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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출제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고되고 힘이 든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답안을 갖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교과서에도 해당 의학 분야에서 100% 확실하다고 적시한 문장은 없다. 최근의 추세대로 단순 암기형이 아닌 임상 상황의 문제 해결형이나 판단형의 문제를 만들되 아무 시시비비 거리가 없는 완벽한 문제를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고시 위원으로 한가지 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신 분보다는 폭넓은 사고와 다양한 임상경험을 갖고 무엇보다도 여러 가지 지식을 통합할 줄 아는 분이 선택되는 것이 좋다. 실제로 유명대학의 명망 있는 교수님들도 고시위원으로 들어와서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한 두 해 고시 업무를 하신 후에는 다신 들어오지 않는 분들도 있다. 고시위원들에게는 한정된 짧은 기간 동안 집중해서 작업을 해야 하므로 지구력과 체력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이다.
최근에는 과거의 산만하고 복잡한 고시 문항은 원천적으로 거부된다. 한 문제에는 한 가지 주제만을 물어야 하고,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문항이 구성되어야 한다. 답가지도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하고 길이나 어떤 원칙으로 가지런히 정렬되어야 한다. 문제 안에서 혹은 문제 간에 정답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들어가서도 안 된다. 논리적으로 문항을 해석하여 답을 유추할 수 있는 문제도 거부된다. 임상 상황에서는 가장 가능한 선택을 하는 것이므로 아닌 것을 묻는 부정문에 의한 문항도 제외된다. ‘반드시’, ‘거의’, ‘대부분’, ‘항상’과 같은 애매한 용어는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답가지의 조합으로 정답을 맞히는 문제는 이제 퇴출되었고, 답가지를 가려도 답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는 상태에서 답가지를 보면 확연한 정답이 있는 문제, 즉 5개의 답가지에서 한가지를 고르는 문제 형식이 전문의자격시험의 주된 문항 형태이다. 또한 어떤 임상 상황이 주어지고 최소 8개 이상의 답가지에서 가능한 정답을 모두 고르는 형태의 R형 문제가 일정 비율로 출제되기 시작했다. 주관식의 경우 의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채점이 가능한 단답형이나 혹은 채점 기준이 명확해서 누구나 채점이 가능한 문제만이 출제된다. 그러므로 이런 문항 개발의 경험이 없는 출제위원들은 처음에 큰 곤란을 겪는다. 출제 원칙과 문항 개발에 대한 교육이 있으나 촉박한 시간과 낮은 호응으로 실효성의 의문이 있다.

한편 이러한 고시 출제 방식이 과연 가장 최선인가 하는 고민은 남는다. 전문의 자격을 얻으려면 임상기술자만이 아니라 자기 분야의 의학에 대해 포괄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연구자적인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전문가라야 하고 이런 검증을 하려면 서술형의 주관식 문제를 출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수련 과정과 2차 시험에서 이런 면이 보충될 것이다. 필기시험으로 전문가를 다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의 한계도 분명하다.

전문의자격시험 출제 이후 사후 관리의 문제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각 문항별로 난이도와 변별력을 측정하여 출제자에게 피드백을 주고 전문의자격시험 전체를 관장하는 책임자에게 이번 전문의자격시험 전체의 상황을 파악하게 하여 적절한 정도의 난이도와 변별력을 유지하도록 사후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겠다. 의협 차원에서 전문의자격시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하여 우수한 科에는 장려를 위한 보상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객관적인 평가와 전문의자격시험 자료의 축적을 위해서 이미 일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산화 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덧붙여 세계적 수준을 유지하려면 선진국의 전문의자격시험 관리와 출제 경향에 대해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이를 어떻게 우리에게 적절하게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연구를 해야 할 필요성도 느낀다.

과거 전문의자격시험 출제 들어가서 놀다 왔다는 일부 과의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촉박한 시간에 맞춰 문제를 선택하고 다듬고 작년 수험생이 들어와서 시험을 평가하고 다시 토의하고 난이도를 조정하고 인쇄, 그 다음 다시 검수하는 과정이 쉴 틈 없이 돌아간다. 그 동안 바쁜 시간을 쪼개어 고시위원으로 들어와 후학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고시위원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이 글의 일부 내용은 전문의고시 지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