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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10 NOVEMBER 2019

Issue?? 있슈!!

- 의사의 기본적인 연구역량 강화 방안

김 재 우 연세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만성난치질환 시스템의학연구센터장

I. 의사에게 기본적인 연구역량이 왜 필요한가
의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의사가 담당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질병 치료나 예방의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 과학적 발견은 의사가 아닌 non-MD 과학자의 공헌도 매우 컸기 때문이다. 의학 역시 과학이며, 과학은 어디에서든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노력의 산물이지 어느 한 분야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 연구에서 의사의 역할은 크다. 의사는 첫째, 의학 분야에서 어떤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생물학이나 생화학적 분야의 전문가의 관심은 의사의 관심과 다르며, 학문적인 관심을 의학, 즉 사람으로 끌고 오는 데에는 의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질병 치료나 예방을 위해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를 의사가 제시해야 하며, 이 세상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사람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둘째, 의사는 교과서에 기술되지 않는 수많은 경험으로 의학의 다이나믹한 변화를 제시한다. 의사가 환자를 보면서 치료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많은 정보가 생기게 되며, (요즘은 이들을 “의료자산”이라 하여 연구에 응용하는 것이 흔해지게 되었지만) 이런 정보는 의학이라는 학문에 새로운 시각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이는 흔히 연구의 계획의 핵심이라 부르는 “연구의 가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셋째는 어떠한 연구가 실제 환자의 치료나 응용에 이용될 수 있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한다. 원래 연구는 호기심에 의한 것으로서 그 결과가 응용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의학 연구는 다르다. 질병 치료나 예방에 응용될 수 없는 연구는 의학 연구에서 쓸모없는 연구이다. 즉, “연구의 임팩트 또는 연구의 중요성”에 해당하는 것을 의사가 제공한다.

결국, 의사는 연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연구의 필요성”, “연구의 가설”, “연구의 중요성”에 큰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런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연구의 마지막 요소 - 또는 일반적으로 연구의 전부라고도 말해지는 - “연구의 디자인과 방법”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 인공 근육이 있으면 근육 손상 환자에게 도움이 되겠다(연구의 필요성), (2) 사람의 근육을 모방하는 섬유를 이용해서 인공근육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연구의 가설), (3) 인공근육을 만들면 장애인의 보조 근력 장치로 써 볼 수 있다(연구의 중요성) 라는 것까지는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누구나 한다고 해도 인공근육을 개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의사가 연구의 디자인과 방법의 노하우를 장착하면 위 연구의 흐름은 더욱 구체적이 된다. (1) 전기에 의해 부피나 길이가 변하는 소재를 이용하여 인공근육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연구의 필요성), (2) 이온형 전기활성물질 소재를 이용하면 전기 자극에 의해 근육의 이완과 수축을 모방할 수 있을 것이며, 방향성도 얻을 수 있다(연구의 가설), (3) 이것이 가능해지면 전기 자극에 의해 정상 근육보다 더 큰 힘을 내는 인공근육을 근육 손상이나 근육 마비 환자에 이식하여 사용할 수 있다(연구의 중요성)과 같이 구체적 연구방법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사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연구의 디자인과 방법”을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그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II. 의사의 연구역량 강화가 어려운 이유는
어찌 보면 대단히 쉬워 보인다. 의사들에게 “연구의 디자인과 방법”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 역량 강좌나 교육을 정기적 혹은 체계적으로 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바람직한 연구의 흐름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인공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성-가설-중요성-방법이 필요하다고 할 때,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가 이를 모두 할 수 있을까. 위에서 말했듯이 물리학자는 의사의 이야기가 없으면 인공근육이 왜 필요한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자는 위 연구에 필수적이다. 소재를 개발하는 과정에도 필요하지만, 개발 과정의 수많은 trouble-shooting에 물리학자의 기여도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물리학자는 근육의 움직임이나 골격근 자체 움직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반대로 인공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의사는 위의 과정을 모두 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불가능하다. 그래핀이 뭔지, 탄소나노튜브가 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있다. 물리학자는 인공근육을 개발하기 위해서 의학을 통째로 배우려고 하지도, 또 조금 배웠다고 의사와 맞먹는다고 말하지도 않는데, 의사는 인공근육을 개발하기 위해 물리학을 공부하고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보면 마치 본인이 물리학자인 듯이 행동한다. 그리고는 물리학자는 별로 필요 없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의학공학 분야가 아닌 생물학적 영역으로 오면 더욱 그렇다.

