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창 수고려의대 정신건강의학, 정신건강연구소장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말은 메타(meta: 초월, 가상)라는 단어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신조어이다. 닐 스티븐슨의 1992년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아바타(Avatar)라는 용어와 함께 등장했는데, 스마트폰, 인터넷을 통해 경험하는 새로운 세상, 디지털 속의 사회를 의미한다. 현실을 초월한 3차원의 가상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좀 더 전문적인 정의를 해 보면 증강현실과 데이터, 네트워크,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가상공간에 몰입하고, 상호작용을 하며, 모든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사이버 세계라 할 수 있다.
MZ세대로 시작하는 젊은 연령층에서 메타버스에 몰입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이들은 일단 젊어서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터넷과 신기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 MZ세대는 현실에서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직업적 성공을 하는게 어려워지니까, 가상현실 속에 내 집을 짓거나 투자를 하고, 성주나 유명 인물이 되는 걸 선택하는 거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실제 Earth2 라는 메타버스에서는 오프라인과 똑같은 뉴욕, 강남 등의 땅을 가상현실 속에 돈을 주고 살 수도 있다고 하니까, 현실 세계와 점점 구분이 어려워진다.
메타버스는 “부캐(부 캐릭터)”의 세상이기도 하다. 아바타로 살면서 외모, 목소리, 성별, 나이, 재산, 신분을 모두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영화 ‘조작된 도시’의 게임 속 권대장처럼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
이렇게 오프라인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거나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심리적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느끼는 질투나 부러움 등을 상쇄하는 효과도 있다. 앞으로 메타버스가 좀 더 현실에 가까워지고, 몰입을 더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그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정신건강의 측면에서 보면 메타버스엔 장점과 함께 단점도 존재한다.
스포트라이트 효과라는 것이 있다. 무대에서 주인공한테만 밝은 조명을 비추고 연기하는 것처럼, 내가 보여주고 말하는 것을 다수의 사람들이 다 이해할 거라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착각을 말한다. 즉,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남들이 실제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현실에서나 가상현실이나 나한테 관심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메타버스에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내가 원하는 만큼만 보여줄 수 있고, 자기중심성 때문에 내가 알고 느끼는걸, 남들도 나만큼 이해할 거라 생각하는 경향도 생길 수 있다. 이메일의 경우도 보낸 사람은 받은 사람의 90%가 올바르게 의도를 알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메일을 받은 사람 중 메시지를 올바르게 파악한 사람은 50%에 그친다고 하니, 메타버스 세계에서는 더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내 맘대로 내 편이라 믿었다가 심각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온라인상의 싸움을 벌이거나 심하면 현실속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메타버스 세계는 초점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예쁘고 좋은 것만 선별해서 보여주니까, 타인의 행복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을 비하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페이스북 활용 빈도가 높은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미시건 대학의 연구도 있다. 메타버스 속의 인간은 자신의 행복은 금방 무시하고, 타인의 행복을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어서 SNS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우울증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2배 이상 높다는 보고도 있다.
물론 메타버스로 이어진 세상이 가지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다수에 의한 다수에 대한 관심을 보여줄 수 있다. 많은 이들의 자유로운 감정표출을 하는 공간의 역할과 동시에 다수에게 조언과 위로를 받는 연결성 증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잘만 이용한다면 외롭게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연결성을 증가시키는 보조도구로서 아주 훌륭한 기능을 할 것이다.
이모티콘 같은 단순한 방법으로 감정표출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긍정적 측면이다. 이걸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버드대학교 엘튼 메이요(Elton Mayo)교수 연구팀이 일리노이주 호손윅스 라는 이름의 공장 근로자들의 생산성에 대한 실험을 했는데, 정작 적용했던 기법은 생산성에 영향을 주지 않았는데, 2년간 꾸준히 노동자들을 면담한 것 자체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때 근로자들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분출함으로써 스트레스 해소와 더불어 그들이 관심받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감정 표출은 심리적 균형을 이루는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어떤 기업에서는 “화풀이하는 방”을 만들어 놓고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돕는 곳도 있다고 하니까, 메타버스 안에도 이런 공간 하나쯤은 만들어 놓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선 선정성이나 폭력성 같은 자극에 둔감해질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은 현실의 폭력과 죽음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점점 더 심한 자극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자극에 대한 면역력 법칙으로 베버의 법칙(Weber's law)이 있는데, 원래 들고 있는 물건이 무거울수록 더 큰 양을 추가해야 비로소 그 차이를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불법 콘텐츠(성, 폭력물)의 유혹에도 쉽게 다가가고, 점점 더 큰 자극을 추구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 밖에도 혹시 모를 메타버스의 위험요인으로 사이버 범죄나 개인정보 해킹, 가스라이팅 등도 있을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메타버스에 대한 의존현상이 생길 수 있다. 찌질하고 외롭고, 무시당하는 오프라인 사회를 떠나서 존중받는 메타버스 안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은둔형 외톨이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반대로 메타버스에서는 사이버 왕따 같은 따돌림도 일어날 수 있다. 인터넷과 통신망 속의 익명성과 비대면성은 사람을 좀 더 과감하고, 잔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현실에선 못할 말도 잔인하게 하거나 무시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심한 경우엔 메타버스와 현실을 혼동하는 메타버스 정신증(Metaverse Psychosis)이 생길 수도 있다. 메타버스 부동산에서 산 뉴욕의 고층멘션을 현실과 착각해서 실제 집으로 가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상상하면 무시무시해진다. 하지만, 훨씬 더 흔한 심리적 부작용은 신체운동 부족, 오프라인 대화기술의 미숙함으로 인한 대인관계 능력과 충동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지나친 제재가 없어야 하는 곳이 메타버스이지만, 정신건강 전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SF영화 속 결말처럼 가끔은(아니면 시간을 정해놓고) 메타버스와 온라인 세계를 떠나서 본캐, 원래 모습으로 사는 시간을 유지하는게 필요하다. 어차피 인생은 메타버스건 오프라인이건 내가 서 있는 현실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