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의학회 March 2014 Vol. 56 :::





대한의학회 제17대 회장을 역임한 지제근 서울의대 명예교수가 11월 26일 오전 11시 타계했다. 고인은 투병 중이었음에도 최근까지 의학회와 관련된 거의 모든 행사에 참여했고 맡은 역할을 수행했다. 11월 19일 개최된 제24회 분쉬의학상 시상식은 분쉬의학상 운영위원장으로서 주관한 이생에서의 마지막 역할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고인은 대한의학회의 중흥을 이끈 고(故) 이문호 명예교수(회장 재임기간: 1972년～1994년)와 비슷하게 분쉬의학상 운영위원장으로서 시상식을 마친 후 타계하였다. 대한의학회 김동익 회장은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하고 “우리나라 의료계와 의학계에 남긴 고인의 큰 발자취는 후학들이 두고 두고 되새겨 볼만한 큰 가르침과 교훈을 남겼다”고 언급하며 “오늘 우리는 의학계의 큰 보배와 참 스승을 잃었다”며 애통해 했다. 고인이 평생에 남긴 업적은 짧은 시간에 정리할 수 없는 방대한 분량이다. 무엇 보다도 고인은 선비다운 인품과 학문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평소 생활 태도와 일치하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존경하는 인물로 기억될 것으로 생각된다.

지제근 명예교수님 靈前에 김동익(대한의학회 회장) 삼가 지제근 명예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무릇 ‘生老病死’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있지만, 아무런 告別의 예고도 없이 황황히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저희들 마음은 그저 虛妄할 뿐입니다. 선생님, 지난 2주 동안은 유난히도 자주 뵐 수 있었습니다. 지난 11일 대한의학회 수련평가센터 개소식에 참석하시어 환한 웃음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축하와 격려해주시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13일 독일대사관 초청모임에서도 식사 전에 떠나시며 양해를 구하셨습니다. 前과 같지 않으신 선생님의 모습에 마음이 조였습니다. 19일 분쉬의학상 시상식에서는 운영위원장으로서 내내 식을 주관하시고, 참석자의 배웅까지 하신 후 귀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입원을 앞두고, 지난 24일 보내주신 메일에서 “20일에는 간곡한 청 때문에 맡기로 한 AAHCI국제회의에서의 기조강연을 건강 때문에 우려하셨는데,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말씀와 함께 대한의학회 임원아카데미를 참석할 수 없어 유감이며, 대한의학회 차기 팀들이 더욱 의학회의 발전에 노력하기를 바란다‘ 하신 말씀이 이제, 저희에게는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내가 많이 아프고 힘이 들어서 참석하기 어렵다.” 하시기보다는, 늘 타인을 배려하시고, 맡은 바 소임은 묵묵히 해오셨습니다. 그저 함께 계신다는 것만으로 저희에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나아갈 방향을 깨달게 하시던 선생님을 이렇게 속절없이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원아카데미가 개최된 그제와 어제는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오늘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땅이 꺼지는 비통함으로 조사를 올립니다. 선생님께서는 병리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항상 열정을 가지고 도전과 개척정신을 몸소 실천해 오셨습니다. 그 어려운 하버드 의과대학의 수련 이후, 더 좋은 환경에서 연구하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진양성을 위해 고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우리나라 신경병리학과 소아병리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신 이야기는 모두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의학용어는 의학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려 어떻게 치료 받는지 알아야 환자들이 치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과학기술용어집, 대한의사협회의학용어집, 그리고 ‘의학용어큰사전’은 이런 정신이 깃든 유산이자, 우리 의학계의 자산입니다. 대한의학회 회장으로 재임하신, 1999년부터 4년간은 의료계의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의약분업이라는 혼란과 위기 속, 모두가 마다하던, 2000년 전국의사집회의 선두에 서서 의료계의 아픔에 동참하는 리더쉽을 보여주셨습니다. 반면에 대한의학회의 중흥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학회 임원아카데미’와 ‘세부전문의제도’를 시작하셨고, 한국의학학술지 인용정보의 발간, 재단법인 한국의학학술지원재단의 설립 등 의학회의 발전의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2004년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초대회장으로 의학분야의 석학들과 함께 우리나라 의학의 발전과 선진화를 이루셨습니다. 201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2014년 대한의학회 의학공헌상 수상은 선생님께서 평생을 실천해 온 신념에 대한 국가와 의학계의 아주 작은 보답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봉사자요, 우리 모두의 변함없는 멘토이자, 의학계의 큰 별이셨습니다. 앞으로 어려움이 다가올 때마다, 선생님의 살아오신 일생을 돌이켜보고, 지향해 오신 정신과 가르치심을 되새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근에서 뵐 수 있었던 선생님과는 이별할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힘든 삶에서 이젠 편히 쉬게 해드려야 할 시간입니다. 그 누구의 시처럼 “아아! 님은 떠나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떠나시지만,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젠, 무거운 짐을 이젠 훌훌 벗어 놓으시고, 부디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2014.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