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진 홍대한의학회 간행이사
2024년 11월 4일부터 5일까지 ICMJE (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 국제 의학 학술지 편집인 위원회) 2024 정규 미팅에 참석하였다. 이번 해는 뉴질랜드의 The New Zealand Medical Journal (NZMJ)을 발행하는 PMAG (the Pasifika Medical Association Group) 에서 주관을 하였다. 주관 부서 명칭이 뉴질랜드 의학회(New Zealand Medical Association; NZMA)가 아닌 PMAG라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사연이 있었다.
원래 NZMJ는 1887년부터 NZMA 산하 학술지로 발간된 학술지였는데, 최근 들어NZMA가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서 결국 2022년에 해산을 하게 된다. 이 학술지는 1996년에 만들어진 PMAG (뉴질랜드뿐 아니라 태평양 연안 섬들까지 의료 대상을 넓힌 단체)에 인수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뉴질랜드에는 뉴질랜드 의학협회라는 건 없고 PMAG가 이를 대체하고 있다.
PMAG은 오클랜드 시 웰링턴에 위치하고 있는데, 매우 넓은 부지에 여러 개의 빌딩들이 산재해 있는 단지 구조이다. 직접 방문해 보니, 국내 오송에 있는 질병청 단지와 상당히 비슷해서 친근감이 들었다.
이번 미팅에서 다룬 주제들
이미 2024년 1월에 ICMJE recommendation (필자가 번역하고 대한의학학술지편집인 협의회의 감수를 거친 한글본은 ICMJE의 웹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다. 링크는 https://www.icmje.org/recommendations/translations/korean2024.pdf에 있으니 참조 바람) 이 나왔지만, 이번 미팅에서는 생각보다 꽤 많은 부분에서 손질이 있었다.
1) 새 ICMJE member 가입 심사: 현재도 전세계 각국 의학 학술지들이 ICMJE 회원 학술지로 가입을 희망하는 신청들이 몰리고 있다. 이번 미팅에서 50여개의 학술지들을 대상으로 회원 학술지 적합성을 엄격히 신청하여 최종적으로 3개 학술지를 인가했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매긴 1~3 순위대로 신규 회원 학술지가 선정되었다.
2) 논문 철회에 대한 ICMJE 지침안을 용어 정의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다듬었다.
3) 몇몇 용어의 정의에 대하여 심도 있게 토론을 하고, 지침안 문구를 다듬었다. 주로 인종과 종족 관련 논문 발표 시에 준수해야 할 사항들, sex와 gender의 구분과 변별력 있는 사용, 시각 자료 사용시 개인 신상 노출을 원천적으로 적극 방어해야 하는 것 등에 대하여 논의하고 부분 개정을 하였다. 특히 자료 사진 등을 통한 개인 정보 노출 위험 문제는 본 학술지도 작년에 혹독하게 경험한 바가 있었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임했다.
4) 중복 출판에 대하여: 일부 저자들이 NEJM이나 Lancet, Nature 등의 빅 6 학술지를 대상으로 반 독점법 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는데, 이를 계기로 중복 출판 방지에 대한 문구 보완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5) 인용의 정확성 보장을 위한 저자의 선언문을 의무화하는 문제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좀 놀라운 결과이지만, 출판된 논문에서 부정확한 인용이 있었던 사례가 무려 25%나 됐다고 하며, 이것이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굳이 번문욕례로 문서 하나를 저자에게 부담 지울 수 있느냐는 반대 의견을 표명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서는 최종 결론은 나지 않았다. 적어도 의무화는 되지 않을 것 같다.
6) 이번 미팅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이 바로 약탈적 학술지 문제였다. 예를 든 게 참 재미있었는데, The Annals of Internal Medicine 에서 원고를 모집한다는 이메일을 Annals of Internal Medicine 편집장이 받게 되어서 이를 본 회의에 공개하였다. 단 한 단어, The를 붙임으로써 연구자들을 현혹한 것이다. 약탈적 학술지, 가짜 학술지의 문제는 날이 갈수록 수습하기 힘든 수준에 치닫고 있다는 심각성을 회의 참석자 모두가 공감하여, 경각심을 다시금 강조하기 위한 ICMJE 공동 사설을 집단 창작으로 제작하였고, 본 필자도 공저자로 등재되었다. 이는 내년 1월쯤 정식으로 공표될 예정이다.
7) 그밖에 인공 지능을 이용한 논문 작성에 대한 문제, 기후 변화와 탄소 생산의 영향에 대한 문제들을 논의하였다.
참석 소감
학술지 발간과 편집인들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이 된다. 하나는 각종 규정을 잘 지켜서 무사히 발간하는 것 그 자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간행 윤리’다. 결국 이번 미팅도 크게 보면 ‘윤리’와 철학을 다루는 모임이었다. 특징적인 점 하나를 들자면, 편집인의 임무뿐 아니라 저자에게도 윤리적 의무가 있음을 더욱 강조하고, 이를 강화하며 요구하는 문구들이 대폭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학술지 발간이란 편집인만의 업무가 아니고, 논문을 투고하는 저자들의 윤리 의식도 같이 어우러져서 이룩되는 것임을 절감하게 되었고, 이는 국내 저자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ICMJE 회원으로 가입한 첫 해의 미팅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아직 처음이라 많이 배우겠다는 자세로 임했기에 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아쉬웠던 회합이었다. 보다 더 학술지 편집 전반에 대한 관심과 노력의 강화, 그리고 보다 더 적극 동참해야 하겠다는 동기 부여를 강력하게 받았다는 면에서 큰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 ICMJE 란?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 ICMJE)는 의학 저널 편집장들로 구성된 협의회로 매년 회의를 열어 의학 저널에서 학술 연구의 수행, 보고, 편집 및 출판에 대한 권장 사항에 대한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ICMJE 회원으로는 ‘랜싯(The Lancet)’, ‘미국의학협회지(JAMA)’,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등 세계 의학계에서 내로라하는 저명한 저널의 편집장뿐만 아니라 각 대륙마다 대표 회원이 하나씩 가입되어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을 제치고 한국 저널인 JKMS가 꼽혔으며, 아프리카는 에티오피아, 중동은 이란, 남미는 칠레, 오세아니아는 뉴질랜드의 대표 의학 저널 편집장이 회원이다.
ICMJE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의학 논문의 ‘기준’과 ‘윤리’를 정하며, 여기서 정한 기준과 윤리를 전 세계 5500여 의학 저널이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