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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84 July 2026

의료와 인문

◎ 의사조력임종에 대한 관심과 우리 사회 죽음 -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을 펴내고.

최 은 경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사조력임종’이 우리 주변에 성큼 다가왔다. ‘은중과 상연’ 같이 스위스로 조력자살을 받으러 떠나는 내용의 드라마의 상영, 80퍼센트라는 조력임종 찬성 여론조사 결과, ‘조력존엄사법’이라는 이름의 법안도 발의되었다. 스위스로 가서 조력임종을 받는 방법을 문의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입법된 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 의사조력임종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어느덧 낯설지 않다.

필자는 의료윤리를 전공하고 주변 동료들과 함께 말기돌봄 현장에 관한 고민을 천천히 숙성시켜 가던 차, 조력존엄사법의 발의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말기 상황에서의 자기결정권도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현실에서 조력존엄사 논의가 등장한 것이 뜬금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재의 논의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부모님을 힘겹게 떠나보낸 주변의 지인들 역시 조력존엄사를 진지하게 희망하고 있었다. 조력존엄사에 대한 열망을 일단 인정하되, 그것이 실제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살펴볼 필요성을 느꼈다. 그것이 주변 동료들과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을 펴낸 동기가 되었다.

첫째로, 용어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존엄한 죽음은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법안명에서 드러나듯 의사조력사망을 ‘조력존엄사’라고 통칭하는 것은 그 행위의 성격을 드러내지 않고 가치로 가릴 위험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연명의료 결정 입법 과정에서는 의사조력자살이나 적극적 안락사를 ‘안락사’로, 연명의료중단을 ‘존엄사’로 구분했었지만 이제는 의사조력자살이나 적극적 안락사 쪽을 오히려 ‘존엄사’로 프레이밍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다 객관적인 명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연명의료결정이라는 행위 자체가 입법의 대상으로 삼았듯, 사망을 돕는 조력 행위 자체를 명칭에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해외에서 의료조력임종(Medical aid in Dying)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추세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아닌 의료인이 임종을 조력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하여, 저자들의 합의를 거쳐 의사조력임종이라고 명명했다. 여기에는 이 결정의 주체가 환자 만이 아니라 의사여야 한다는 인식이 담겨있다.

둘째로, 우리나라 말기 돌봄의 현실을 짚을 필요가 있었다. 전 인구의 75% 가까이가 병원에서 사망하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임종을 맞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여도 그것이 적용되는 시기는 임종기임이 누가 보아도 분명한 시점에 불과하다. 말기 때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연간 만성질환으로 사망하는 20만명 중 완화의료 이용자는 24,318명에 그치며 비암환자 이용자는 연간 10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부 암환자를 제외하고는 완화의료는 사실상 선택지가 아닌 셈이다. ‘간병 살인’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일부 장기요양서비스를 제외하고는 간병 돌봄은 개인의 독박 노동과 과중한 비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요양병원과 대형병원 응급실을 오가다 하면서 사망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 죽음의 현실이다. 이러한 재난 같은 상황을 목도하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깨끗한 죽음으로서 조력사망을 희구하게 된 것이 아닌지 살펴보고 싶었다.

셋째로, 조력임종에서 자기결정권은 매우 중요한 가치임을 인정하면서도, 도덕적 주체로서의 의사에 대한 신뢰가 함께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었다. 조력임종은 현재의 고통을 죽음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 의료인의 도움을 구하는 행위이다. 그러한 삶을 종결하고 싶다는 바램이 분명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의사 역시 그 바램이 합리적임을 인정하고 환자에 대한 연민에 근거하여 행위에 동참해야 한다. 의사조력임종을 합법화한 다른 나라에서는 남몰래 혹은 앞장서서 환자의 임종을 도운 의사들이 쟁점을 이끌었다. 네덜란드에서 최초의 안락사 관련 중요한 판결을 이끈 포스트마 사건은 의사 딸이 자신의 어머니의 임종을 조력한 사건이었다. 일부 의사들은 형벌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연민에 근거한 조력 행위를 하였고, 대중들의 동정과 지지를 받았다. 물론 아직도 많은 국가에서 의사회는 대체로 조력임종을 찬성하지 않는다. 의료의 목적이 환자를 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죽임을 만드는 것도 포함되는지 입장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의사조력임종을 논의함에 있어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반 대중과 환자들의 열망 이면에서 의사들이 어떤 도덕적 주체로 호명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책을 출판한 후 흥미로운 반응들을 많이 받았다. 의외로 주변 의사들로부터 책을 읽고 나서야 조력임종과 연명의료중단을 처음으로 구분했다는 소감을 들었다. 말기에 생을 연장하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의료적 조치 역시 조력임종이 아니냐는 질문도 받았다. 개념의 혼동은 현재 의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무엇인지, 무엇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지에 관한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선 좋은 죽음을 돕는 것과 죽음을 유발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교육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죽음이 의료의 실패가 아니며, 좋은 죽음을 돕는 것 역시 중요한 의료의 목적이라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되도록 많은 환자들을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의료의 목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때로는 완전한 건강이 불가능하고 질병의 고통이 엄연히 존재하더라도 할 수 있는 지지와 돌봄을 제공하는 것도, 그리고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생을 연장하는 것이 고통만을 더할 것으로 예상될 때 좋은 죽음을 돕는 것도 의료의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죽을 권리’에 대한 열망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답게 살 권리의 다른 말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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