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기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연세대학교 의료원 제중원보건개발원장 | 국제의학교육개발사업단장
대한의학교육학회 학술이사
COVID-19으로 인해 2020년은 인류 문명에 한 획을 긋는 해가 되었다. 보건 영역만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의 삶의 전 영역에 심대한 충격이 가해졌다. 현재도 여전히 그 압박 하에 있다. COVID-19은 독감에 비해 전염력이 높고 치명률이 높으며, 증상 발생 초기의 전염력이 높고 상대적으로 긴 잠복기를 보이고 무증상기의 감염전파가 가능한 질환으로 확인되었다. 아직까지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고, 예방백신이 이제 막 접종되기 시작했으므로 현재로서 감염확산을 막을 수 있는 실효적인 대책은 감염원의 접촉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치는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로 실천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개인 차원의 사회적 활동의 제한에서 나아가 도시 기능의 마비와 국경봉쇄에 이르는 충격적인 현실로 경험되었다. 전염병의 부담은 상존하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전세계적를 일거에 두려움으로 몰아 넣을 수 있으리고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COVID-19의 경험은 전인류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보건의 문제가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임을 확인해주었다. 동일한 생물학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비전문적 직업과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집단에서 치명률이 더 높게 나타났고, 선진국은 안전할 것이라는 보건안전(health security)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다른 감염과 사망률의 양상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한편 교육현장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학생과 교수 사이의 접근의 차단으로 경험되었는데 이 ‘교육현장으로의 접근 차단’이 COVID-19에 기인한 교육 장애의 핵심이다.
2020년 2월 하순 교육부가 대학의 개강시기를 연기하고 개강 후 비대면 교육 방침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모든 의과대학들은 소위 “온라인 강의”라는 교육방안을 전격적으로 도입해야 했다. 온라인 강의라고 알려진 IT 기반의 교육플랫폼은 이미 개발되고 알려진 교수방안이었지만 그긴 의대교수들은 기술에 기반한 교수법에 대해서는 보수적 경향을 보여왔다. 따라서 온라인 강의를 위한 기반시설이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기존의 프로그램이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나 강의동영상 송출과 관련한 데이터 부하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이 Zoom이나 Webex와 같은 회의 및 교육용 플랫폼을 구매하였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해 교수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했고, IT 기반의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의과대학 내의 기반 시설들의 보완이 필요했다. 급하고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2020년의 의학교육은 전격적이고 전면적인 변화를 충분한 준비 없이, 그리고 상황의 전개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작해야 했다. 불확실성 속에서 일 년을 지내는 가운데 우리 의학교육계는 역병에 더하여 소위 “의정사태”라는 또 다른 홍역도 치러야 했다. 2021년이 되었으나 상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지원해야하는 학교 당국은 연일 비상이었다. 온라인 강의 과정의 실수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교수들의 강의 동영상을 제작을 지원하고, 운영을 지원하는 업무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기존의 대형 강의를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교수들은 학생들을 보기 어려웠고(기술적으로도 어려웠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비디오 기능을 중지하고 수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의시간에 직접 강의를 진행한다고 해도 스튜티오나 모니터 앞에서 학생들의 반응을 모른 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선 확인된 것은 의과대학 교수들이 기술기반의 교수법에 대해 미온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의 전격적인 IT 기반의 교수방식으로의 전환에 적응했다는 사실이다. 동영상 강의의 준비, 학생 반응의 파악과 상호작용이 어려웠던 점은 충분히 준비된 교수설계 없이 급하게 전환해야 했던 맥락에서 기인했던 문제라 할 수 있다. 여전히 대면해서 교육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라는 교수들의 주장이 있지만, 적절한 설비와 기술적인 지원, 그리고 변화된 교수 방식에 대응하는 교수개발이 진행될 때 IT 기반의 교육플랫폼은 양질의 교육을 위해 충분히 활동될 수 있는 자원임을 경험하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강의에 학생들의 평가는 긍정적인 요소가 있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시간에 단회적으로 진행되는 대면강의와는 달리 필요한 경우, 원하는 부분을 자신에게 맡는 속도로 다시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강의는 학습을 위한 시공간이 확장되는 경험이 되었다. 더구나 학생들은 동영상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습득한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COVID-19 이후에도 이러한 방식의 강의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온라인 교육이 대체하기 어려웠던 것은 첫째로 실습교육이었다.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은 온라인 교육방식으로 대체가 가능했지만(오히려 학생들이 선호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해부학 실습이나 임상 실습과 같이 반드시 현장에서 이루어져야하는 교육의 수행은 어려웠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방역원칙을 따르면서 실습을 진행하기 위해서 소규모 분반 수업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교수들의 강의 부담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의과대학들이 실제 현장에서 임상실습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COVID-19 이전에 비해서 실습에 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IT 기반의 가상현실이나 임상상황의 시뮬레이션 등이 제안되기는 했어도 현 단계는 여전히 실습과 관련된 문제를 실감하고 파악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보다 엄중한 상황 속에 있는 미국의학교육계는 학생들의 최소한 임상실습분량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1)
이러한 논의는 우리 학생들의 임상실습의 핵심내용이 어느 정도로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지 그리고 2020년의 대응에서 어느 정도의 실습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가 필요함을 환기해준다. 둘째의 난제는 학습 성과에 대한 평가였다. 연세의대는 방역방침을 존중하면서 의과대학에 출석해서 평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였으나 학교마다 평가원칙과 방법이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온라인 비대면 평가에서 부정행위의 사례도 있었고 지식에 대한 단순한 평가는 부정행위의 위험성 뿐만 아니라 역량성취에 대한 평가로서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학생들의 성찰적이고 분석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방안을 포함한 평가방법의 개발과 개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의과대학의 학습이 “의사로 빚어지는 형성”경험이라고 할 때, 의사답게 생각하고, 의사답게 말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재형성의 과정이 기존의 정체성의 해체가 더불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이 정체성 형성이 일어나는 맥락이 교수, 동료, 그리고 환자들과 함께 구성해가는 병원과 학교라는 공동체이다. COVID-19으로 인해 정규 교육과정에서의 공동체 경험이 위축되고, 동료들 간의 상호작용이나 동아리 활동과 같은 잠재적이되 중요한 사회화 경험의 결핍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지원해야할 지가 과제가 될 것이다.
