자나 보호자들이 보내준 편지 몇 장을 가슴에 품고 산다. 물론 진심을 담은 감사의 편지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잊지 못하는 편지는 아버지를 잃고 소송을 준비하다가 보낸 절절한 용서의 편지이다. 무엇이 소송을 하지 못하게 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들의 심성이 아닌가 싶다. 거기에 내가 그들에게 보여준 진정성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사람들은 진정성이 무언지는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성이 없는 것은 순식간에 안다. 단지, 나는 아버지를 잃은 보호자와 같이 슬픔을 나누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의료에서 잘잘못은 따져 봐야 한다. 하지만 보호자의 슬픔은 따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의료오류를 논할 때 대전제가 있다. 모든 의료는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이다. 주사나 약을 투여하든 아무리 간단한 시술을 하든 의료행위는 근본적으로 위험하다. 병을 치료하는 것이고, 아픈 환자가 건강해 지고, 좋은 결과만을 기대하고 병원에 가니 의료행위의 위험성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사실 의료는 작은 위해를 통하여 더 큰 이익을 주는 행위이다.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작은 희생을 하게 되는데, 때로는 질병을 갖고 있는 환자에게 위해(의료행위)는 더 위험해 지는 것이다. 환자나 의사 모두가 의료행위의 대전제를 명심해야 한다. 의과대학생들에게 환자진료에 있어 완전한 것은 없다고 가르친다. 단지 환자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진료가 무엇인지 판단하게 한다. 완전한 의료가 없듯이 의료는 태생적으로 오류를 포함한다. 야구 타자가 10번 나와서 4번 안타를 치면 역사에 남을 4할 대 타율로 칭송 받는다. 그러나 외과 의사가 9할 대 수술성공 실적을 갖고 있다면 글쎄 이분에게 수술 받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의사도 실수할 수 있다. 어떤 사회나 시대이든 간에 오류가 없는 의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환자안전사건에 대한 국내 현실과 대책)
의료오류를 다루는 체계는 의료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발전하지 않았다. 전쟁에 이기기 위하여 핵폭탄을 만들지만 핵폭탄 투척 후의 문제를 미리 고려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질병과 전쟁을 이기기 위하여 의료가 발전하지만 그로 인한 안전문제는 늘 뒤처지게 마련이다. 더욱이 급성장을 한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는 의료오류를 다루는 체계가 없었다. 의료오류에 대한 비용도 계산되지 못하여 이에 대한 대비는 수익성 악화를 불러오기 때문에 준비를 잘 할 수가 없는 구조이다. 기형적으로 발달한 신의료기술을 따라가느라고 안전/오류에 대한 체계가 부족하다.

과연 이렇게 대응했을까 싶을 정도로 자극적인 기사가 나온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처럼 의사의 한마디로 환자의 결과는 천양지차이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난 뒤에 배에서 튀어 나온 실리콘 튜브를 보거나, 좌우가 바뀐 수술을 받은 환자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임에 틀림없다. 의사입장에서 의료용 실리콘 튜브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 늦게라도 제거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소송으로 갈 수도 있고 다시 병원을 찾는 단골환자로 변할 수도 있다. 이왕 일은 벌어졌으니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책임을 인정하든 하지 않던 간에 환자의 상황은 위로 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은 바로 환자이기 때문이다. 위로는 빠를수록 좋다. 사건의 진실은 두 번째이다. 차근차근 상황을 파악하고 진정성 있는 위로와 진실 말하기를 한다면 소송은 줄어 들 것이다. 만일 좌우 바뀜과 같이 분명한 오류로 밝혀지면, 위로와 더불어 과실을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 아울러 재발방지에 대한 대책과 배상이나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한 해결을 환자, 보호자와 함께 모색해야 한다.

의료분쟁의 원인은 의료오류 자체보다 분노 때문이다. 농담으로 살인죄보다 괘씸죄가 더 무겁다고 한다. 왜냐하면 살인죄는 용서해도 괘씸죄는 용서가 안 된다. 분노의 원인은 소통의 문제이다. 상대를 무시하고 문제를 회피하거나, 문제를 무관심하게 보거나, 냉담한 태도가 분노를 일으킨다. 환자는 의료에 대하여 모를 것으로 착각하여 어린애 취급하거나 규정을 들먹이면서 기계적 답변만 하게 되면 누구나 화가 나는 것이 정상이다. 또한 자신은 잘못이 없고 다른 사람 핑계를 대는 것은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보다 분노를 더욱 더 크게 만든다.

화가 난 사람은 환자(보호자)이다. 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화난 사람을 대하는 가장 최선은 우선 참아야 한다. 같이 싸우자고 하면 분노는 커진다. 근본적으로 사람이 분노하는 많은 이유는 좀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을 바라기 때문이다. 화가 난 이유에 대하여 차근차근 물어 보아야 한다. 아울러 의학적 진단과 치료의 약점과 불완전성에 대하여 설명하고, 의사가 전능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요약 및 결론)
환자안전사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소통이 강조되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환자안전사건으로 인한 사과에 대하여 법적인 보호조치를 하고 있다. 우리도 환자안전사건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기 위하여 법적, 제도적으로 보완을 하고 사과문화를 만들려고 한다. 뭔가 앞뒤가 바뀐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동안 의료기관과 의과대학 그리고 학회와 의협은 무엇을 하였는가? 소통을 강제하기 위하여 법률적인 보호를 하기 전에 소통을 하는 교육과 문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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