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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69 March 2025

기획특집

◎ 의정 사태의 배경

안 덕 선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우리나라에서 통상 ‘문민정부’라는 용어는 지난 1992년 12월 김영삼 대통령 당선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기억된다. 문민정부의 의미는 일제 강점기 군국주의와 해방 후 미군에 의한 군정, 그리고 1948년 건국 후 이어지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이끌었던 약 32년간의 군부 정치 종식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한 세대 이상 지속된 군부독재에 대비되는 용어로 한동안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별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문민정부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군사정권에 대한 경험이 없다. 80년대 광주 민주화운동 역시 많은 국민에게는 체화된 경험이 아니고 문헌이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가슴 아픈 역사적 사건이다. 군사정권이 한세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고도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70년대 군사정권이 아니었다면 경제발전은 불가능했을까? 라는 반문도 해본다. 그럼에도 고도성장기에 몸으로 경험한 사회적 가치관은 과도한 정치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였어도 공공의 복리를 위해 가능하다는 논리가 통했다.

우리나라에서 전공의에 의한 최초의 집단행동은 지난 1971년에 전국적으로 확산했던 수련의 파동을 꼽을 수 있다. 전공의는 애초 무급으로 시작됐다. 급여가 지급되었던 초창기에는 급여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은 금액이어서 생활비는 고사하고 몇 번의 외식이면 모두 다 소진될 정도였다.

90년대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재벌들의 병원 진입이 시작되었고, 이후 국제적 수준의 병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태어난 의과대학생이나 전공의가 보는 세상은 70년대 고도성장기에 선배들이 겪었던 우리나라 상황과는 너무 다른 세상이 되고 있었다. 90년대만 해도 의과대학은 무분별한 의대 증설의 후유증을 심하게 경험했다. 지난 2000년 전문직이 자발적으로 주도한 의과대학 인정평가 도입 이후 2010년경부터 의학교육의 개선이 이뤄지면서 그 결실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 해서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공의 교육은 일제 강점기의 ‘의국’이 모체가 되었다. 주임교수 중심의 극심한 수직적 위계 속에서 주어진 직무를 어떤 상황에서도 충실히 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그 시기에 의국은 병원의 임상과 별로 세워진 작은 독립적 교육, 경영 단위였다. 의국이라는 독특한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전공의 교육에 대한 국제적 동향이나 전공의의 조직화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문민정부 이후에 태어난 세대의 전공의가 과거 고도성장기의 전공의인 지금의 교수진과 전공의 교육에 대한 시각이나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관을 공유하는지는 의문이다. 너무나도 가난한 시절에 전공의 과정을 밟았던 선배들과 경제적으로 중진국에서 시작하여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태어난 후배 전공의의 기대치는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세대가 과거에 공유했던 가치를 유지할 수는 없다. 물론 근면, 성실, 수월성 추구 등의 보편적 가치는 세월이 변해도 바뀌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남성 육아휴직자가 전체 휴직자의 30%를 차지하는 세상이 됐다. 새 세대는 전공의에게 합리성을 상실한 요구는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고, 그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수련병원의 전공의 직무는 전문 직업성과 부합할 수 있어야 하고, 교육적 이어야 한다.

의정 사태 이후 만나본 젊은 학생들과 전공의들의 보건의료에 대한 시각은 과거 고도성장 세대의 시각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나 보인다. 현세대는 정보화, 국제화의 영향인지 국제적 시야도 넓어졌고 타국의 발전된 의료제도나 전공의 교육에 대한 식견도 있다. 다만 아직 학생이나 전공의 단체의 조직화는 선진국에 비하여 부족하고 느슨한 편으로 보인다.

의정 간 충돌 사태의 근본 원인 중의 하나는 변해가는 새 세대의 전공의가 갖는 가치관과 일제 강점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보건 행정의 관료적 권위주의와 큰 충돌 현상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의정 사태는 정부의 명령과 통제로 일관된 구시대적 ‘독재적 보건 정치’에 대항하여 신세대 젊은 학생과 전공의의 저항으로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군사독재에서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더 일찍 수용했더라면 불필요한 비극적 사건들과 희생은 피할 수도 있었고 민주화도 앞당겨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불행히도 과거나 지금이나 정부와 관료의 입장은 젊은 학생과 전공의 의견마저 반체제 활동이나 반사회적 활동으로 규정하려 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정권이나 관료에게 순종하지 않는 집단은 자기 이익 이외는 돌보지 않는 ‘사악한 집단’으로 간주하고, 국민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철저히 통제받아야 한다는 이념이 강하게 지배하는 듯하다. 과거 70년대의 가치관이 아직도 존속하며, 이제 90년대 이후의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대비와 적절한 변화와 적응이 없었기 때문으로 간주된다.

아직도 의사의 집단행동은 다 불법이고 문민정부가 부활시킨 유신시대 긴급조치인 ‘업무개시명령’이 살아있는 한 신, 구세대 간 인간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한 세대 간 가치관의 충돌은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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