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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E-NEWSLETTER No.79 NOVEMBER 2017

ISSN 2287-9390 (Online)

대한의학회(Korean Academy of Medical Sciences). The enhancement of medical specialties through education, research and training

잔여검체 사용의 법적·윤리적 고려사항과 인체자원은행의 역할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시대와 상황에 맞는 연구와 윤리의 균형 모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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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창 록
경북대학교 윤리교육과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는 2017년 8월 14일 ‘폐기예정인 잔여검체를 이용하는 연구심의시 생명윤리법상 서면동의 면제요건의 해석에 관한 가이드라인(이하 잔여검체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은 과학발전과 보건산업화를 저해하는 요소로 평가받은 측면이 없지 않으나, 본 가이드라인은 기존의 생명윤리법 하에서도 얼마든지 과학발전과 보건산업화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윤리법을 의료기기개발 측면에만 한정하여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에만 집중되어, ‘잔여검체를 보유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아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현재 생명윤리법 제41조 제1항은 허가를 받아 인체유래물은행을 개설해야 하고, 제42조 제1항은 서면 동의 없이 인체유래물을 직접 채취하거나 채취를 의뢰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현행 생명윤리법에 의하면 잔여검체는 신고 된 바이오뱅크만 보유할 수 있다. 우리 생명윤리법은 진단검사실의 검체를 기본적으로 진단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진단 이후에는 폐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대원칙이다. 기본적으로 잔여검체를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진단 전에 피험자로부터 동의서를 받아야 하고, 연구자가 속한 기관생명윤리위원회에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대원칙을 넘어서 진단 후 사용하고 남은 폐기용 잔여검체를 동의서 없이 몇몇 진단의료기기개발 연구에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장점과 단점을 지닌 가이드라인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이번 2017년 잔여검체가이드라인에 몇 가지 근본적 의문은 다음과 같다. 왜 잔여검체를 검사실 정도검사로 사용할 수 있을까? 다른 용도로는 불가능할까? 이런 기본적인 의문에 대하여 우리는 환자의 동의 없이 검사실 정도검사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검사실 정도검사와 유사한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 다른 공익을 위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윤리법 시행규칙 제33조는 기관위원회의 심의를 면제할 수 있는 인체유래물연구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시행규칙 제33조 나항은 의료기관에서 치료 및 진단을 목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인체유래물 등을 이용하여 1)정확도 검사 2)검사실 정도관리 3)검사법 평가 등을 수행하는 연구에 한하여 심의면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확도 검사’, ‘검사실 정도관리’, ‘검사법 평가’ 외에 ‘등’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이번 가이드라인은 ‘임상시험 전 의료기기 개발 등을 위한 예비연구’와 ‘의료기기 성능변경평가연구’의 경우도 심의면제조항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있다. 또 가이드라인은 기관위원회 심의 시 서면동의 면제를 위해 ㉠진단에 사용하고 남은 폐기예정 잔여검체일 것, ㉡공동연구자가 연구기관에 속해 있을 것, ㉢의료기기개발 예비연구일 것, ㉣주원료변경 등에 따른 성능변경평가에 관한 것일 것, ㉤잔여검체를 이용해야만 하고 필요성과 가치가 있을 것, ㉥추적되지 않는 익명화조치 후 진단정보만 제공할 것, ㉦검체보관과 제공에 관한 실비는 진단기기 개발업체가 제공할 것, ㉧폐기 후 종료보고를 할 것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정리한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생명윤리법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이 가이드라인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면동의 면제에 대한 최종 판정의 권한은 기관위원회에 있고’, ‘이 가이드라인은 시행 후 검체기증자, 각 기관위원회와 잔여검체 활용 측의 의견을 추가 수렴하여 향후 개정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규칙이 법을 넘어설 수는 없다. 따라서 잔여검체는 가급적 바이오뱅크에 보관하고 관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병원에 바이오뱅크가 설립되어 있지 않으며, 정부의 지원이 미비하고, 바이오뱅크를 관리하는 과가 병원 내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는 우려 등은 충분한 토론을 통해 차후에 개선해 나가야 할 사항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잔여검체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잔여검체를 보관하고 처리할 법적 근거를 가진 인체유래물은행을 중심으로 적용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 1) 인체유래물은행에 있는 잔여검체 중 인체유래물기증동의서가 없는 경우에도 익명화를 통한다면 진단기기개발연구 등에 제공할 수 있다.
    이때 기관생명윤리위원회는 가급적 심의면제하도록 한다.
  • 2) 바이오뱅크가 가진 자원 중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기록하지 않는 인체유래물과 유전정보를 활용한 연구의 심의는 면제한다.
  • 3) 바이오뱅크의 인체유래물로부터 일반대중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병원체와 세포주를 배양하여 분양할 수 있다.
  • 4) 이때 바이오뱅크는 생명윤리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개발타당성을 IRB로부터 승인받은 제약기업 등과 MOU를 맺을 수 있다.
  • 5) 바이오뱅크는 익명화를 전제로 하여 수집 보관 중인 인체유래물을 진단기기개발연구에 활용하도록 제공할 수 있다.
  • 6) 바이오뱅크의 인체유래물도 익명화를 전제로 할 경우에는 잔여검체가이드라인을 따라 IRB심의를 면제할 수 있다.
  • 7) 바이오뱅크의 인체유래물 연구가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가 기증자 개인의 유전적 특징과 관계없는 경우에는 심의면제한다.

