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 재법무법인 우성 변호사
‘사법의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법원 판결이 의료현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의료계의 은어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병원 진찰료 심사기준이 불합리하다는 뜻의 ‘심평의학’에서 따온 신조어다. 전관예우의 실체가 없고 전관선호현상만 존재하는 것처럼, ‘사법의학’의 실체는 없다. 다만, 대법원 판례상 ‘임상 의학 실천 당시의 의료행위 수준’은 명문으로 실재하고, 대부분의 의료전문변호사들이 준비서면에 즐겨 원용한다. 의사의 주의의무는 의료행위를 할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 의료수준은 통상의 의사에게 의료행위 당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또 시인되고 있는 이른바 의학상식을 뜻한다. 나아가 진료환경과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인 수준으로 파악해야 한다.(대법원 2022. 3.17.선고2018다263434판결) 궁극적으로 의사의 주의의무는 규범적인 수준으로 파악하게 되므로, 법관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성향에 따라서 임상의학과 사법의학 사이에 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사법의학은 임상의학 실천당시 의료행위 수준이나 의학상식을 말한다. 그런데, 언론기사를 보면, 대한민국 의료가 ‘심평의학’에 이어 ‘사법의학’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고, ‘사법의학’이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을 초래하였으며, 응급의료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걱정하고 있다. 왜 이런 기우가 발생한 것인가. 의학상식에 따라 판단하는 사법의학이 어떻게 필수의료기피와 응급의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가.
대법원은 의사가 진찰·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할 때에는 사람의 생명·신체·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최선의 조치의무란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신의칙과 위임계약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로서 진료결과와 관계없이 진료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문제는 진료과정에서 발생하는 임상의학은 환자의 상태변화나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동적, 발전적이고, 어떤 의료행위를 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료인에게 상당한 범위의 재량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 검사결과에 따라 진단 및 처치가 이루어지는데 어느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임상의학에서 부여되어 있는 재량의 범위와 판례가 요구하는 최선의 조치의무라고 하는 규범의학(사법의학) 사이에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관 개인의 경험과 성향 또한 이 간극을 넓히는 요인이 된다. 의료행위에 상당한 재량이 부여된다고 하더라도 법관은 그 재량행위의 일탈·남용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임상의학은 재량행위의 남용·일탈의 평가기준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임상의 개개인의 의학적 지식과 기술, 도제시스템을 통해 배운 경험, 개인적으로 습득한 전문분야 영역에서 기술, 세부 전문 분야 등이 고려되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규범의학이나 사법의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의학교과서, 일반적으로 검증된 논문, 진료기록감정의가 작성한 감정회신문이나 사실조회 회신문, 진료기록부 기록내용 등이다. 즉, 사법의학은 법관이 만들어 내는 제3의 영역으로서 새로운 분야의 의학이 아닌 것이다. 사법의학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는 해당 분야 전문의가 오랜 기간 동안 전문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감정회신문이나 사실조회 회신문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의학감정서를 작성하는 감정의의 개인적인 편차가 존재하지만, 소송에서는 언제든지 감정의의 감정회신내용에 대해 반대되는 의학적 견해를 주장, 입증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사법의학은 이 모든 반론과정을 거치는 절차가 이루어진 다음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론에서 사법의학 또는 규범의학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이는 현 소송시스템에서 의료계가 스스로 작성한 진료기록감정회신문, 사실조회 회신문 등 의학적 전문지식의 토대를 부인하는 것으로, 누워서 침뱉기다. 실제 대부분의 임상의들은 사법의학의 존재 여부를 알지 못하고, 자신을 찾아온 환자에 대하여 열과 성을 다하여 진료하는 것인데, 언론에서 지나치게 사법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법원의 판단을 폄훼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것이다. 의사의 주의의무에 대한 판단을 하는 법관은 때로는 학연이나 혈연 등으로 의료계와 연결이 되어 있다. 그리하여 누구보다 의료계의 어려운 입장을 잘 알고 있고 임상의학을 존중하며, 열심히 일하는 임상의들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한다. 물론 실수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To err is human) 예외가 존재할 수 있다. 실체가 없는 사법의학은 일반적인 의료행위의 수준이나 의학상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