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 석서울의대 감염내과학
국내 의료기관에서 감염관리의 역사는 외국에 비해 그리 길지 않고 다른 의료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에 비해 투자와 인력양성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그간 항상 밀려왔다. 질병의 예방을 위한 활동보다 처치, 치료, 투약 등의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이 중심이 된 현재 의료수가체계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염관리 분야가 자리를 잡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감염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그나마 사회적 투자가 이뤄진 때는 역설적이지만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 유행과 같은 공중보건의 큰 위기상황이었다. 특히 중동 이외의 다른 나라가 경험하지 못한 의료기관내 메르스 유행을 우리가 2015년에 겪은 것은 국내 의료체계와 열악한 감염관리상황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초유의 사태였다. 메르스 사태 이후 음압격리병상 추가 확보, 감염관리인력 확대, 감염예방관리료 신설 등이 이뤄졌다. 이후 5년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의료기관의 감염관리역량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거의 2년 가까이 유지해 온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버팀목이 풀리면서 최근 코로나19 감염자와 위중증환자가 연일 최고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메르스 유행의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신종감염병에 대한 대응역량을 갖추었고 외국에 비해 그간 선방해왔다고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을 막아내는 것이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것을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러나 평소 잊고 지내다 감염병 위기가 닥치면 그 때에야 미봉책으로 대처해왔던 형태의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으려면 현재의 어둡고 어려운 현실을 미래를 대비하는 교훈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미래는 현재보다 노인인구와 면역저하환자가 더 증가하고 침습적 처치나 치료, 인체 내 삽입기구사용과 관련한 의료관련감염도 늘어날 것이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이미 많은 의료기관이 경험하고 있지만 항생제내성 문제와 다제내성균의 위협도 더욱 심각해 질 것으로 예상한다. 감염예방을 위한 의료기관과 의료종사자의 법적 의무와 책임은 갈수록 더 강조될 것이고 의료기관 감염관리의 중요성도 사회적으로 더욱 부각될 것이다.
먼저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안하면, 향후 의료기관 감염관리는 정부가 주축이 되어 제도적, 행정적 틀을 잡아 중심역할을 하여야 한다. 각 의료기관에 감염관리와 관련한 책임을 부여하되 취약한 부분을 개선하고 감염관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투자와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국내 의료시스템의 전통적인 취약점인 다인실 중심의 병상구조와 간병시스템의 개선, 쏠림과 밀집 해소를 위한 건전한 의료전달체계의 구축은 개별 병원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감염에 취약한 의료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을 적극 도입하고 중환자 진료인력, 감염관리인력, 항생제 적정사용(스튜어드십)을 위한 전문가를 국가차원에서 양성하고 의료기관이 이들을 적극 고용하여 지속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지원을 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감염관리활동에 대해 감염예방관리료에 국한한 현재의 단순한 체계에 비해 세분화된 보상체계를 개발하여 감염관리에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이를 유지하고 있는 의료기관에 대해서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하여야 한다. 특히 감염관리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소 의료기관과 요양병원의 환경개선을 위한 장기적 정책마련과 함께 지자체, 지역의료기관, 상급의료기관간 유기적인 감염관리 네트워크 구축과 유지가 필요하다.
이 네트워크의 중심의료기관에 추가 전문가인력을 배치하여 독자적으로 감염관리 인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기관의 감염관리와 항생제관리를 실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신종감염병을 대비한 개인보호구의 비축과 효율적 순환 방안을 마련하고 감염병과 관련한 인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 의료기관, 의료종사자, 국민 사이에 공신력과 상호신뢰에 근거한 위기상황 의사소통 전략수립과 체계구축도 중요하다.
의료기관들은 병원 신축이나 개보수 단계에서부터 감염관리전문가의 의견을 구하고 감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는 환기시스템과 감염환자의 선별이 가능한 시설을 처음부터 갖추고 트리아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래, 입원실, 중환자실, 주요 검사실, 수술실에 감염환자를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시설을 충분히 구축하여 두고 평상시에 일반 환자진료를 위해 사용하다가 팬데믹 상황이 되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유연한 운영방안을 마련하여 두어야한다.
의료종사자들의 손위생, 주의지침준수, 감염관리와 신종감염병을 대비한 교육과 훈련 등의 기본을 평소 지키는 것의 중요성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도 없다. 감염관리활동은 기본적으로 많은 인적자원이 필요하고 훈련된 전문가나 의료종사자가 직접 수행하는 영역이 대부분이며 결국 사람의 행동변화를 가져와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로봇기술, 의료정보기술, 신속진단법, 자동화된 손위생증진 시스템, 인공지능 감염감시시스템 등의 다양한 기술을 적극 개발하고 그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여 도입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코로나19의 정점이 멀어 보이고 상황도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어 당장 눈앞의 팬데믹을 감당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다음 팬데믹을 대비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신종감염병은 반드시 다시 출현하게 되어 있다. 다음 팬데믹도 언젠가 또 올 것이고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 닥칠 일인지 모른다. 코로나19 이후 팬데믹이 당분간 없다 할지라도 의료관련감염, 다제내성균감염, 예상하지 못한 치명적인 해외 감염병의 국내 유입 등은 지속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팬데믹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현 시점이 국내 의료기관 감염관리의 취약한 부분을 철저히 점검하고 다음 팬데믹에 대해 고민하여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이룰 가장 적절한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