그리고 이번 가이드라인에 진단기기개발뿐만 아니라 학술적 목적의 인체유래물연구자와 산업화(진단기기개발연구, 치료제 개발 등) 목적의 인체유래물연구자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윤리법과 이번 가이드라인을 적용한다면 산업화협력운영을 위한 바이오뱅크의 폐기예정인 잔여검체 연구의 서면동의면제 요건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폐기예정인 잔여검체를 사용하는 학술목적 및 보건산업화 연구의 경우,
  • - 연구의 대상과 성격이 한정되어 있고 (잔여검체를 이용한 초기진단기기개발연구 및 치료제 개발 등)
  • - 필요성이 인정되며 (의학연구에 도움이 되는 기기개발과 치료제 개발)
  • -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조치가 적절할 경우(익명화와 비식별화)
  • 서면동의 면제 요건을 충족한다고 볼 수 있음

물론 이 경우에도 서면동의 면제의 최종 판단은 기관생명윤리위원회가 결정해야 한다. 본 가이드라인을 바이오뱅크에 적용하여 정리한다면 아래와 같이 도식화 할 수 있다.

  • 진단기기 개발업체와 제약업체 등은 생명윤리법 상 잔여검체를 보유할 수 있도록 보장받은 바이오뱅크나 기타 생명윤리법 상 제한적 유사지위자(병원 진단검사실 등)에게 공동연구 제안
  • 진단기기 개발업체와 제약업체 등의 공동연구자가 연구계획서 작성
  • 공동연구자가 소속된 기관의 기관윤리위원회에 심의 신청
  • 서면 동의 면제 판단 및 연구심의를 받아 그 결과에 따라 연구진행
  • 연구 종료보고 및 검체 폐기 등 관련 보고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번 가이드라인은 기존의 생명윤리법 하에서도 그동안 불가능하게 여겼던 것들이 가능함을 보였줬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 할 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밀히 따져본다면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기관생명윤리위원회가 연구계획을 심의할 때 과학적 타당성과 윤리적 정당성을 가진 경우에는 얼마든지 심의면제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의료계의 현실을 돌이켜 보게 한다.

한편 보건의료계는 이번 가이드라인을 잔여검체사용의 면죄부로 활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관생명윤리위원회는 마땅히 잔여검체 사용 시 생명윤리법에서 정하고 있는 심의요건을 확인하여야하고 그 요건이 확인될 경우 심의면제를 결정하여야 한다. 즉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역량강화가 무엇보다 요구된다.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역량강화는 전체 의과학 연구자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의과학 연구자들은 흔히 윤리가 과학발전의 발목을 잡는다고 불평하기도 하고, 중립적인 연구에 왜 가치를 부여하여 판단하는가를 불만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과학기술의 중립성을 주장하는 윤리철학자는 없다. 과학도 인간사회의 일이며, 의과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에 더 많은 요소가 개입된다. 그러하기에 어떤 종류의 의과학 연구든지 오로지 중립적일 수만은 없다. 더욱이 미비한 윤리적 의식이 어떠한 사태를 불러오는지를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과학과 윤리는 긴장관계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윤리 규정을 지키지 않는 의과학 연구는 맹목적일 수 있으며, 의과학 연구의 성과를 생각하지 않는 생명윤리 규정 역시 공허할 수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윤리와 과학의 균형을 잡아내는 역할을 기관생명윤리위원회가 맡아왔다. 그러나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기에 이번과 같은 가이드라인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가 의과학 연구의 실제적인 가이드라인이 되어 의과학연구의 사안들마다 과학연구와 윤리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아내는 역할을 해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산업화협력운영을 위한 한국바이오뱅크의 폐기예정인 잔여검체 연구의 동의면제요건 체크리스트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제안해 둔다.

제안
산업화협력운영을 위한 한국바이오뱅크의 폐기예정인 잔여검체 연구의 동의면제요건 체크리스트

※ 아래 항목에 모두 해당될 경우 기관생명윤리위원회는 서면동의면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을 권고함

체크리스트 해당여부 상세 검토 항목
1. (대상)심의를 받고자 하는 연구의 대상이 폐기예정의 잔여검체 인가? 예 ㅁ
  • - 서면동의서가 미비하거나 폐기기한이 임박하거나 지나서 폐기예정인 바이오뱅크 내 익명화된 검체인지 여부
  • - 진료 목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폐기예정인 잔여 검체인지 여부
2. (공동연구)심의를 받고자 하는 연구가 소속기관 연구자와 체외진단기기 개발업체 및 제약업체 등과의 공동연구인가? 예 ㅁ - 폐기예정인 잔여검체를 보관중인 의료기관 내 연구자가 제약업체 등과 체외진단기기개발업체 등과 공동연구자가 되어 소속 기관생명윤리위원회에 신청한 경우
3. (목적)심의를 받고자 하는 연구의 목적이 초기 진단기기 개발연구 및 의학적으로 인정할 만한 치료제 개발 등 인가? 예 ㅁ
  • - 의학적으로 인정할만한 치료제 개발 등의 연구인지 여부
  • - 진단기기 개발을 위한 예비연구인지 여부
4. (익명화 및 비식별화) 연구자에게 제공되는 검체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가 생명윤리법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승인된 방식으로 익명화하고 비식별화하였는가? 예 ㅁ
  • - 최소한의 진단정보 제공 원칙
  • - 개인정보법 및 생명윤리법에 따라 승인된 방식으로 익명화 조치되고 비식별화된 검체인지 여부
5. (폐기관리)연구 이후 검체는 폐기예정이고 기관생명윤리위원회에 보고될 예정인가? 예 ㅁ - 연구 이후 폐기 등에 대한 계획 수립이 되었는 지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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