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남 국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그림1. 국가별 의료데이터 규제와 활용에 대한 전략. 한국의 길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환자의 개인정보보호와 의료데이터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서로 상충될 수 있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부터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기반으로 축적해온 방대한 디지털 의료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뛰어난 국내 의료수준과 주민등록번호를 활용한 대규모 코호트 구축 가능성, 그리고 우수한 정보통신산업 기반과 AI 기술력 등을 이용한 의료 인공지능 개발을 통해 의료의 질을 높이고 관련 산업을 이끌 수 있는 충분한 기반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역량을 보유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어, 한국이 의료 인공지능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할 잠재력이 크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국내 의료데이터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가장 큰 원인은 의료데이터 활용에 대한 인식 부족과, 이러한 환경에서 규제 중심의 ‘데이터 3법’이 제정되었다는 데서 비롯한다. 특히 ‘데이터 가명화 특례’를 통한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시 재식별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가명화를 진행한 의료기관(주로 병원)에 대한 법적 책임이 따르고, 가명화가 어려운 의료데이터는 활용 자체가 금지된다. 여기에 환자 개인정보가 유출될 경우 의료진의 형사처벌과 병원 매출의 3%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 등이 보수적인 의료환경과 맞물려 병원과 의료진이 의료데이터 활용에 더욱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로는 개인정보 보호 방법이 가명화·익명화·동의 세 가지로만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의료데이터를 가명화·익명화하면 기술적인 어려움을 차치하더라도, 의학적으로 중요한 정보가 유실돼 실제 활용이 어려운 경우가 잦다. 결국 환자로부터 동의를 받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그나마 현실적이지만, 방대한 빅데이터를 후향적으로 일일이 동의받기 어렵다. 또한, 기존 제도에서는 소위 ‘포괄적 동의’가 인정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미리 환자로부터 전향적 동의를 받아두었다 해도, 유사 연구나 다른 빅데이터·AI 연구에 데이터를 활용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의료데이터 공개와 활용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점도 걸림돌이다. 의료기관이나 의료진별로 보유 데이터의 질과 복잡도가 다르기 때문에, 인센티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으면 형식적인 데이터만 공유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개인정보보호법’이 기존 관련 법령인 ‘의료법’이나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 등과 충돌하는 부분으로 인하여, 해석의 모호성으로 인해 의료데이터 활용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이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가 지금까지 있었으나, 규제당국의 적극적인 노력 부족과 이해당사자 간의 합의 도출 어려움으로 인해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표1. 나라별 바이오의료데이터 이차활용 전략
이에 반해 해외 주요국들은 자국의 실정에 맞춰 정부 또는 기관 주도로 데이터 개방·공유 및 연계·통합을 관장하는 데이터센터를 설치·운영하며,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기반을 체계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그림1, 표1 참고)
전 세계는 이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시대에 발맞춰 의료데이터의 활용과 규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미국은 네거티브 규제 방식의 장점을 활용해 자본, 기술, 높은 의료수준을 바탕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정치체계의 특성을 활용해 국가 차원에서 의료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럽은 정보통신기술(ICT) 경쟁에서의 뒤처진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규제 정비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도 어떤 시스템을 구축할지가 시대적 과제이다. 의료데이터의 특성을 고려해 비식별화보다는 접근이나 다운로드가 제한된 클라우드 시스템 도입, 사전 계약을 통한 책임 강화 등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사용환경을 규제하는 추가적인 방법을 적극 검토해야한다. 또한, 동의 제도의 유연한 해석과 ‘데이터 계좌’를 통한 환자의 동적 동의 시스템 구축, 포괄적 동의 허용, 데이터 사용료 등의 데이터 활용 인센티브 제도 도입, 데이터 중개인(Honest Broker) 제도 명시화 등이 필요하다.
더불어, 기술 발전 속도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스마트 규제와 정부과제로 생산된 의료데이터의 공개 의무화, 국가바이오빅데이터와 같은 공개 데이터 구축도 시급하다. 이를 통해 한국의 높은 의료 수준을 더욱 견고히 하고, 의료빅데이터와 AI 산업을 육성하여 미래의 먹거리를 대비해야 한다.
의료데이터 활용은 이제 단순한 규제나 환자개인정보 보호의 문제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개선과 함께 데이터 활용을 촉진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의료 질 향상과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노력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