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재 승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최근에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 중의 하나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이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사건 발생 원인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각 유관 단체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사건 대처 미숙과 연관 의료인에 대한 처벌 필요”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더니 좀 더 나아가서 “의사 수 부족/의대 증원 신설”쪽으로 언론이 방향을 틀어 의료계를 소위 “중세 시대 마녀 사냥“하듯이 잡기 시작했다. 여론이란, 국민들이 언론 기사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 거기에 따라 여론이 형성되는데 여러 유관 단체들의 각자 다른 소리와 주장들로 인해 언론 보도 자체가 사건 발생의 본질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주제가 변하여 국민들이 이번에도 의료계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고 필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어 “이건 아니다”라는 심정으로 유튜브 기사의 댓글에 실명으로 올린 글 하나가 언론 내용을 바꾸고 이로 인해 여론이 바뀌는 것을 보고 필자 본인도 많이 놀랐지만 그나마 이번에도 억울하게 의료계가 국민들에게 뭇매를 맞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은 듯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아산병원 사건 발생 직후 언론이 “의료계의 여러 문제점에 대한 질타”쪽으로 주제를 잡았다가, 이후 “필수의료 살리기”라는 주제로 바꾸면서 의료계도 “반격?”에 나선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지만 여기서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이 “도대체 필수의료의 기준이 무엇인가?” 이다. 이번 서울아산병원 사건의 쟁점이 된 과는 뇌혈관수술을 하는 신경외과인데 정작 신경외과 자체는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필수의료과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신경외과가 필수의료과목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개인적으로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을 정도로 오늘도 퇴근 못 하고 의사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키면서까지 수많은 밤을 병원에서 지세우면서 환자를 진료하는 많은 신경외과 의사들의 사기를 꺾게 만든 당사자들은 정작 누구란 말인가? 시골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진료실에 오셨을 때 “뇌출혈되면 하는 머리 수술이 필수의료가 아닌가요?”라고 물어보면 “머리 터졌는데 그건 당연히 필수의료이지!” 라고 대답하시는 분이 거의 전부인데 정작 국가의 의료정책을 결정하고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에서의 생각은 “신경외과는 필수의료가 아니다”이니 이런 아이러니한 괴리는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지 생각할수록 화도 나고 속이 상하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고관대작분들은 머리 문제만 생기면 소위 큰 병원의 의사들을 찾으면서 “신체 중에서 당연히 머리가 제일 중요한 부위이니 명의에게 진료 받아야죠”라고 말씀들을 하시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는 없는듯 하다. “필수의료도 아니니 아무 데서나 진료 받으셔도 결과는 비슷합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이런 필자의 마음을 아는 고관대작분들은 얼마나 될까?
나이 50대 중반의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필자가 인생에 대해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겉으로 포장된 유식해보이거나 대단하게 보이는 것보다 실제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라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큰 선거를 앞두고 정치 후보자들이 흔히 “민생 살리기”를 외치면서 찾는 곳이 “시장”인데 시장에서 오뎅이나 떡볶이 등을 먹는 장면을 찍으면서 “많이 파세요”라고 인심 좋게 비치는 장면을 흔히 보는데 정작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큰 경제 사건들의 대부분의 비리 금액이 기본적으로 수백억, 수천억에서 몇 조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오뎅이나 떡볶이를 파는 상인들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경제 사건들을 통해서 소위 “나는 이용만 당하는 존재인가? 오뎅이나 떡볶이가 너무 싸니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오뎅이나 떡볶이를 전국에서 아무도 안 만들면 그때는 희소가치가 생겨서 가격이 오르려나? 도대체 재료 원가도 안 나오는 가격으로 팔아서 언제 집사고 언제 부자 되나?”라고 느끼지 않을까 싶은 심정은 나만 드는 것인가? 날밤 새고 진료하는 신경외과 의사 입장과 떡볶이 파는 시장상인분들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필자는 본다.
