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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69 March 2025

오피니언

◎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 무엇을 translation 할 것인가?

이 유 경대한의학회 정책이사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라는 단어가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사용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중개연구’라 하면 딱 떠오르는 정의를 찾기 쉽지 않다. 미국 National Center for Advancing Translational Sciences(NCATS)에서 정의하는 중개연구의 정의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데, 중개(translation)는 진료실이나 검사실, 지역사회에서의 경험 또는 관찰을 기반으로 개인과 대중의 건강 개선을 위한 진단과 치료부터 의학적 절차와 행동변화에 이르는 모달리티(modality)를 개발하는 전환의 과정이라 설명한다. 현장의 관찰에 기반하여 현재 관행의 개선을 목표하므로 중개연구의 목표 성과물은 진단이나 치료법부터 시술과 행동 변화에 이르기까지 특정 모달리티에 한정되지 않는 특징이 있으며 이를 “modality-agnostic”으로 표현한다. 중개연구는 현장 니즈에 기반하므로 확실한 시장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투입한 노력과 비용 대비 높은 실패율로 유명하다. 그 이유를 NCATS 초대 원장은 중개연구의 경험 기반 연구 수행(empirical craft)으로 설명하고, 과학적 접근(translational science)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1)

대한의학회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함께 우리나라 중개연구의 수행에 과학적 방법론의 도입으로 연구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개연구센터를 개설하였다. 오늘은 미충족 의료수요를 연구개발 성과물의 사용목적(intended use)으로 ‘번역(translation)’하기 위해 개발한 CLUE 템플릿을 소개하겠다.

전술한 바와 같이 중개연구는 의료현장에서 발굴된 미충족 의료수요가 그 출발점이다. 이는 의료행위를 하면서 경험한 어떤 제품의 사용상 불편함이나, 기존 제품에 새로운 기능 추가로 좋은 효과가 기대되거나, 기존에 불가능했던 것을 과학기술 발전으로 구현(예, 로봇수술의 개발로 최소 침습 치료 가능) 등 다양하다. 미충족 수요의 내용이 무엇이든지, 이 미충족 수요는 특정 의료행위의 범위 안에서 관찰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미충족 수요를 반영한 연구개발의 성과물 역시 적용될 특정 의료행위로 구현됨을 가정한 효과 또는 영향의 추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특히 구현되는 모달리티가 의료기기 등 단독 제품인 경우, 그 제품을 포함하고 의료행위는 빠지고 제품 차원에 국한한 효과나 영향에 집중함을 흔히 목격하는 것이 현실이다.

미충족 의료수요는 왜 사용목적으로 번역되어야 할까? 전술한 바와 같이 미충족 수요는 특정 의료행위라는 복잡계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이 미충족 수요가 해결되었을 때, 과연 이 복잡계는 이전과 동일하게 작동할 것인가? 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반드시 사용목적으로 번역하여 그 복잡계의 영향을 분석하고, 이러한 변화가 현장에서 충분히 수용 가능하지 가늠해야 한다. 여기서 사용목적이란 용어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이 글을 읽는 분은 사용목적이란 단어에서 유추되는 그림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각 개인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그림이 동일할까? 의료제품이 표현해야 하는 “사용목적”은 규제 용어이고, 제품이 의료현장에서의 활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용어이고, 어느 나라에서나 규제허가 문서에 반드시 제시해야 하는 내용이다. ISO 14971 표준에서는 사용목적에 포함하여 표현할 내용으로 적응증(medical indications), 환자군(patient population), 사용환경(use environment) 그리고 작동원리(operational principles)를 포함하도록 권고한다. 내용은 어느 환자에게 어떤 상황에 사용할지, 병원에서 사용할지 혹은 일반 개인이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할지의 내용을 담고 있고, 작동원리를 제시하여 이와 연관하여 발생 가능한 위험요소들을 예측할 수 있게 구성하고 있다.

CLUE(Clinical Unmet Needs based Intended Use Establishment) 템플릿은 도구의 제목이 설명하듯 미충족 의료수요에서 출발하여 사용목적을 정의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템플릿이다. 템플릿이 의미하듯, 이 도구에서는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미충족 수요를 분석하고, 사용목적으로 전환할 때 고려할 요소들을 환자, 사용자, 제도, 비용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질문한다. 또한 1단계 초기 아이디어(initial concept), 2단계 전문가 자문(expert consultation), 3단계 의사결정(decision making), 4단계 사용목적 정의(intended use)의 단계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는 연구 개발자가 최초 고안한 아이디어를 구현함에 관련 전문가 사회의 수용가능성부터 환경, 제도, 인력, 비용 등의 측면을 빠뜨리지 않고 자문받게하고 또 스스로 검토하게 한다. 결국 이러한 검토를 바탕으로 사용목적을 확정하고, 이를 제품의 설계투입요소(design input components)로 사용하게 하려는 것이다.

CLUE 템플릿은 현재 치료목적 의료기기(CLUE-MD)와 진단목적 의료기기(CLUE-Dx), 그리고 체외진단목적 의료기기(CLUE-IVD)용으로 개발되어 있고, 모든 연구개발자들이 학술목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였다. 2)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도구는 연구개발 성과물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 성공을 보장받는 유일한 방법은 연구개발 책임자가 이 도구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치열하게 활용했는가라고 할 수 있다. CLUE 템플릿 사용의 실제는 연구개발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다. 왜냐하면, 이 도구를 이용해 사용목적을 정의하는 단계에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개발자는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 것이고, 관련 전문가는 현실 제품이 없어도 의도하는 바를 듣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연구개발자가 임상의사에게 구하는 자문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기존의 자문은 무엇이 비과학적이길래 대한의학회는 CLUE 템플릿을 개발했을까? 바로 미충족 의료수요의 다양성 때문이다. 전문의료인은 자신이 진료하는 환자군이나 주변 환경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충족 의료수요를 제시한다. 그래서 모든 미충족 의료수요가 비즈니스 측면에서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템플릿은 다수 전문가의 의견을 받도록 하고, 수집된 수요를 분석하는 절차를 만들었다.

CLUE 템플릿을 이용한 미충족 의료수요의 사용목적으로의 번역은 단 한 번에 끝날 수도 없고, 끝내서도 안 된다. 1단계부터 4단계까지의 과정은 자유롭게 단계를 오가며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또한 이 번역의 과정은 의료제품이 목표하는 의료전문가와 실제 제품을 개발할 엔지니어, 해당 국가의 허가 규제와 의료보험 제도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중개연구가 그동안 많은 자금이 투입되었음에도 실패율이 높다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개연구의 진행 절차에 과학적 접근과 개혁적 변화가 필요하다.




  • 1) Austin CP. Translating translation.Nat Rev Drug Discov 2018;17(7):455-6. doi: 10.1038/nrd.2018.27
  • 2) Lee YK, Lih E, Kim M, et al. Healthcare Experts’ Advisory Unit and Support (HAUS) Program for Medical Device Development in Korea: Introduction of Clinical Unmet Needs-Based Intended Use Establis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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