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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84 July 2026

학술대회특집

◎ 의민정(醫民政) 위원회 설립을 제안

송 호 근한림대학교 석좌교수

지난 6월 12일 플렌티컨벤션에서 개최된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의 분위기는 진지했다. 의정 갈등의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있는 데다 핵심 쟁점이었던 의사 정원 문제가 ‘공공의대 600여 명 증원’으로 후딱 봉합되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무력감이나 낭패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필자도 공공의대 설립에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의료계와의 진지한 논의 없이 결정된 것에 적잖이 당혹스럽다. 당일 발제는 주로 의정 갈등을 푸는 방안에 대한 모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의정 갈등은 의대 교수 위상과 의료현장, 종합병원 재정에 심각한 상처를 냈는데도 문제를 일으켰던 정권은 무너졌고 치유의 책임은 결국 의료인들에게 전가됐으니 낭패감이 오죽했을까.

필자가 소속된 일송재단 산하 성심병원은 의정 갈등 1년 동안 거의 2~3천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전공의 이탈이 현장 인력의 부족을 초래했고 그것이 환자 진료의 급감으로 이어졌다. 적자 상태를 회복하는 데에만 거의 일 년 세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전공의가 배출되는 올 9월부터는 인력의 재조정으로 한동안 몸살을 앓을 것이다. 춘천 성심병원 병원장은 의정 갈등이 한창 진행되는 기간에 당직과 숙직을 번갈아 섰다고 했다. 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AI 기반 서비스의 개발 역시 한참 늦춰진 것은 물론이다. AI 기반 서비스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므로 일반인들은 의정 갈등이 초래한 비용에 그다지 민감하지 못하다. 아무튼, 가시적, 비가시적 비용을 모두 포함하면 의정 갈등이 초래한 비용은 너무나 엄청난데 결국은 의료계가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국민은 드물다.

의정 갈등은 고질적 병폐다. 그러나 쟁점이 발화되면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봉합으로 끝나는 패턴이 반복된다. 의료서비스를 둘러싸고 정권과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의정 대립에서 의료계가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고, 역으로 정권의 승리는 보장돼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어느 국가든 정치권의 목적은 하나로 수렴된다. 의료비 절감, 이 점에서 정치권과 의료계의 이해관계는 충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충돌의 형태와 해결 방식이 다르다. 충돌의 비용과 상처를 최소화하고, 의료계에 대한 존경심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적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선진국들의 공통된 양식이다. 의료체제가 그렇게 설계돼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한국은 정치권의 목적을 위해 의료계를 압박하는 행위 양식이 일반적이다. 정치권이 개과천선한다면 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필자의 답은 ‘천만에’다. 의료체제가 그렇게 설계돼 있다. 한국의 의료는 혼합형 체제(mixed regime)로서 세계에서 보기 드문 유형이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혼합형이란 무엇인가? 의료서비스의 공급과 수요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보면 된다. 의료서비스의 공급은 98%가 민간이고, 공공의료는 2% 정도에 불과하다. 의료 설비, 장비, 인력 고용, 건물 확보에 순수 민간 자본이 투입된다. 병의원을 새로 개설하는 데에 정부가 지원금을 줬다는 얘기는 들은 바가 없다. 심지어는 의료인의 양성도 민간이 담당한다. 정부가 의료인 양성에 특별 교부금이나 지원금을 투입하지 않는다. 그런데 수요자(환자)는 지정된 가격으로 서비스를 산다. 수요자는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기에 급여 종목은 무료, 비급여 종목은 비용을 지불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주로 급여 종목 중 과다/허위 청구를 골라내서 병의원에 대한 지급 비용을 낮추는 것이 주 임무다. 보통 청구서의 100%를 지급받는 병의원은 드물다. 말하자면, 비용 절감을 위해 민간 자본과 의술에 대한 공적 통제, 즉 ‘관료제적 통제’가 이뤄진다. 모든 의사의 노동비용은 정찰제다. 필자가 가끔 우스갯소리로 말하는데, 서울대 의대를 나왔건, 울릉도 의대(있다면)를 나왔건 의사의 노동비용은 동일하다. 서울대라고 더 비싸게 팔지 못한다. 지정 가격제다. 그래서 소득을 올리려면 환자를 더 많이 받고,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그것도 비급여 종목에 치중하면 된다. 비급여 종목이 많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로 의사들이 몰리는 이유다. 가격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런 체제에서 정권 교체기에 의정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모든 정권은 국민들에게 의료복지 증대를 약속한다. 의료복지와 무상 복지는 지지율과 직결되고, 심지어는 매표(買票)의 중요한 통로다. 이른바 복지국가 만들기에서 의료복지는 가장 매력적인 상품이다. 고령층이 늘어나도 의정 갈등은 악화된다. 고령자 복지 중에 의료복지가 으뜸이다. 의료 기술 발전으로 인해 각종 첨단 기기가 도입돼도 갈등이 증폭된다. MRI, CT 장비는 억대에 이르는데 구입 비용은 모두 민간 몫이다. 민간이 지불한 의료기기에 가해지는 공적 가격 통제는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 그러나 의료의 공공성에 매진하는 한국에서는 그게 일상적이다. 최근 각광받는 중립자 치료기에는 아직 가격 통제가 없지만, 이용자 수가 늘어날수록 서서히 통제 움직임이 꿈틀댈 것이다.

