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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E-NEWSLETTER No.93 APRIL 2018

ISSN 2287-9390 (Online)

대한의학회(Korean Academy of Medical Sciences). The enhancement of medical specialties through education, research and training

통일의학 연구의 미래 - 아직 오지않은 희망을 엿본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분단 환경을 다양한 의학적 연구 주제로 활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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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신 곤
고려의대 내과학

지난 8월호 뉴스레터에서는 대한내분비학회 학술이사의 입장에서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향한 새 지평 -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 R&D'에 대해 얘기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보다 포괄적으로 통일의학 연구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본다. 지금 우리 눈앞에 70년된 중증 환자가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질병 해결의 능력이 없는 비관적인 환자이다. 그런데 최근 조금씩 움직이며 소생의 가능성이 보인다. 좋은 의사라면 그간 환자가 당했을 고통과 아픔을 상상하며 이 환자의 소생과 재활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연구에 대해 감각 있는 학자라면 어떨까? 70년이란 세월이 이 환자에게 야기했을 각종 질병의 양상과 경과에 관심 갖고 중요한 연구 꼭지를 찾아내지 않겠는가?
예상했겠지만 70년된 중증 질환자는 한반도 그 자체이다. 70년의 분단으로 인해 남북한의 보건의료는 제도, 건강문화, 질병관, 의료인력 양성체계 등 여러 측면에서 매우 달라졌다. 따라서 통일의학은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 건강격차의 극복, 의료문화 이질성의 극복, 보건의료 용어의 소통 및 통합 등을 연구의 주제로 삼는다. 한반도 건강공동체의 미래상을 상상하며, 오늘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면적은 22만 km 2에 불과하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전염성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또한 미세먼지나 오염원들은 남북을 가리지 않는다. 한반도는 환경과 기후, 감염병 등이 쉽게 공유될 수 있는 지정학적 구조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남북 한쪽의 문제가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적, 보건의학적 의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북한의 결핵 유병률은 OECD 국가 1위인 우리의 5배로 추산되고 특히 다제내성결핵이 심각하다. 이 문제는 당장은 인도적 차원의 의제로 보이지만 머지않아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이 활발해질 상황에서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북한의 결핵에 관심 가져야 할 이유이다. 사회적 문제의 크기가 클수록 문제 해결에 대한 요구 역시 높아질 것이다. 북한의 결핵에 관심 갖는 연구자들이 많아질수록, 머지않은 미래에 다제내성결핵과 관련된 최고수준의 연구들이 한반도에서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기생충 역시 좋은 연구주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기생충 질환들이 북한에선 창궐하고 있다. 북한의 후진국형 질병 현실이 microbiome, toll-like receptor 등 최신 연구 경향과 만날 때 역설적이게도 자가면역질환 등 선진국형 질환의 해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좋지 못한 위생 환경과 기생충과 같은 질환들이 자가면역질환이나 아토피성 질환들의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가설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성질환의 영역으로 눈을 돌려보자.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한반도는 매우 독특한 코호트다. 유전적으로는 동일하나 70년 이상의 분단을 통해 상당히 다른 환경에 노출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적 동일성을 전제한 환경의 변화가 세대를 넘어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할 수 있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코호트가 한반도다. 갈라파고스라는 고립된 섬이 현대 과학에 엄청난 영감을 주었던 것처럼, 고립되어 있던 북한 주민들과 개방되어 있던 남한 주민들의 비교연구를 남북한의 학자들이 함께 진행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있는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남북한이 동시에 진행하는 미래를 상상을 해보자. 이를 통해 한반도 건강 지도를 그려내고, 환경이 질병의 양상에 미친 영향, 후생유전학 등 관련된 병인, 치료의 있어서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 다양한 연구주제에 대해서 남북한 학자들이 공동연구를 진행한다. 그 결과 전세계에 울림과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념비적 작품들이 한반도에서 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정신건강의학, 사회의학 분야도 중요한 연구 영역이다. 내전으로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70년 이상을 상호간의 증오로 대립해왔던 집단이, 그 갈등구조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사회치유, 정신건강의 역동과 관련된 수많은 학문적 이슈들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전세계적 차원의 사회치유학, 화해학, 평화학의 교과서는 우리가 써야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필자가 생각하는 통일의학의 미래를 연구의 측면에서 다양하게 상상해보았다. 분단이라는 과거의 비극적 유산이 미래의 희망적 자산이 되는 그런 유쾌한 상상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미래의 건강한 한반도를 꿈꾸며 오늘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적다. 그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영역에 비추어 상대적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통일의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소통하는 학자들이 앞으로 많아지길 소망해본다.
필자는 후학들에게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지 말고, 논문을 위한 논문을 쓰지 말라고 강조한다. 단 하나일지라도 세상을 바꾸는 연구, 이웃과 사회에 기여한 논문을 쓰라고 말한다.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꿈꾸는 통일의학은 분명 그런 영역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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