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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66 December 2024

POM (People of Month)

- 제34회 분쉬의학상 본상 수상 소감

◎ 본상 수상자 : 장진영 교수 (서울의대 외과학)


췌장암/담도암 극복을 위한 여정
‘As an Intermediary Runner in the Long Relay to Conquer Pancreatic Cancer’


근대 한국에 선진 독일 의학을 전파하고, 특히 일반인 환자를 위해 헌신하신 리하르트 분쉬 박사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제정된 국내 최고 권위의 분쉬의학상 본상을 수상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분쉬 박사는 외과의사로서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의 선봉에서 선진 의학을 한국에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저 역시 외과의사로서 그분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한국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 지 생각하며 이상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현재 의정 사태로 매우 어려운 한국의 의료환경 속에서도 분쉬의학상의 심사 및 선정과 관련된 여러 번거로운 일들을 해주신 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님과 심사위원단, 학술진흥위원회 여러분께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본 상의 제정 취지에 따라 34년간 아낌없는 후원을 해 주시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여러분들께도 거듭 감사드립니다.


저는 외과의사입니다. 필수의료의 선봉에 선 외과의사로서 한국에서 사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요즘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췌장/담도암 수술을 장시간 진행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저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가족과, 묵묵히 췌장/담도암의 생존율 향상을 위해 매진하는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된 기쁨에 앞서 그분들께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25여 년 전, 스승이신 김선회 교수님의 권유로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췌장/담도암을 전공하기로 했던 당시를 돌이켜보면, 왜 이리 무모한 도전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췌장암 치료는 매우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유일한 완치법인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15% 남짓에 불과했고, 그 외의 환자들은 전이와 혈관 침습으로 인해 항암치료를 하더라도 대부분 6~9개월 내에 사망했습니다. 수술을 받더라도 많은 환자들이 합병증으로 고통을 받았고 완치율은 불과 13% 정도였습니다. 당시 상당수의 의사들조차 췌장암 진단을 받으면 수술이나 항암치료 대신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고 운명에 따르라고 조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참혹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필요했고, 저는 특히 췌장암 조기 진단과 생존율 향상을 위한 치료법 개선에 매진했습니다. 2000년대 초 국내외 학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발표나 강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췌장 주변의 혈관, 림프절, 신경절을 대동맥 근처까지 벗겨내면서 수술(확대 췌장절제술)을 할 수 있는 가였지만, 이는 서구에서는 합병증이 높아 잘 시행하지 않는 수술법이었습니다. 이에 국내 최초로 췌장암 관련 RCT를 2006년 계획하고 간담췌외과 교수들을 설득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8년 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등록하고, 객관적으로 수술적 기법을 비교한 국제 연구를 통해, 확대절제술이 췌장암 생존율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합병증만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당시 췌장암 수술 후 항암치료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병원에서 시행하지 않았으나, 우리의 연구 결과는 수술 후 항암치료가 생존율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입증하여 지금은 대부분의 병원에서 수술 후 항암치료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근거 기반의 수술(evidence-based surgery)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중요함을 깨닫고 이후에도 여러 RCT를 통해 수술 안전성과 생존율 향상을 위한 연구를 지속했습니다.


저는 외과의사의 본분으로 로봇-복강경 하이브리드 췌장수술을 포함한 다양한 새로운 수술방법을 개발했고, 이를 여러 나라에 보급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구하는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오랜 꿈이어서 과학자로서도 많은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특히 췌장암의 전구병변인 췌장낭종(췌관내유두상점액종 등)의 자연 경과를 밝히고, 진단과 치료법의 표준을 제시한 연구로 2009년부터 한국을 대표해 세계췌장학회 주관의 췌장낭종 치료 가이드라인 제정에 참여했습니다. 올해 출간된 네 번째 개정판에서는 저희 연구가 치료 지침을 변경하는 데 중요한 인용 자료가 되었으며, 그에 따라 진료 가이드라인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또한, 담낭암과 담도암 수술을 포함한 올바른 치료법을 찾기 위한 수많은 국내외 다기관 연구를 주도하였고, 이를 통해 국제 및 국내 치료 지침 제정에 직접 참여하며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함께 대한민국 의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현재 췌장암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여전히 조기 진단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는 췌장암 조기진단을 위한 바이오마커 연구를 10년 넘게 지속해왔고, 최근 소량의 혈액을 이용한 단백체 진단 방법이 마지막 확증 임상시험에서 90% 이상의 진단율을 보여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는 저비용의 검사로 췌장암 스크리닝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외에도 치료 저항성 췌장암의 기전과 관련된 경로를 밝히는 세계 최초의 유전 단백체 정밀 분석 연구를 국책 과제로 시행하여 2023년 Nature Cancer에 출간되어 향후 맞춤형 치료 연구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돌아보면 순탄하지 않은 길이었지만, 췌장암/담도암 환자를 위한 의미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헌신해 주신 많은 동료 선후배 여러분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췌장/담도암 전문가로서 25년을 걸어오며 생존율을 세 배 가까이 향상시켰지만,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많기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스승이신 김선회 교수님의 뒤를 이어 이 길을 걸어오며 췌장암/담도암 극복을 위한 여정에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연구와 치료에 매진하고, 후학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이 길을 잘 달려 나갈 수 있도록 교육에도 더욱 힘쓰겠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구와 진료에 매진하느라 하숙생 같은 삶을 살아온 부족한 남편, 아빠를 이해해준 아내와 아들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저의 선택을 지지해주신 어머님과 장인, 장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젊은의학자상 수상자(기초) : 고준영 이사 (이노크라스)


◎ 젊은의학자상 수상자(임상) : 최기홍 교수 (성균관의대 내과학)


대한의학회(https://www.kams.or.kr)
(06653)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14길 42, 6층/7층 (서초동, 하이앤드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