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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76 November 2025

오피니언

◎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료계

한 성 존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우리 의사들은 현재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진료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지급받고 있다. 보험은 필연적으로 지급 기준에 따른 심사를 요구하며,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진료 행위에 대해서는 삭감이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삭감 자체가 아닌, 그 기준의 설정 원칙에서 비롯된다. 근거중심의학(EBM)에 기반한 명확한 진료 기준을 선행하여 수립하고 그에 맞춘 재정 계획을 세우는 순서 대신, 정해진 재정 틀 안에서 기준과 삭감을 도출하는 역전된 구조로 인해 정작 환자들에게 최적의 치료가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 또한, 대한민국의 세계 최저 수준인 의료 수가는 국제 의료 기기 공급망에서 우선순위가 밀린 재료들이 국내 시장으로 유입되게 하는 구조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실제로 심장 혈관 스텐트 등 첨단 의료 분야에서는, 선진국에서 이미 임상적 표준으로 자리 잡은 최신 재료가 국내에서는 수가 문제로 인해 적용이 불가능하며, 일부 국가에서 사용을 중단한 재료가 대신 활용되는 모순적인 현실이다. 이는 결국 환자의 안전과 최적의 치료 선택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이다.

​ 대한민국의 의료를 넘어 전 세계 의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큰 포부를 가진 젊은 전공의로서, 우리가 이 시점에 가장 강력히 호소하는 것은 '소신 있는 진료 환경'의 확보이다.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고 과학적으로 근거가 확립된 의학적 지식을 환자를 위해 최선의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료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고 환자에게 최고 수준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료계의 핵심 가치이다.

'이상적인 의료계'라는 비전이 현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들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치부될까 하는 우려가 먼저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대한민국 의료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왜 이러한 자조적인 고민이 젊은 세대에게 먼저 드는지에 대해 그 일원으로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 세간에는 대한민국 의료가 '세계적'이며 '이상적'이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다.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의료'라는 찬사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대한민국 의료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향, 유토피아적 시스템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젊은 의사들은 지금 무엇을 위해 변화를 요구하고, 더 나은 시스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 우리 전공의들은 지금의 의료 시스템이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기적을 달성했지만, 그 효율성의 이면에 젊은 의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시스템이 지속 불가능한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상적인 의료계는 재정적 논리가 아닌 의학적 전문성이 우선시되는 사회이다. 의료인의 양심과 과학적 판단이 존중받고, 그 판단에 필요한 적절한 보상과 지원이 뒤따르는 시스템이다. 이는 단순히 의사 개인의 복지를 넘어, 국민들이 미래에도 흔들림 없이 최신 의학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미래 투자의 문제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현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다음 세대의 의료를 책임질 젊은 의사들이 좌절하고 이탈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우리는 선배 의사들(교수님들)의 지혜와 경험을 존중하며, 국민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지키는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 이제는 미래를 위해 구조를 바꿀 때다. 현실 수준에 이상을 낮추기보다는, 이상을 현실에 적용하고 현실을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모멘텀이 필요하다. 젊은 의사들의 소신 있는 진료가 존중받는 이상적인 대한민국 의료를 위해, 모두의 관심과 연대를 촉구한다.

대한의학회(https://www.kams.or.kr)
(06653)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14길 42, 6층/7층 (서초동, 하이앤드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