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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36 March 2022

Issue??있슈!!

◎ 의사과학자 양성, 절반의 성공과 나머지 절반의 숙제

김 하 일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

바이오헬스 산업은 기술, 자본이 집약된 산업으로 연구개발에 장기간, 고비용이 소요되지만 우수한 연구개발의 성과는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와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유망한 산업이다. 지난 50년간 눈부신 성장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바이오헬스 산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은 바이오헬스 산업이 국가 안보에도 직결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최근 의사과학자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사회적 필요성이 있다.

의사과학자의 정의에 대한 의학계의 해묵은 논쟁은 뒤로 하고, 지금 사회는 과학적 연구를 의료에 적용함으로써 질병의 원인과 치료 타겟을 적극적으로 규명하는 과학자로서 의사의 역할, 인공지능과 같이 빠르게 발전하는 공학 기술을 의학에 접목하여 새로운 진단치료 기술을 창출하는 공학자로서 의사의 역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일선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역할을 넘어, 다양한 학문 분야를 의료를 중심으로 융합시키는 허브로서의 역할이 의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였을 때 최대 수혜자는 더 높은 수준의 보건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우리 국민과 국가가 될 것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이미 50년 전부터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의사과학자의 역할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과학과 기술, 그리고 산업에 기여하는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은 1964년 NIH 주도의 의과학자양성과정(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 MSTP)을 시작하여 의사의 2% 정도를 의사과학자로 양성하였다. 하버드의대는 1970년부터 MIT와 공동으로 HST(Health Science & Technology) 프로그램이라는 기존의 의학교육과 별도로 의과학, 의공학 중심의 의학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테크니온공대는 1969년, 과학자, 공학자로서 활동할 의사 양성을 목표로 의대를 설립하였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은 2018년 공대 기반의 칼-일리노이 의대를 신설하여 의사공학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우리 의학계도 이미 30년 전부터 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그 양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전통적으로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왔던 의과대학 기초교실은 교수수급을 걱정해야 할 처지이다. 2005년 의전원의 도입과 함께 시도된 의과학자 양성과정(MD-PhD과정)은 안착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의과학자 양성과정의 실패는 크게 4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같이 입학한 학생들은 같이 졸업해야 한다는 사고가 강한 우리 문화에서 전공의 수련 대신 연구 트랙으로 나아가는 소수의 학생들은 동료 집단에서 이탈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이런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의 학생들이 별도의 교과과정을 통해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은 지원자의 감소로 이어졌다. 둘째, 의전원 제도만 도입했지 실제 교육에서는 의과대학과 차별성이 없었다. 오히려 의전원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예과를 거친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임상 위주의 의대문화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더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셋째, 현재 우리나라 의대의 연구환경은 독립적으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연구력이 높은 다양한 분야의 교수와 이를 뒷받침하는 첨단 인프라, 그리고 연구가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효과적으로 융합된 생태계가 중요하다. 하지만 진료와 교육의 논리가 우세한 의과대학, 그리고 병원의 환경에서는 호흡이 긴 연구가 쉽지 않았다. 젊은 의사들이 의과대학을 떠나 다른 이공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되지 못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가 창출되고 이것이 다시 젊은 의사들을 유입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양성된 의사과학자들이 진출할 수 있는 산업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진료는 의사들에게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였으며, 이를 뛰어넘는 수준의 성공 모델이 창출되지 못하였다. 양성된 소수의 의사과학자는 대부분 대학의 교수직이나 해외로 진출하고, 다시 임상으로 돌아오는 일도 빈번했다.