글을 쓰다 보니 그동안 신경외과 의사를 하면서 받은 “자괴감과 울분‘으로 인해 신경외과 의사의 편협한 시각으로 기술을 한듯한데, 아마 실제 필수의료를 행하는 의료인 입장에서는 근본적으로 위의 예시나 비유가 본인들의 처지를 “비유”하는 내용이라는 것은 모두 다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원래 주제인 “필수의료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필자의 생각을 한마디로 이야기해보면 “생명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의료인가?” 라고 기준을 세워서 “날카로운 잣대”로 평가해보면 답은 나온다고 생각한다. “전공의 지원율 감소”라는 기준으로 필수의료의 기준을 세우다보니 정작 신경외과가 필수의료에서 빠지는 사태가 오게 된 것이라고 보며 신경외과 말고도 필수의료인데 보건복지부 선정과에 포함되지 못하여 신경외과의사들처럼 속병 드는 과도 분명 있다고 본다. “필수의료의 기준”을 세울 때 또 하나 걱정되는 것이 의료계에서 어떤 중대 사안을 결정할 때 의료계 외부의 여러 단체나 언론, 권력기관들이 각자 자기들의 어떤 “이차적 이익(secondary gain)”을 위해서 소위 명분은 “국민 건강”이라는 거창한 것으로 만들고 그런 본인들의 이차적 이익을 위해서 의료계 전체를 국민들의 공공의 적으로 돌리거나 전체 파이는 정해져 있고 각 진료과들끼리 싸움을 붙여서 힘센 자가 가져가게 하는 식의 파행을 또 답습하는 과정으로 흘러간다면 향후 (적어도 필자가 의료인 활동을 하는 기간 동안에는) 한국의료계의 희망은 없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의료인들도 “내가 하는 진료 행위가 생명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의료가 맞는가?”라는 기준에서 평가할 때 초등학생 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양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기우(杞憂)중의 하나인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위의 이런 생각들이 어떤 분야도 힘들지 않은 의료분야는 한국에 없다. 필수의료만 힘드냐? 생명과 직결되지 않은 필수의료 아니면 안 힘든 줄 아냐? 라는 식으로 의사들 사회를 소위 “갈라치기”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간다면 더욱 한국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왜 한국의료는 거의 모든 과가 죽도록 고생하고 거기에 맞는 국민들의 존경이나 신뢰보다는 수술장 CCTV를 달아서 의사들이 딴짓을 안하고 진료를 열심히 하는지 의심 받아야할 정도로 환경이 된 데에 의사들 자신은 책임이 없고 정부와 국민들을 탓하고 그러면서도 전 국민이 자식들은 의과대학에 보내고 싶어 하는 그런데 의과대학에 진학해도 “힘든 과? 필수의료과?는 하지마라!”라고 자식들에게 이야기하는 아주 이상한(?) 사회가 되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는데 여기에 대한 책임은 정작 남 탓(국민 탓, 정부 탓, 국회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의료인 업무를 행하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 의료인들에게 물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힘 빠지는 의료 제도를 만드는 데 일조한 이미 작고하신 원로 의료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게 아니라 현재 현직에 있는 의료인들 중에 소위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50대, 60대 의료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의료제도의 불합리성과 부당함을 국민과 언론에 알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본인들만 소위 “명의”로 정년퇴직이나 현직에서 물러나고 후배 의사들의 처우는 어떻게 되든 말든 필수의료는 공부 못하는 의사들이나 하고 공부 잘하는 의사들은 돈이 몰리는 과로 가면 된다 라는 식의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진 의사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의료인들은 한일 합방시대의 매국노와 다를 게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게다가 정부도 지금처럼 누가 뭐라고 징징대면 의료수가 약간 올려줘서 울음 그치게 만드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역시나 한국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남궁민 배우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말한 대사 중에 필자 가슴 깊이 와 닿은 대사가 몇 개 있어 여기에 적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하는 주인공에게 회사가 부당하게 압력을 넣었을 때 주인공이 한 대사들이다. 우리 현재 한국의료계 현직에 근무하는 의료인들이 양심적으로 한 번 새겨두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적어본다. 세상은 좀 더 밝은 방향으로 간다고 진심 믿고 있는 필자다. 한국 의료인들은 읽어보면 뭔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으리라!
- “각자가 가진 무기 가지고 싸우는 건데 핑계 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또 지게 됩니다.”
- “해왔던 것들을 하면서 안 했던 것들을 할 겁니다.”
- “말을 잘 듣는다고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던데요?”
- “왜 야근만 하고 야근수당 신청은 안 합니까? 아무리 돈 많아도 자기 권리는 챙기세요.”
- “적어도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바꾸지 못한다면 저항이라도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