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갑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번째 확진자가 나온 이후로 500여일의 시간이 흘렀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전세계 5억명의 감염자와 5천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최악의 감염병 유행으로 기록되었지만 과학 만능의 시대라고 믿었던 21세기에 감염병에 의해 1억 7천만명의 감염자와 3백50만명(2021년 5월 31일)이 사망하는 재난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했던 의학자나 과학자들은 별로 없었다.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 어느 국가보다 이른 1차 유행을 거쳤고 8월의 2차 유행, 11월부터 3차 유행을 겪었으며 지난 3월 이후의 유행 상황을 3차 유행의 꼬리로 보는 사람과 4차 유행이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란셋(Lancet)에 OECD 국가 중에서 코로나19 억제를 초기부터 강력하게 시행한 한국, 호주, 뉴질랜드 등과 완화 전략을 추구한 국가들의 방역의 결과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저자들은 올해 2월까지 강력한 방역을 추구한 국가들의 사망자 발생이 완화 전략을 선택한 국가보다 훨씬 적었으며 경제 지표도 조기에 회복하였고 국민 개개인의 삶의 제한과 봉쇄도 오히려 적었다고 기술하였다(그림1). 우리가 어렵게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이후의 상황에서는 적절한 유행 상황을 통제하면서 백신 접종률을 올리는 전략을 어떻게 잘하느냐가 방역의 점수표를 결정할 것이다.
< 그림 1. OECD 국가 중 억제 전략과 완화전략을 시행한 국가의 사망자, GDP, 사회적 거리두기 강도의 정도를 비교한 그래프 >
출처 :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cet/article/PIIS0140-6736(21)00978-8/fulltext
2021년 2월 26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백신의 첫 접종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환자와 종사자, 의료기관의 종사자들이 접종을 시작하였고 4월초에는 75세 이상 노인, 5월 27일부터는 65세 이상의 노인의 예방접종이 시작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에 비하여 예방접종의 시작은 2개월이나 늦었지만 5월말부터 백신의 공급이 원활해지고 예방접종센터, 보건소, 12,800개의 위탁의료기관까지 접종을 시작하면서 하루 70만 명이 넘는 예방접종을 달성하기도 하여 5월28일에는 전 국민의 10%가 1차 이상의 예방접종을 맞았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11월까지 집단면역이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갈리고 있다. 바이러스의 종식이라는 집단면역의 궁극적인 상황이라면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6월까지 접종을 순조롭게 마치면 사망자가 급감할 것이고 7월 이후 젊은 층에서의 접종이 잘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 내의 유행 상황도 한결 나아질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전파력이 매우 강하고 노인에서의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백신접종으로 인하여 해결된다면 코로나19가 토착화되어 앞으로 몇 년 아니 몇 십 년을 유행한다고 해도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유럽의 ECDC는 백신접종 상황에서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관련된 지침을 2021년 4월에 발간하였다. 백신 접종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함께 만나는 사람들이 충분히 백신접종을 하게 되면 점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거나 마스크를 벗을 수 있고 특정 고위험시설이나 해외여행에 있어서도 백신 접종이 충분히 이루어진 이후에 정기적인 검사나 격리를 면제할 수 있을 것으로 권고하였다. 우리나라도 백신 접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접종자들에 대한 방역 완화의 조치가 시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정책이 시행될 때 정교하게 계획하여 점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관련 정책을 결정해야 환자가 다시 급증하는 유행의 악화 없이 코로나19로부터 더 안전한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백신은 인류가 가진 감염병 대응의 가장 강력한 방패이다. 코로나19의 유행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백신의 과학에 온 국민이 힘을 실어 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