또 다른 시도로서 의과학대학원 모델은 2006년 카이스트에서 처음 시도되었다.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은 2006년부터 16년간 200명 이상의 의사출신 이학·공학박사를 양성함으로써, 외형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2010년 연세의대, 2011년 서울의대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잘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양성된 의사과학자들은 상당수가 대학병원으로 돌아가 임상과 연구를 병행함으로써 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아직 그 수가 많지 않아서 사회적으로 느껴질 만큼은 아니지만 의학계 내부에서는 이런 성공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저수가 의료환경에서 병원으로 돌아간 의사과학자들은 진료 수입에 대한 압박과 연구할 시간과 공간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해있고, 사회가 원하는 혁신가로 성장한 의사과학자의 수는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 않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남아있는 절반의 숙제는 무엇인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우리가 지난 30년간 겪은 실패를 토대로 4가지 정도의 숙제를 제시하고 싶다. 첫 번째로 병원의 혁신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병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낮은 의료수가를 극복하기 위해서 의료진들은 격무에 시달린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연구비에서 발생하는 간접비를 직접 병원으로 흡수하여 병원에서의 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임상연구 환경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미충족 의료수요에 기반한 병원 중심의 중개연구를 통해 병원의 수입원을 다양화 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두 번째는 의대의 기초연구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 기초의학이 완전히 무너지면 의대나 병원에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것도 무너지고 종국에서 임상도 무너진다. 기초연구를 잘하지 못했던 이유가 내부의 문제도 있지만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서임을 인정하고 국가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체적인 연구 능력을 갖춘 2~3개의 의대는 현재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연구 중심 의대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의사과학자의 꿈을 꾸고 그 길에 들어와서 긴 수련 기간을 견뎌낼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의사에 대한 국가적 지원에 대해 냉소적인 국민적 감정을 설득하여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의사과학자를 양성하여야 함을 설득해야한다. 또한 젊은 의사들이 따라 할 수 있는 롤모델을 찾아야 한다. 과거 전통적인 의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의사의 모습에 대한 모델이 될 수 있는 30, 40대 젊은 의사과학자를 스타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정책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이끌어가 혁신가들이 필요하다.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혁신가를 키우고 그들에 의한 혁신이 이루지도록 의료계가 힘을 합쳐 지원해야한다.

최근 정부를 중심으로 산업계로 진출하는 융합형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융합형 의사과학자는 의사와 과학자의 다른 정체성이 아니라 하나의 융합된 정체성을 가진 의사과학자를 의미한다. 미래에는 과학도 더 세분화될 것이므로 융합형 의사과학자는 더 전문적 영역으로 진출하는 의사과학자가 될 것이다. 바이오헬스 산업이 미래의 유망산업이고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아직도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최근 의과학대학원 졸업생 중 10% 정도가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연구소나 벤처회사로 진출하는 것은 의사과학자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신호로 생각된다. 의사과학자들이 포화된 임상진료 기반의 의료시장을 벗어나 바이오헬스 산업이라는 대양으로 진출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고 의사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한다는 관점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런 혁신을 선도할 수 있는 융합형 의사과학자의 양성에 대해 논의를 의학계에서 서둘러야 한다. 미국의 경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특성을 잘 살린 한국적이고 선도적이 양성모델을 빨리 수립하는 일에 정부와 의학계와 과학기술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기유도를 이용해 전기를 처음 만들어졌을 때 전기에 대한 수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전기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혁신을 통해 삼성전자라는 초일류 기업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이 포화라고 했을 때 수요에 기반한 제품의 생산이 아니라 기술개발에 의한 새로운 수요의 창출이라는 혁신을 통해 초일류 기업이 되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임상 진료 능력을 보유한 의료선진국으로 발전한 우리 의학계는 이와 같은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미충족 수요에 의한 기술개발을 넘어 신기술에 기반하여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보유하고 있다. 지금 논의되는 융합형 의사과학자를 양성하여 연구를 통해 가능성을 만들고 그 가능성으로 새로운 수요와 시장을 만들어갈 의사혁신가를 길러야 한다.
1998년 경제위기 이후 대학입시에서 의대 쏠림현상은 지속적으로 심해지고 있다. 과학영재들의 의대진학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이제 과학영재의 의대 진학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장려하고 그들을 의사가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의사혁신가로 양성하자.
현재의 사회적 수요를 넘어 선배의사들이 가보지 못한 병원 너머의 대양으로 나아가는 혁신적인 의사과학자들을 양성하여 저수가의 기근에 시달리는 우리 의료계에 새로운 활로를 뚫고, 바이오분야의 삼성전자를 만들어 우리나라를 국민소득 10만불 국가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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