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EMR자료나 건강보험 청구자료 등을 의료 빅데이터라고 합니다. 오늘은 좀 다른 관점으로 한 개인에 관한 모든 데이터로 정의되는 “개인 빅데이터 (Personal Big Data)”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한 사람에 관한 데이터는 매우 방대하고 (Volume), 다양하며 (Variety), 시시각각 생성소멸하기를 멈추지 않는 (Velocity) 빅데이터 입니다. 어쩌면 개인 빅데이터의 온전한 이해가 의학의 궁극적 목적일지도 모릅니다.

개인 빅데이터는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1) 전통적인 개인 진료정보, (2) 최신 DNA 분석 개인 유전체 정보, (3) 개인 라이프로그(LifeLog)로 불리는 일상생활 활동 정보입니다. 개인의 운동, 식이, 수면, 생체정보 등이 개인 스마트폰으로 관리됩니다. 라이프로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환자 자신이 스스로의 건강정보를 생성, 관리하기 시작한 데이터입니다. 그간 건강 데이터는 오직 의료체계에서만 관리돼왔음에 비추어 정말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진료기록이 건강정보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3가지 개인 빅데이터 중 하나에 불과한 세상입니다.

CT나 MRI 촬영 비용 정도인 100만 원이면 한 개인의 모든 유전체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와 저희 학생들은 모두 자기 DNA 정보를 스스로 분석합니다. 라이프로그와 함께 유전자 정보가 진정으로 대중화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일반 대중의 유전자 정보에 대한 관심이 의사의 관심보다 훨씬 큽니다. 의사가 유전자 분석 처방을 내리는 첫 번째 이유가 ‘환자의 요청’ 때문이라 합니다.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자신의 건강에 대해 스스로 내린 결정’으로 대중적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반면 의료계의 대응은 느리기 짝이 없습니다. 그간 의학교육에서 다루어진 적이 없으니 당연하지만 건강정보의 균형추가 움직인 것만큼은 분명해보입니다.

저는 제 개인의 약물 유전자를 살펴보았습니다. Pseudocholine Esterase 돌연변이로 콜린계 약물 분해가 어렵습니다. 기침을 막는 코데인도 분해 못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제 혈액응고인자 10번(F10)에서 발견된 심각한 돌연변이입니다. 혈우병의 원인인 응고인자 8번보다 더 심각한 돌연변이입니다. F10 활성화 (Xa) 없이는 프로트롬빈을 트롬빈으로 변환될 수 없고 혈액응고 자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저히 생존불가죠. 다행히도 한 쌍의 유전자 중 하나는 정상인 heterozygote라서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진단검사의학과에 가서 활성도를 검사했습니다. 나머지 응고인자는 모두 정상이었는데, F10의 활성도는 67%로 정말 낮아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참고로 서울대병원의 F10 정상 범위는 74~146%입니다. PT/aPTT도 지연되어 있어서, 제가 ‘묽은’ 피를 가졌다는 ‘의학적 확진’을 내렸습니다.

몇 가지 임상적 질문이 생깁니다. 혈전방지를 위한 아스피린이 적절할까요? 저는 평생 아스피린 보다 강력한 F10 차단 치료 중인데. 혹시 아스피린이 위험하지 않을까요? 저는 출혈성향은 없지만, 정상범위 바깥인 제 응고체계는 응고질환(coagulopathy)인가요? 현대인은 출혈성향 보다 과도한 응고성향이 더 큰 문제이므로, 진화적으로는 제가 현대문명에 맞게 더 진화한 것은 아닐까요? 더 심각한 것은 신약인 혈액응고인자 10번 차단제 (NOAC제제) 처방입니다. 나이가 들어 심방세동이 생기면 항응고치료를 할 텐데, NOAC제제 처방으로 제 F10 활성도가 67%에서 50%이하로 떨어져버리면 주요출혈로 사망이나 뇌손상을 유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동료 내과 의사들에게 이 데이터를 보고도 F10 차단제를 처방하실 수 있으신지 질문해봤습니다. 아무도 답을 안 합니다. 제가 특이체질일까요? 계산해보니 저와 유사한 변이는 1/200로 한국에만 20만 명 정도로 나옵니다.

