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혜 승법무법인 반우 변호사
대법원이 한의사도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자 일각에서는 마치 대법원이 의사들의 면허범위를 확정하여 주었다거나 한의사도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취지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영속적이거나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판단에 이른 이유와 과정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사법부는 어디까지나 이미 나타난 현상에 대하여 기존에 존재하는 법률에 비추어 결론을 내리는 기관인 것이지 사회적 합의를 반영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법부의 판단은 원칙적으로 개별 사건에 한하여 사건의 당사자들이 제출한 증거를 토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기에 유사한 사건으로 보여도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부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기도 한다. 또한 한때는 A라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현실의 변화에 따라 B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법기관의 판단이 존재함에도 사회적 합의와 현실을 반영하여 국회가 다른 입법을 한 대표적인 사례가 안마사의 자격과 관련한 사건이다. 과거 대통령령인 안마사에 관한 규칙에서 안마사의 자격을 시각장애인에게만 부여하였는데 시각장애인이 아니면서 안마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일반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여 위헌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이 결정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비판이 있었고 결국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료법을 개정하여 또 다시 시각장애인만이 안마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헌법재판소가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의료법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고 한 결정 취지는 받아들였으나, 일반인에게도 안마사가 될 수 있게 하자는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뒤집은 것이다. 국회가 이러한 입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 위헌사유 중 하나를 해소시켰고 사회적 약자인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를 할 수 있는 독점적인 권한을 주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성립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국회가 대법원의 판단을 뒤집어 입법을 실시한 사례는 또 있다. 의료인이 의료법 제33조 제8항에 위반하여 두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운영한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복수로 운영된 의료기관에서 요양급여를 받아간 행위가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의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것이라고 판단, 해당 의료기관이 받아간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환수하여 왔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설사 복수개설 의료기관이라 할지라도 자격이 있는 의사가 의료기관에서 실제로 환자를 진료하고 받은 요양급여비용을 부당한 이득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고 판단, 위와 같은 환수처분을 전부 하지 말라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그러나 곧이어 국회는 이 대법원 판결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여 복수 개설된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요양급여 환수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개정을 하였고 현재 해당 조항은 시행 중이다. 또한, 대법원은 설사 기 지급한 요양급여를 환수해야 할 때에도 요양급여 중에는 환자에 대한 실제 진료비가 포함되어 있는 점 등을 감안하여 ‘전액’을 환수하지 말고 재량권을 행사하도록, 즉 쉽게 말해 ‘깎아 주어야 한다’고 판단한바 있다. 그러나 국회는 또 다시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여 환수금액을 깎아줄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바꾸어 다시 ‘전액’ 환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 의료법에는 의료인 간 어디까지 행위를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정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경계에 놓인 모호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를 지키지만, 그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가 발생하고 누군가가 그 행위를 문제삼을 경우 비로소 수사 및 재판절차에서 면허 범위가 다투어지게 된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사건이 형사절차에서 다루어지기에 ‘무죄추정의 원칙’ 및 ‘합리적인 의심이 있을 정도로 범죄가 증명’되어야 한다는 근대 형사법의 대원칙 하에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자연히 법원도 피고인(즉 무면허 의료행위 의심자)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가장 전문적인 의료의 영역을 전문가가 아닌 검사와 판사가 최종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다소 불합리하다. 수사와 재판이 시작된 이상 어쩔 수 없이 법원이 개별 구체적 사례에 대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의료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사회적 합의로 그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관련 대법원 판결에서도 일부 대법관들은 위와 같이 지난한 형사절차를 거쳐 사건별로 법원이 면허 범위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추후에는 면허 범위 판단을 사법부가 할 것이 아니라 입법 등의 방법을 통해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법기관의 판단은 확고하고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사법부의 기존 판단은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해당 판단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니 의료전문가들이 나서서 환자들, 나아가 국민 전체의 생명권 보호를 위해 나은 방향이 있다면 정책화, 입법화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