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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19 August 2020

1분 소확행

- 영화 속 의학이야기(3) : 루게릭병

장 경 식 조선의대 내과학, 조선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2014년 여름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면 근육 수축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루게릭병 환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캠페인의 하나로 많은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또한 얼마 전 ‘루게릭병 환자가 가족에게 보낸 4년만의 문자 메시지’라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루게릭병으로 신체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특정 글자를 일정 시간 쳐다보면 키보드를 치듯 화면에 글자가 입력되어 눈으로 스마트폰 메시지도 보낼 수 있는 기술을 벤처 기업이 만들어 주어, 환자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가족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루게릭병 환자가 눈의 움직임만으로 전자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3년 전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30살 환자 본인이 만들었는데, 루게릭병 환자의 경우 근육이 굳어가더라도 눈은 정상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에 착안하여 안경에 장착된 센서가 눈의 움직임을 해독해 방의 조명을 켠다든지 로봇을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한다.

루게릭병(Lou Gehrig’s disease)의 의학용어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 근육위축 가쪽 경화증)이라는 복잡한 이름인데 너무 복잡하다보니 간단히 루게릭병으로 부른다. 루게릭병은 신경, 상부와 하부의 운동신경원 모두가 망가져 이 두 가지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 살짝 대기만 해도 튈 정도로 무릎반사가 증폭되고, 그와 동시에 근육이 위축된다. 반면 감각이나 인지 능력에는 사망할 때까지 이상이 없다는 것도 이 병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3-5년 내 목숨을 잃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오래 사는 경우도 있다. 유사한 질환으로는 비교적 양호한 경과를 보이고 남자에서만 발생하는 유전성 질환인 케네디 병(Kennedy disease)이 있다.

이 질환명의 유래가 된 야구 선수 루게릭은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소망대로 콜롬비아 대학에서 엔지니어를 꿈꾸었지만, 1923년 뉴욕 양키스 구단에 입단하여 23개의 그랜드슬램과 2130경기 연속출전이라는 대기록을 기록하였는데, 루게릭병으로 1939년에 은퇴하고 2년 후 사망하였다. 은퇴 연설에서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다”고 말해 많은 관중의 심금을 울렸는데, 이 연설은 미국 역사에서 명연설로 남아있다. 그의 생애는 ‘야구 왕 루게릭(The Pride of the Yankees, US, 1942)’이라는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루게릭병 관련 영화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1999)’, ‘호킹(Hawking, 2004)’, ‘내 사랑 내 곁에(2009)’,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 2014)’ 등이 있는데 ‘호킹’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2014년에 개봉한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은 스티븐 호킹 박사의 젊은 시절, 결혼식, 중년 시절 등에 찍은 사진과 매우 유사하게 제작하였으며, '스티븐 호킹' 역을 맡은 에디 레드메인은 루게릭병으로 동작이 어려워지고 신체가 왜소해지는 호킹 박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연기하여 2015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루게릭병에 걸린 환자역을 연기하기 위해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은 20kg,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의 레드메인은 10kg를 감량하는 등 완벽한 캐릭터 소화를 위해 숨은 노력까지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유아 낫 유(You're Not You, 2014)는 모든 게 완벽한 피아니스트 케이트가 루게릭병을 앓고 간병인인 벡을 만나게 되는 운명같은 만남과 우정, 그리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이다.
주변으로부터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케이트가 어느 날 손가락이 말을 안듣는다는 것을 느끼고 결국 루게릭병 진단을 받게 된다. 남편인 에반은 그녀를 돌보면서 간병인도 직접 구해주었지만 친절한 간병인이지만 환자로서 동정이 싫었던 새로운 간병인으로 삼류 가수 지망생인 벡을 선택하게 된다.
벡은 실수투성이에 케이트와는 성격이 반대라 둘의 만남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환자로서가 아닌 있는 그냥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대하는 벡이 좋았고 각자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서로에게는 강점이 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또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게 된다. 케이트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크게 좌절하게 되고 벡은 병에 걸린 자신을 자책하는 케이트를 위해 싫어하는 휠체어도 타게끔 해서 재활 치료도 함께 다니고 집 밖으로 나가 쇼핑을 하면서 기분전환을 하기도 한다.
케이트는 벡의 친구들이나 부모님을 집에 초대해 식사하기도 하고 벡에게 오래전 자신을 좋아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에게 점점 진솔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벡은 케이트 곁에 더 있고 싶은 마음에 케이트 모르게 대학을 자퇴하게 되지만 이 때문에 둘은 잠시 이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후에 케이트의 증세가 점점 심해지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인공호흡기까지 필요하게 되었는데 의사는 그 권한은 벡이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나게 되고 벡은 케이트와의 약속 지키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거부하고 케이트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특히 벡은 케이트가 좋아하던 쇼팽의 작품을 연주하고 에반은 벡의 손위로 케이트의 손을 살포시 올려주는 장면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것과 마음의 교감을 통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 이상의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직감했는지 케이트는 벡에게 “네 모습 그대로를 봐주는 사람을 찾아. 그리고 너도 그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봐야 해.”라고 진심어린 말을 해주고 그날 밤 벡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 곁을 지켜준다.