의학교육자들은 COVID-19으로 인한 의학교육의 장애(disruption in medical education)를 겪어가면서 이 장애를 의학교육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of medical education)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선 첫째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재고해야한다. 새롭게 대두된 전염병과 그 대처, 보건의료전달체계와 보건보안(Health Security)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COVID-19 초기에 미국 대통령은 Johns Hopkins 대학의 2019년 연구를2) 인용하면서 미국의 보건안전이 세계 최고라고 장담하였으나, 오히려 최대 확진자와 사망자 발생 국가가 된 현실은 한 국가의 보건안보가 학문적 수준과 의료기술의 수준 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삽시간에 전세계적 역병으로 확산된 것은 오늘의 삶의 환경이 긴밀하게 연계되었다는 것을 보이고 있고 이는 21세기의 의사들은 국제보건과 건강형평성(health equity)등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과거와는 달리 전세계가 데이터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의료에 있어서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data science와 health informatics에 대한 교육들이 필요함도 인지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기본의학(basic medical science)와 임상의학(clinical medical science) 교육에 더하여 health systems science라는 영역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현실로 확인된 것이라 하겠다.
둘째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재고해야 한다. 학습자들이 최적의 조건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교수들과 학교의 책무이다. COVID-19으로 인한 IT 기반의 교육플랫폼의 도입이라는 변화는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의학교육의 혁신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학생들은 디지털 방식의 학습을 잘 수용하고 있고, 학습을 위한 시공간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학습할 수 있었던 장점이 경험했다. 더구나 2020년의 의학지식의 배가시간은 73일이라 추정되듯이3) 지금의 지식폭증의 시대이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교수가 다 전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보를 근거로 추론하여 타당하게 선택하고, 적용하는 능력 그리고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해갈 수 있는 팀바탕접근의 역량들이 더 절실하게 필요해졌다. 일부 대학들에서 이미 시도하고 있는 IT 기반의 교육플랫폼을 바탕의 학생주도적인 참여적 교육과정의 교수설계가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IT 기반의 교육플랫폼이 이끌고 있는 다른 중요한 변화는 지식의 공유와 소통이 대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현상이다. Coursera, edX와 같은 MOOC(massive online open courses) 교육 플랫폼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유수의 대학들도 이 교육플랫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제공하는 IT 기반의 교육플랫폼에 등재된 교육과정에 등록하여 학습하고, 학습성과에 대한 평가를 받아 인증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교수-학습과 지식정보의 공유와 소통이 대학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시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가가 학습자중심의 양질의 의학교육을 위한 대학간 연맹의 가능성을 타진해야한다. 교육의 개선을 위해서 투자가 절실하지만, 필요에 비해서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의 대학의 현실이다. 이러한 제한 때문에 계획하고 목표했던 교육과정과 실제로 실행되어 학생들이 경험하는 교육과정이 서로 다르게 된다. 양질의 의학교육을 통해서 국민의 건강과 국가의 보건을 향상시키고, 의료와 의학의 발전을 이루어야 함이 모든 의과대학의 공통의 책무라면 모든 의과대학은 양질의 의학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마다 교육역량에 차이가 있고 서로 다른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IT 기반의 교육플랫폼은 기존의 대학의 경계를 넘어서 학습을 위한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할 수 있으므로, 학습자인 학생들에게 최선의 교육과정을 제공할 수 있도록 각 대학의 강점이 있는 역량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대학 간의 교육과정의 공동개발이 필요하다. 교육과정을 공동으로 개발하면 개발에 필요한 각 대학의 자원투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granule 또는 electronic badge이라는 교육과정 개념이 있다. 전통적인 교육과정이나 모듈보다는 훨씬 작은 단위이지만, 교육주제에 대한 강의-평가-인증의 요소를 포함한다. 공동으로 개발된 granule과 badge들을 참여한 대학들의 필요에 따라서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다면 학생들을 위해 보다 양질의 교육을 하면서도 각 대학별로 독특한 교육과정을 구성해갈 수 있을 것이다.4)
더구나 IT 기반의 교육플랫폼은 이러한 교육자원의 원활한 소통과 확대-재생산이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동맹과 협력은 국가 간의 경계를 넘어 확장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COVID-19이 교육에 미친 영향의 본질이 교육현장으로의 접근의 차단이라면, 오랜 전부터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의학교육기관의 학생들은 양질의 의학교육에 접근하지 못하는 심각하고 상시적인 차단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번에 전세계적으로 경험한 IT 기반의 의학교육 경험은 IT 기반의 새로운 교육적 시공간에서 국가간 교류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해 주었기 때문에 오랜 동안 해결하지 못한 국제보건을 위한 양질의 의학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할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는 위험하지만 새로운 기회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해주는 상황이다. 이에 함께 건강한 삶을 이루어가야 할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 의학교육자들은 이 위기를 창조적인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