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혜 경 오픈씨어터 대표
1605년에 출판된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역사상 최고의 소설’로 선정될 만큼,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제목을 들어봄 직한 아주 유명한 소설입니다. ‘돈키호테’하면 풍차와 싸운 이른바 미치광이 노인을 떠올리기도 하죠. 그러나 사실 돈키호테를 읽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1부가 52장(章), 2부가 74장, 합해서 126장에 이르고, 등장인물만 무려 650여 명에 이르는 아주 방대한 작품이면서도, 지루하다 못해 완독하기 어렵다는 평이 난무합니다.
1605년 ‘라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키호테’ 초판본
돈키호테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라만차라는 시골 마을에 사는 한 노인 ‘알론소 키아노’가 밤낮으로 기사도 이야기를 탐독한 나머지 정신이 이상해져 스스로를 중세기의 편력(遍歷)기사인 ‘라만차의 돈키호테’라고 칭하게 됩니다. 그는 스스로 세상의 부정과 비리를 처단하고 학대당하는 사람을 돕고자하여 ‘로시난테’라는 앙상한 말을 타고 근처에 사는 순박하고 우직한 농부 ‘산초 판사’를 시종으로 거느리며 모험길에 오릅니다. 그는 심지어 ‘둘시네아’ 공주라는 망상 속의 사랑하는 여인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돈키호테의 기사도 정신, 즉 광기와 몽상은 가는 곳마다 현실 세계와 충돌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비웃음을 삽니다. 돈키호테는 빈번하게 실패와 패배를 겪습니다. 결국 그의 조카와 가정부는 이상한 소설 때문이라며 서재의 책을 불태워버리지만, 돈키호테는 굴하지 않고 또 다시 편력길에 올라 이번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공격하다가 말에서 떨어지고, 포도주 가죽 부대를 거인이라며 공격해 주막 주인에게 얻어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자신의 뜻과 용기를 조금도 꺾지 않습니다.
스페인 ‘라 만차’ 지역의 돈키호테 동상
이렇듯 어쩌면 그냥 정신나간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심지어 그야말로 ‘진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돈키호테의 이야기가 왜 수백 년간 사랑받는 고전 명작인지는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소설 속 돈키호테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평화 시대의 우리의 상식 스펙트럼으로 돈키호테를 바라보면 더욱 그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소설 속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소설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는 이상과 꿈을, 산초는 현실, 실재, 사실 등을 상징합니다. 돈키호테는 늘 공상에 빠지고 엉뚱한 행동을 일삼지만 신념과 의지가 강하고, 산초는 평범하면서도 세속적인 인물입니다. 돈키호테의 행동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물질적인 보상 때문에 그를 따릅니다. 이런 상반된 인물형에서 우리는 인간이 이상과 현실에서 느끼는 고뇌를, 즉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대립으로 작품의 주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둘이 조금씩 닮아간다는 점입니다. 모험을 통해 그들의 성격은 서로 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돈키호테적이면서도 산초적인 기질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돈키호테를 통해 우리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점점 멀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행복한 지점을 찾을 수 있도록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돈키호테>는 이후 문학작품을 포함한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찰스 디킨스, 도스토옙스키뿐만 아니라 윌리엄 호가스,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연극, 오페라, 현대에 이르러서는 뮤지컬까지, 이러한 점이 세르반테스를 ‘예술가 중의 예술가’로 부르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5년 돈키호테 제1권 출간 350주년 기념 프랑스 문예주간지 표지삽화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돈키호테’
오페라 ‘돈키호테’의 한 장면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한 장면
발레 ‘돈키호테’(안무: Marius Petipa 마리우스 프티파)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작곡가: Mitch Leigh 미치 리) 는 우리나라에서 인기리에 주기적으로 공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Jules Massenet 쥘 마스네의 오페라 ‘돈키호테’는 아직 한 번도 국내에서 공연된 적이 없습니다. 장장 5막의 초대형 오페라인 돈키호테는 초대형 오페라이자 베이스인 돈키호테가 주인공인 매우 진지하고 아름답고 로맨틱한 오페라입니다.
세 작품 모두 아름다운 선율과 화려한 무대 구성이 특징인데요, 돈키호테를 기반으로 약간씩 다른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발레 ‘돈키호테’에서는 가난한 이발사 ‘바질’과 선술집 주인 로렌조의 딸 ‘키트리’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돈키호테는 키트리를 둘시네아로 착각하고 춤을 신청하며, 이후에 돈키호테는 키트리와 바질의 사랑을 이어주는 오작교의 역할을 합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는 여관을 성이랍시고 찾아들어간 돈키호테 앞에 거친 인생을 살고있는 여자 알돈자가 나타나고, 돈키호테는 그녀를 둘시네아라고 여깁니다. 알돈자는 미친 노인이라며 돈키호테를 무시하지만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자신을 존중해주는 돈키호테 덕에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인생을 깨닫게 되죠. 오페라 ‘돈키호테’에서는 둘시네가 마을에서 가장 예쁜 처녀로 등장합니다. 둘시네에게 사랑고백을 한 돈키호테는 둘시네의 구혼자 후안과 결투를 버리고, 이러한 모습에 흥미를 느낀 둘시네는 돈키호테에게 얼마 전 산적들이 자기 방에 들어와 빼앗아 간 진주목걸이를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돈키호테는 우여곡절 끝에 목걸이를 찾아 둘시네에게 돌아와 청혼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거절당하고, 슬픔에 가득찬 돈키호테는 울창한 숲 속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 공연 안내
공연명: 오픈씨어터 오⋅발⋅콘 시리즈 <Vamonos! 돈키호테>
공연일시: 2023. 03. 24. (금) 19:30 / 2023. 03. 25. (토) 19:00
공연장소: 한전아트센터
티켓예매: 인터파크티켓 (2/13 오픈예정)
문의: 오픈씨어터 02-515-0317 / koreaopentheat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