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명 구식품의약안전처 의약품부작용심의위원장
약물 부작용(약물 이상반응)은 적절한 용법과 용량에 따라 정상적으로 사용된 경우에도 확률적으로 발생할 수 있으며, 때로는 예기치 못한 중증 이상반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은 질병 치료에 있어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약물 사용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 장애 또는 질병 피해를 입은 환자와 유족에게 사망일시보상금, 장례비, 장애일시보상금 및 진료비를 지급하는 피해구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안전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제도는 환자뿐 아니라 의료현장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약물 부작용은 치료 경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환자-의사 간 신뢰를 저해하고, 나아가 의료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공정하고 체계적인 피해구제 제도의 존재는 이러한 갈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2025년 말까지 총 1,740건의 피해구제 신청 중 1,266건에 대해 보상금이 지급되었으며, 주요 원인 약제로는 항생제, 진통제, 항경련제, 항결핵제, 통풍치료제 등이 보고되고 있다.
의약품 피해구제 제도의 운영을 위해 여러 직역이 참여하는 의약품부작용 심의위원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개별 사례의 인과성을 평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통풍 치료제인 알로퓨리놀과 관련된 중증 피부 약물이상반응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었으며, 해당 이상반응은 HLA-B*58:01 유전자와 강한 연관성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임상 현장에서는 검사 비용이 비급여라는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약제 투여 전 선별검사가 충분히 시행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관계 부처 간 협력을 통해 해당 검사의 급여 적용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고위험군 환자에서 중증 약물이상반응을 예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된다. 참고로 한국인에서 HLA-B*58:01 보인자 빈도는 약 10–15% 수준으로 보고되고 있다.
의약품부작용 심의위원회에서 인과성 평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다양한 임상적·사회적 맥락을 지닌 사례들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가 공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판단과 함께 균형 잡힌 시각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도에 대한 인지 부족으로 인해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약물 부작용 발생 시 자체적으로 환자와 합의하고 보상을 지급하는 사례가 관찰된다. 이는 약물의 본질적 특성에 기인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과도한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약품 피해구제 제도가 본래의 취지에 맞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진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의료진은 공정한 보상을 위한 ‘임상적 근거의 제공자’이자, 동일한 부작용의 재발을 방지하는 ‘예방자’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 대해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대한의학회 E-NEWSLETTER No. 180, March 2026). 그러나 제도 시행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의료진 대상 홍보와 교육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발전 5개년 중장기 계획’을 추진 중인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향후에는 현장의 의견을 적극 반영함과 동시에, 전문 학회 및 필수교육 프로그램 등을 활용한 체계적인 홍보와 교육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상호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구축할 때, 환자와 의사 간 신뢰는 더욱 공고해지고, 궁극적으로는 보다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본 제도가 의미 있는 기여를 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