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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62 July 2024

학술대회특집(1)

2024 대한의학회 학술대회가 “소통과 공감 그리고 한 마음으로”를 슬로건으로 지난 6월 14일 개최 되었다. 의료계의 한목소리가 더욱 중요해진 시기인 만큼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주요 의료 정책을 여러 단체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과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에 학술대회에서 반응이 좋았던 주요 강의를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에서 다루고자 한다.

◎ [기조강연] 의대 증원, '통계라는 거짓말'을 이용한 의료 농단

성 원 용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지난 2월 이후로 한국 사회, 특히 의료계는 극심한 혼란 상태이다.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들은 학교에 안 나가고, 대학 병원의 교수들은 심각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 병원이 아니면 치료를 못 받는 중환자들은 큰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의사 양성에 10년 이상이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이 혼란을 지금 감내할 이유가 없음은 물론, 의대 증원의 추진과정을 보면 사실에 기반한 합리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영국의 정치인이자 작가인 벤자민 디즈레일리의 말로 알려진 격언에 따르면, 세상에는 세가지 거짓말이 있는데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가장 위험한 '통계라는 거짓말'이다. 정부 의사 부족의 이유를 잘 뜯어보면 가장 심각한 거짓말인 통계를 이용한 농단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인구추계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8 미만이다. 그러나 통계청의 미래 인구추계는 중위값으로 출산율 1.02, 저위값으로 0.82를 사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인용한 의사 부족의 연구들은 대부분 이 중 현실과 동떨어진 중위값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2050년 인구 예측에서 약 500만 명의 차이가 발생하며, 이는 필요 의사 수를 1만 명이나 과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두 번째로 충격적인 것은, 노인이 증가하니까 의료수요도 늘어난다는 점은 강조가 되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의료수요를 낮출 수 있음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철희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 재학 또는 졸업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보다 병원을 덜 찾는 경향이 있다. 현재 노인이 되는 세대의 학력이 이전 세대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로 인해 약 6,000 여명의 의사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정보는 보건복지부의 발표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세 번째로 의사 수 부족을 주장하는 또 다른 논리는 OECD 평균과의 비교이다. 하지만 이 역시 편향된 시각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병원 방문 횟수가 OECD 평균의 2배 이상이고 또한 병원 시설 비슷하게 과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의사 수만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통계를 인용할 때는 모든 측면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치만을 선별적으로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네 번째로 현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재정적 측면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점이다. 2050년까지 근로연령 인구는 현재의 3,600만 명에서 2,300만 명으로 급감할 전망이다. 반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두 배로 증가한다. 현재 65세 이상의 노인은 2022년 기준 월 약 4만 2천원을 건강보험료로 지불하고 약 29만원 이상을 사용한다. 젊은 근로자들이 건보료를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내기 때문에 현재의 건보 시스템이 운영이 된다. 그런데 미래에 노인은 늘고 젊은 근로자 숫자가 줄어들면 근로자의 보험료를 두 배 가까이 인상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미 필수의료 분야에서 적정 수가를 지불하지 못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 수와 의료 시설을 무분별하게 늘리면 건강보험 적자는 더욱 심각해지고 필수의료 서비스의 질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이러한 통계 조작 외에도 의대증원은 우리나라의 산업의 경쟁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의대 증원 2,000명은 서울대, KAIST, 포스텍, 고려대학교의 공대 정원을 합친 숫자와 맞먹는다. 이는 이미 저출산의 여파로 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공계 학과들의 존립을 더욱 위협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구 대국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산업이 겪는 상황은 한국전쟁 때 장진호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포위된 상황과 비슷한데, 산업 일군을 보충하기는커녕 빼가기에 골몰하는 정부의 판단력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밖에도 이러한 농단이 정치인뿐만 아니라, 법원, 대학 총장, 언론 등 선진 사회의 가버넌스(governance)를 지탱하는 집단의 협조 내지 묵인 하에 추진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과연 선진국인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요셉에게 '일곱 마리의 마른 암소가 일곱 마리의 살찐 암소를 잡아먹는 꿈'의 해몽을 요청하는 잘 알려진 성경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30년간 노인 인구는 늘고 젊은 인구는 줄기 때문에 연금은 물론 건강보험 등 모든 면에서 엄청난 재정적 문제에 직면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의료낭비를 줄이고 필수의료 등의 서비스에 집중하고 산업 경쟁력 향상에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초저출산 상황에서 지금은 한의대와 치대 등의 정원을 줄이고, 의대의 경우에도 증원이 아니라 감원 시점을 의논할 때이다. 그리고 국민에게는 꼭 필요할 때 병원에 가고 재정을 아껴야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의대증원은 국민들에게 정반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 정부가 국민적 합의 없이 의대 증원을 졸속으로 강행하는 이유는 데이터의 일방적 해석 등의 문제점들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엉터리 통계, 건강보험료 폭등, 산업 경쟁력 약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은폐한 채 추진되는 이 정책은 '의료 개혁'이 아닌 '의료 농단'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지금이라도 의대증원 계획을 백지화시키고, 국민을 속인 관련 공무원들을 중징계하며,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병원과 학교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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