제목인 ‘You're Not You’를 직역하면 ‘너는 네가 아니다’라는 뜻인데 그 해석이 조금 어렵다. ‘지금 네 모습은 네가 아니다’라는 철학자들의 명제는 아니더라도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다’라는 것은 사실인 것 같은데 이 제목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문장 뒷부분의 보어가 생략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금 보이는 너에 모습은 진정한 네가 아니다’라고 뜻일 가능성이 높다. 가면을 쓰거나 포장된 것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우리는 왜 내 모습 그대로를 봐주는 사람 대신 그렇지 않은 사람을 택하는 걸까?”라고 케이트가 벡에게 말하기도 하고.. 연결해 보면 ‘너의 진정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을 찾으라는 문맥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담으로 영화의 끝 부분에서 가족이 아닌 간병인 벡이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다는 것을 거부하고 퇴원시키는 결정을 내리는 데, 이것은 주인공 케이트가 간병인 벡에게 항구적 법적대리인(항구적 대리인 위임장)을 지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에 관한 항구적 법적 대리인(DPAHC, durable power of attorney for health care)은 어떤 불의의 사태에 의하여 본인의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경우에 그 환자를 대신하여 결정권(심폐소생술 거부, DNR 등)을 행사하도록 대리결정권자를 지명해 놓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전의료의향서를 준비할 때에는 ‘대리인 지정’이라는 항목이 있었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에 사라져 버렸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의료용 마리화나를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암이나 에이즈, 루게릭병, 다발성경화증 등 중증질환이나 난치병에서 마리화나가 사용되고 있는 나라가 많아지고, 그 규제가 완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마리화나의 주요 성분에는 THC(Tetrahydrocannabinol)와 CBD(Cannabidiol)이 있는데, THC와는 달리 CBD에는 환각작용이 없고 진통 등 치료효과가 있다고 한다. 담배처럼 피거나 캡슐이나 연고 등으로 만들어져 시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마성분 의료용 합법화 개정안 등이 준비하고 있으나, 대마초 추출물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제기 되어 그 법제화가 요원하기만 하다.

루게릭병은 치매 등 다른 만성질환과 달리 마지막까지 본인의 스스로 결정하고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안락사(존엄사), 조력 자살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항년 76세로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도 73세 부근에 “고통이 너무 심하거나, 내가 세상에 더 이상 기여하는 게 없고 짐이 될 뿐이라고 느낀다면 조력 자살을 고려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하였다. 그 전에도 호킹 박사는 “말기 환자 안락사 선택권 존중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여 안락사(존엄사)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이 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루게릭병이 알려지고 관심도 갖게 된 반면에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잊혀지는게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전 프로농구 코치 박승일 선수가 공동으로 설립한 승일희망재단과 국내 최초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 희망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힘을 보태고 있고 줄기세포 치료 등 많은 연구가 계속되고 있기에 언젠가는 정복 가능한 질병이 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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