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석 훈강원의대 의학교육학교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하며 “환자가 골든타임 내, 거주·소재지 인근에서, 24시간·365일 필수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체계”를 주요 골자로 하는 ‘지역완결적필수의료’라는 개념을 제안하였다. 이는 단순히 필수의료를 제공한다는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최종 치료’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진 정책으로 현재 지역 내 의료기관의 기능과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는 도저히 달성할 수는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는 10월에 들어서야 후속 조치로서 국립대병원을 필수의료 전달체계의 중심으로 육성하기로 하고 소관을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변경하였다. 또한 국립대병원 등이 지역 필수의료 자원관리, 공급망 총괄, 각종 필수의료 지원사업 및 기관에 대한 성과평가 등을 주도하고 권역 책임의료기관으로서 권한과 책임을 강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노력만으로 정부가 추구하는 ‘지역 완결적 필수의료’가 완성될 수 있을까? 정부의 바램대로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보건소 협력 모델이 쉽사리 수립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지역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AI가 아닌 이상 혹은 모두가 나이팅게일과 같은 이타적인 인간이 아닌 이상 정부의 바람대로 쉽게 움직여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준비한 정책입안자들은 의사들도 인간이고 또 인간이기에 이기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놓치고 있다. 훌륭한 정책을 만들어 놓고도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화룡점정의 해결책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바로 공중보건의사(이후 공보의)를 지역환자안전망의 인적구성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공보의 제도는 농촌지역 의료기관 이용자가 증가하는데 비해 일차진료를 담당할 의료인력이 부족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써 1979년부터 실시되었다. 2023년 8월 기준으로 1,434명의 공보의가 있으며 이중 전문의가 30.5%, 인턴수료자가 26.1% 인데 비해 의과대학만 졸업한 의사는 43.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당장 지역환자안전망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비록 2009년부터 의사국가고시에 실기시험이 도입되면서 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의사들의 진료능력이 과거에 비해 향상되었다는 보고가 있지만 이들이 전문의 수준의 진료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보건지소 공보의들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공보의는 보건지소에 배치되어 ‘억지 진료를 강요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농촌노인의 의료복지서비스 이용 실태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일상생활 활동장애가 있을 수록 보건지소보다는 병의원을 더 선호하였는데 이 역시 공보의의 진료능력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기대치가 낮다는 점을 시사한다. 비록 정부는 공보의의 진료능력 향상을 돕기 위해 1년의 범위에서 전공의 수련을 법적으로 보장해주고는 있지만 전공의 수련 기간이 의무복무기간에 산입이 되지 않는 이유로 실제로는 공보의 중에서 전공의를 지원하는 경우가 전무한 상태이다.
그런데 때마침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대한 규정’에는 가정의학과의 경우 인턴과정 없이 레지던트 3년으로 전문의를 취득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따라서 몇 가지 법률과 시행규칙을 보완하면 공보의의 43.4%에 해당하는 의사들이 지역거점 국립대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가정의학과 1년 차 때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신경과, 응급의학과의 입원환자 중심으로 주치의 스케줄을, 2년 차 때 안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의 외래 파견 형태의 스케줄을, 3년차 때 보건지소, 보건소, 지역의료원, 권역응급센터 파견 형태의 스케줄을 계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은 국립대병원과 공보의 양측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우선 전공의 충원율이 50%도 안 되는 국립대병원의 경우 필수의료 주치의 역할을 담당할 1년차 전공의 확보로 입원환자의 안전이 향상될 수 있다. 특히 전공의 부족으로 몇 년째 직접 당직을 서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교수들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공보의 입장에서도 복합질병을 앓고 있는 입원환자에 대한 임상경험치를 획득한 뒤에 보건지소에서 근무를 하게 됨에 따라 최소한 ‘능력치를 넘어서는 억지 진료를 강요받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며 군복무 해제시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 취득을 통해 3년이라는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게 된다. 보건지소 진료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지역 환자안전망이 더욱 공고히 다져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마지막으로 공중보건지소가 일차의료 교육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된 작금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서 지역사회 병의원들은 생존을 위해 비보험진료를 포함해 다양한 모습의 진료 행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환자들도 학생들의 진료 참관을 탐탁지 않게 볼 수 있다. 지역사회 병의원들은 의대생들이 일차의료를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임상실습 장소는 아닌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일차의료에 대한 교육은 이론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짙으며 본과 3,4학년의 임상실습교육은 교육병원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충분한 임상수련을 받은 고년차 가정의학과 전공의가 공중보건지소에 근무하게 된다면 해당 보건지소는 의대생들이 일차의료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공보의를 활용한 지역 환자안전망 확립은 획기적인 정책 제안도 아니고 공공의대 설립과 같은 대규모의 예산 투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농촌 지역사회의 의료취약지 개선과 수년 째 전공의 미달로 신음하고 있는 국립대병원에 대한 진지한 고민만 있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다면 몇 가지 법률, 시행령을 고치고 대한의학회의 전문학회의 협조만 필요할 뿐이다. 심지어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가 3년 제로 변모하면서 공보의의 26.1%에 해당하는 인턴수료자들에게도 문호가 개방 될 수 있는 확장성도 갖추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부는 농어촌 의료취약지역을 개선하려는 의도로 ‘공공의대설립’, ‘의과대학 정원 확대’ ‘필수의료 체계 도입’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의료계는 단순히 정부 시책에 반대만을 해왔을 뿐 의료취약지역 개선을 위한 주도적인 제안을 표명한 적이 없다. 국민들도 이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의료계가 국민 건강을 수호하는 집단으로서 의료취약지역 개선에 대한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인지? 지역 이기주의와 포플리즘에 영합하는 정책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에게 등 떠밀려 의료취약지역에 내몰리게 될 것인지? 부디 우리 의료계가 전자의 선택을 하길 간절히 기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