문제는 이런 모순에 대해 의료계가 항의하고 반발해도 일반인들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거의 무시하는 수준이랄까, 아니면 정부가 알아서 해줄 것으로 믿기 때문일까. 의사의 목소리는 사회적 반향이 없다. 한국만큼 의사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은 의료계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사회집단이 거의 없어서 문제가 발생하면 홀로 풀어나가야 하는 소외된 상황을 뜻한다. 의사의 호소를 들어 주지 않는다. 의사는 학식이 높고 소득이 높은 부유층이기에 혜택을 늘려줄 필요가 없고 사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필자가 의사들을 여럿 만나본 경험으로는, 명의(名醫)일수록 사회적 지식이 얕은 경향이 발견된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을 쌓느라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던 거다. 사회적 변화를 두루 관찰하는 의사가 의과학과 의술 속으로 깊이 망명할 수 있을까. 역으로, 사회적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필자는 의과학에 문외한이다.

아무튼, 한국인들은 의사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의사 집단의 절규를 외면한다. 의사는 사회적 고립 속에 갇혀 있다.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이 아파 병원에 가면 의사는 항상 대기해야 하고, 친절하게 맞아 줘야 하며, 최고의 의술을 자신에게 발휘해야 한다고. 불친절을 못 참고, 혹시 진료와 시술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판단하면 즉시 고발할 것을 결단한다. 물론 실행에 옮기는 것은 별도의 문제지만, 의료 행위는 항상 고발, 고소의 대상이 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의사는 항상 그곳에 있어야 하고, 항상 좋은 의술을 행하고, 항상 낙관적인 희망을 품게 해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 수준은 지극히 높은 반면, 그에 응당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으려 한다. 비유하자면 공짜 설교를 듣고 마음의 치유를 얻고 싶은 것이다. 한국에서 의사는 목회자와 같다. 신도들은 저비용, 저수가, 저부담의 낙원에 몸담은 채로 말이다. 한국인의 이런 심성을 ‘의사(疑似) 사회주의’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고립적 의료 환경에 처해 있는 의료계가 다른 영역과는 달리 내부 분열을 심각하게 앓고 있는 것은 조금 특이하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계 내부에는 학력, 전공 영역, 출신, 취업 유형과 개업 지역에 따른 내부 편차가 다양하다. 개업의보다는 대학병원의 교수와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봉직의가 사회적 위신(social prestige)이 더 높다. 그렇다고 신망이 더 큰 것은 아니지만 의료계 내부에 존재하는 차별 요인과 분절성은 매우 다층적이다. 이 다층적 분절이 내부 소통과 협력 행위를 방해한다. 그리하여 의정 갈등이 발생했을 때 협업이 어렵고 집단 의견을 좀처럼 도출해 내지 못한다. 의료계의 내부 분열은 결국 정치권의 독주에 대항하는 의료계의 단결력을 산산이 조각내는 부정적 요인이다.

외적으로는 사회적 고립, 내적으로는 분열로 갈라진 의료계가 앞에서 서술한 혼합형 의료체제의 모순을 치유하고 국민이 바라는 바 공공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살려 나갈 수 있을까. 답은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의료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이 모두 이 길로 나설 수는 없다. ‘의민정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구성해야 할 필연적 이유다. 의료복지가 지금도 그렇지만 향후 국민이 가장 희망하는 복지상품이고, 한국의 의료체제를 비용과 효율성 양면에서 가장 탁월한 제도로 가꿔 나가려면 대통령이 직접 관할하는 최상위 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마치 노사정위원회가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위원회인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의사, 국민, 정치권(관료)의 대표가 참여하는 ‘의민정위원회’를 대통령령에 근거해 개설하고, 의료 쟁점의 해결과 한국 의료체제의 발전에 필수적 개혁 조치들을 다뤄나가는 최상위 기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계가 직면한 고립과 분열을 상생과 협력으로 바꿔 나가는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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