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장 한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
법은 타율 규범이며, 사회적 현상을 법적 체계로 정리한 문장이다. 개별적 행위들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표면에 드러나면, 법은 규범적 언어로서 그 사태를 정리하려고 한다. 법과 제도가 한 몸처럼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료인들은 전문직 종사자로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의료에 적용되는 법에 대하여 강한 부정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 관행에 어긋난다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 적용은 법조인들의 영역이다. 의료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정이 어디 있는지 살펴본다.
법은 자체로 완벽한가?
그렇지 않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본다,
첫째는 법의 흠결이 있다. 입법 당시 입법자들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1804년, 나폴레옹은 현재까지도 프랑스 법으로 기능하고 있는, 민법전(The Napoleonic Civil Code, also known as the French Civil Code)를 편찬한다. 이 업적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던 나폴레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전에 대한 주석서가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낙담하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도 나타날 수 있다.
둘째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법은 제각각인 사실들을 통일된 체계 하에서 정리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법은 마치 인공지능이 거대 데이터베이스를 통하여 수많은 연산을 반복하여 동일한 사례를 추론하는 것이 된다. 법은 가치 판단을 통하여 구체적 의미가 드러나는 규범적 언어를 사용하고, 법 해석을 통하여 드러난 사실을 법적 요건에 맞추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데, 이 과정을 ‘포섭’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포섭은 법 해석의 본질이기도 하다.
법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하나의 사물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보다, 하나의 조문을 해석하는 시각은 더 다양하고 극단적이다.
한스 겔젠(Hans Kelsen)의 순수법학에서는 근본 규범을 제시하였고, 법의 본질에서 칸트의 실천 이성 명령을 언급하였지만, 그 내용을 확정하지 못하였고, 결국은 실증주의에게 길을 양보하게 된다.
칼 르웰린(Karl Llewellyn)의 법현실주의에서는 법은 사회 통제를 위한 기계와 같은 것이었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고, 결국 권위에 의한 재판 규범으로서, 법을 운용하는 자들의 구체적 행위가 중요하였다. 학생 때 배운 법사상가와 법철학 관련 책을 보면 놀랄만큼 등장 인물이 많다.
법 해석은 합의되는가?
포섭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이다.
공원에 ‘vehicle’의 통행을 금지하는 ‘공원법’이 있다. 여기서 법조문에 표기된 ‘vehicle’에 오토바이, 자전거, 스케이트보드, 마차는 포함되는가? 캠브릿지 사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특히 지상에서 사람이나 물건들을 나르기 위하여 사용하는 기계로서 흔히 엔진과 바퀴를 가진다.’ 이 정의를 포섭 과정에서 채용한다면 오토바이는 통행금지이다. 공원에서의 조용한 휴식과 산책을 보호하는 것이 공원법의 목적이라면 소음을 내는 오토바이, 스케이트보드는 통행금지이다.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안전이 목적이라면, 오토바이, 마차는 통행금지이다. 오토바이가 엔진을 끄고서 조용히 공원을 통과하는 경우라면 적법하다.
법의 본질은 의료와는 다른 것이다. 법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고, 법조인들 사이에도 의견 대립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제도를 운용하는 권력을 위임받았다. 그들은 의료인들은 의료 관련 판결에 대하여 과도하게 감정 이입하는 것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사법부에 대한 권력 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동의할 수 있지만, 개별 판결에 대한 비판은 사회적으로도 공감 받기 어렵다. 물론 이 말도 의료인들은 듣기 불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