30억 염기서열 중, 한 개에 대해서만 예를 들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맞춤의학은 진료정보, 라이프로그, 유전자 정보로 이루어진 개인 빅데이터의 차이에 따라 적절한 맞춤형 진단적, 치료적 접근을 제공하는 개인 빅데이터 의학입니다. 스마트폰은 역사상 가장 개인화된 장비이며, 프로그래밍 가능한 온전한 컴퓨터라는 점에서 개인 빅데이터를 관리, 운영하기 위한 최적의 장비입니다. 라이프로그는 개개인이 직접 생성, 운영할 뿐 아니라 해당개인을 위해서 ‘쉬지 않고 일 합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개인의 건강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보인 병원 진료정보는 현재 환자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요? 진료정보는 병원에 갇혀있고, 1년 365일 잠자고 있습니다. 환자가 의사를 방문한 경우 그 의사를 통해서 잠시 환자를 위해 일할 뿐, 곧 다시 시스템 속에 잠듭니다. 오늘날 진료정보는 충분히 활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연구를 통해서 후손에게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해당 환자가 아니라 그 다음 세대에나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개인 빅데이터 시대는 개인 진료정보가 잠에서 깨어나서 개인의 라이프로그나 DNA 정보와 상호작용하고, 다른 사람들의 개인 빅데이터 및 의학문헌, 지식, 그리고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는 환경정보 등 바깥세상의 수많은 빅데이터와 상호작용하기를 멈추지 않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항상 개개인의 건강을 위해 일하는 데이터 시대를 의미합니다. 다소 비현실적으로도 들릴 수 있는 개인 빅데이터의 운영체계에 대한 연구가 나름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개인 빅데이터의 생로병사를 다루기 위해서는 첫째, 개인을 중심으로 데이터가 통합돼야 합니다. 현 병원정보시스템의 의료기관 중심 통합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둘째,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는 의료인 중심의 통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재는 서로 다른 일을 하시는 의사 선생님들이 ‘같은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이란 이유로 같은 정보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원하는 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고, 수많은 기관이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합니다. 그보다는 다른 기관에 종사하더라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같은 정보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전문과목별로 다양한 정보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첫 번째는 혈액투석 인공신실용 스마트패드 프로그램입니다. 2015년 3월부터 인제대 백병원에서 개통하여 임상연구 및 검증과정을 거쳤고, 현재 인하대, 동국대, 강원대, 국립의료원 및 몇 개인 신실에서 운영 테스트 중입니다. 투석실 의료진과 환자를 스마트패드(DialysisNet)와 스마트폰 앱(Avatar Beans)으로 연결하여 진료정보와 라이프로그를 개인 중심으로 통합 운영합니다. 즉 (1) 병원 EMR (2) 의사 스마트패드 (3) 환자 스마트폰으로 수직 연결될 뿐 아니라, 환자와 가족은 환자와 가족끼리 연결되고, 의사는 의사끼리 수평적으로 연결됩니다. 신장내과에서 필요한 임상지원 프로그램은 공동 개발되고 쉽게 배포, 적용됩니다. 쉽게 네트워크 기반의 대규모 코호트가 생성되고 실시간적 임상연구와 임상시험이 진행됩니다. 진료와 연구가 통합됩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정보를 보낼 수도 있고, 우울증 설문지를 처방할 수도 있습니다. 환자의 일지나 라이프로그가 의사에게 전달됩니다. 영원히 잠들지 않는 빅데이터의 세계가 시작됩니다. 아바타 빈즈의 성공에 힘입어 소아암 환자를 위한 아바타 주니어, 관절질환, 스포츠의학을 위한 아바타 핏, 정신과 진료를 위한 PsyBase 2.0 등이 올해 공개됩니다. 운영지원을 위한 헬스아바타 플랫폼과 함께 다양한 도우미 (분산형 에이전트) 프로그램이 연결됩니다. 모두 개인 중심의 빅데이터의 통합으로 가능해진 것들입니다. 임상진료와 임상연구가 실시간으로 통합됩니다. 환자와 의사와 의료시스템 사이의 상호작용이 개인 빅데이터 운영체계를 통해 매개됩니다.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는 실시간 질의로 생성되고, 분석이 끝나면 소멸됩니다.