의사의 연구역량 강화는 본인이 의학, 생물학, 물리학에 모두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이다. 팔방미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리 자주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의 기초 연구역량 강화는 그 목적이 연구의 방법과 디자인을 이해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춤으로 해서 “본인의 전문성을 더 발휘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하여 결국 팀플레이로 불가능한 연구를 가능하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III. 의사-과학자의 연구역량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의사들은 진료를 하든, 연구를 하든, 하나만 해 왔다. 그래서 임상의사 혹은 기초의사가 분리되고, 그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의사와 non-MD 과학자들의 간극은 더 컸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의사들이 연구를 해야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여 만든 것이 “의사-과학자”이다. 의사-과학자는 기본적으로 진료영역과 연구영역을 함께 하는 사람을 말한다. 필자와 같은 기초의학자는 MD이긴 하지만 환자를 전혀 보지 않고 임상 경험이 거의 없어 전형적인 의사-과학자라고는 할 수 없다. 즉, 요즘 Physician-Scientist라 하여 임상 전문의를 마치고 기초과학을 접목하여 진료와 기초과학을 한 몸에 지닌 사람이 전형적인 의사-과학자이다.

“의사-과학자”가 의학 연구에 발휘하는 위력은 미국에서 이미 검증이 되었다고 말한다. 베트남 전쟁 시절 어쩔 수 없이 NIH에 들어가 연구에 매진한 의사들 중 9명이 노벨상을 탔다고 한다. 의사가 과학을 하면 의학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들이 노벨상을 탄 이유는 하루 종일 진료하다가 주말 짬을 내어 실험실에 들어가 연구한 덕분이 아니다. 의사와 생물학자를 동시에 석권했기 때문이 아니다. 의사와 과학자를 동시에 할 수 있기에 암수한몸처럼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을 하면서 암수한몸과 같은 사람을 길러내길 바라고 있다.

잘 길러낸 의사-과학자의 기본 과학 역량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후학을 양성하려면 올바른 눈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교육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길러내는 의사-과학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번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의사도 절반, 과학자도 절반의 능력밖에 되지 않는 괴이한 우수인재(?)를 양산하는 꼴을 막을 수 있다.

IV. 의사의 기본 연구역량 강화
연구를 잘 하는 의사는 혼자서 연구를 잘 하는 의사라는 인식이 정착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잘 교육시킨 의사-과학자에게 의사의 모든 연구 역량을 맡길 기세이다. 제도화된 의사-과학자(Physician-Scientist)가 아니더라도, 의사가 기초 연구역량을 “장착”하여 연구를 할 줄 알게 되면 그 사람들만 연구하는 것처럼 인식될 전망이다. 이런 인식은 결국 임상의 무궁무진한 연구 소재와 기초의 전문적인 연구력 간의 갭이 점점 더 벌어지게만 할 뿐이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소통하려면 통역사가 필요하다. 의학과 생물학/물리학/공학/화학 등이 접목되려면 통역사에 해당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통역사는 의학의 전문가도 아니고, 생물학의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의학과 생물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사람이며, 양 쪽 언어에 깊은 이해가 동반될수록 그 소통의 산물은 크다. 필자는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거기에 있다고 본다. 물론 의사-과학자는 향후 30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의사로서 1인자가 될 수도 있고, 과학자로서 1인자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의사-과학자의 양성의 측면이 아니라, 소양을 갖춘 사람이 그 다음에 어떻게 집중하느냐에 따른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면, 의사의 기본 연구역량은 어떻게 강화하자는 말인가. 위의 글을 토대로 한 필자의 제언은 “소통을 통한 연구역량”이 되겠다. 그리고 그 소통에 제대로 양성된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창의적인 연구를 통해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위해서, 서로 떨어져 있는 전문가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 곳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할 수 있도록, 그리고 소통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의사-과학자의 무한한 역할을 높이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의사 집단은 점점 기초 연구역량이 강화되고 생물학자와 물리학자는 점점 의학에 대한 이해도가 강화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의사의 기본 연구역량의 강화”이다. 몇 명의 성공적인 의사-과학자의 “과학능력”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요즘은 이런 노력을 많이 하기도 한다. MD와 PhD와의 협력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의대와 공대, 의대와 생명과학대 간의 합동 심포지엄 같은 것도 많이 열린다. 그러나 그런 작은 성공 속에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의사는 의사대로 의학과 공학을 접한 본인의 이야기를, 공학자나 생물학자는 그들 나름대로 연구한 그들의 이야기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서로 서로의 자세가 꼿꼿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서툴게 남의 언어를 배워 유창한 듯 발표하는 식이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리 없다고, 이런 노력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서로의 전문성에 기반한 좋은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 본 원고는 2019년 대한의학회 제18차 학회 임원 아카데미 발표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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