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계에서도 근거중심의료는 이미 일반화된 주제로 진료지침의 개발과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포함한 임상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의 보고에 따르면 국내 임상시험 건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2000년 대비 2015년에는 20배 이상 성장하였으며, 2020년 임상시험 5대 강국을 기대한다고 한다. 그런데 임상연구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그 결과가 근거중심의 의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연구 참여자에게 그 결과를 전달하려고 하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근거중심의료란 임상연구 결과들의 객관적 분석과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진료지침 등을 통해 의료현장에 전달되고 있다. 임상연구 결과로부터 합리적 의사결정을 도출하기 위해 체계적 문헌고찰 방법을 활용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석에 포함하는 연구들의 객관성과 타당성이다. 그런데 체계적 문헌고찰 과정에서 출판삐뚤림(publication bias)이 합리적 의사결정의 주요 장애요인으로 인식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임상시험등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국제의학학술지편집위원회, 국제보건기구(WHO)와 더불어 이미 여러 나라에서 임상시험등록이 법 또는 규정에 명시되어 임상시험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국제의학학술지편집위원회(ICMJE) 결정에 따라 소속 학술지들은 2005년 7월 이후 출판되는 임상시험의 경우 첫 피험자를 모집하기 전 WHO primary registries¹⁾,ClinicalTrial.gov, ISRCTN 등 위원회에서 인정하는 사이트에 등록된 연구에 한해 게재를 승인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은 임상시험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국제학술지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국내 학술지 일부도 이러한 정책을 수용하고 있다. 또한 미국 FDA의 경우 2007년 이후 2상 이상의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임상시험에 대해서 NIH에서 운영하고 있는 ClinicalTrial.gov에 등록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NIH에서도 정부지원을 받는 임상시험에 대해서는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는 임상연구 개요에 대한 사전 등록 뿐 아니라 결과공유, 원시자료 공유에 대해서도 국제 사회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임상시험등록의 의무화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공개되지 않거나 선택적 결과보고로 객관적 분석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여러 보고에 따른 것이다. 미국 FDA에서는 2010년부터 부작용을 비롯한 임상시험 결과를 Clinicaltrail.gov에 등록 즉 공개를 의무화하였으며, NIH 지원을 받는 과제에서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 경우 연구비 지원 중단 등의 강력한 조치를 발표하였다. ICMJE에서도 2016년부터 데이터공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여 2018년부터 소속 학술지에 게재신청을 하는 모든 논문에 원시자료 공유에 대해 명시하고, 2019년부터 시작되는 임상시험은 등록 시에 원시자료공유 계획을 등록사이트에 명시하도록 하였다. WHO 및 ICTRP primary registry 담당자들은 지난 해 이러한 국제정책을 반영하여 각 등록시스템에 반영하기로 협의하였고, 각 registry마다 이에 따른 등록항목을 보완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 사회의 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내 임상시험을 비롯한 임상연구 정보공개는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을 WHO primary registry로 지정하였으나 보건의료기술개발사업에서 지원하는 임상연구지원과제 외에는 의무 등록에 대한 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 허가임상시험을 관리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임상시험에 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나 현재는 신청인, 제목과 적응증 등 일부정보만 공개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여 임상시험정보 등록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혀 앞으로 그 내용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되나 허가임상 외 공익적 임상시험 등 관리 대상이 아닌 많은 임상시험에 대해서는 전문가들과 국민 모두에게 깜깜이 정보로 남아있는 실정으로 임상시험공개에 대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국립보건연구원에서도 임상연구정보가 보다 투명하게 공개되고 국민들의 접근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홍보를 하고 있으나 아직은 연구자들의 인식개선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환자단체에서도 임상시험공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희귀질환이나 난치성질환자들은 새로운 치료기술이나 의약품에 대한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싶어도 현재 어떠한 연구가 어디에서 진행되는지 모르고 있어 환자단체는 이에 대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인들이 참여한 임상시험의 결과에 대해서도 공개를 원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환자동의서에 임상시험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경로를 통해 알 수 있는지를 명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임상시험을 포함한 임상연구 정보 등록과 그 결과 공개는 국내외에서 논문게재의 목적 뿐 아니라 연구윤리, 환자의 알권리를 위해 연구자로써 당연한 의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직도 임상연구등록이 연구자들에게 부담을 가하는 절차로 생각하는 연구자가 있다면 임상연구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